이국운이명박 대통령은 인적 쇄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지금 국민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이 대통령이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이다. 그를 찍은 것이 아주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는 일말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촛불 민심을 체감한 정치권과 언론이 대규모 인적 쇄신의 필요성을 제기한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뭔가 결론이 나오는 듯하다. 이처럼 꾸물댄 것을 보면, 국무총리를 비롯해 국정의 핵심 포스트를 다 바꾸라는 진언의 의미를 이명박 대통령은 근본적으로 오해한 것 같다. 대통령은 행여 자기를 인적 쇄신의 주체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보나마나 국무총리는 내각의 일괄사표를 제출하면서 “보필을 잘못해서 책임지고 물러간다”라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대통령은 방향을 잘 잡았는데 국무총리와 내각이 실행을 잘못해서 나라가 이 꼴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입에 발린 수사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 한 명이라도 있겠는가?

단언컨대, 이명박 대통령은 인적 쇄신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제1번 대상이다. 다만,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인 까닭에 5년 임기를 마치기 전에 사표를 받고 갈아치운다면 헌정 질서에 부담이 되므로, 다른 방식의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국민이 기대하고, 또 확인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국무총리나 내각 구성원에 대한 구차스러운 하마평이 결코 아니다. ‘보수대연합’ 운운하는 정치공학적 뒷거래는 더더욱 아니다. 국민은 단지 이 대통령이 ‘고소영-S라인’이나 ‘굴욕적인 친미 일변도 노선’에서 벗어나 이제야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다는 증거를 보고 싶을 뿐이다. 지난해 12월 그를 찍은 것이 아주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는 일말의 자존심을, 대통령 자신의 인적 쇄신을 증거 삼아 챙겨두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차기 국무총리 인선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또다시 말 잘 듣고, 부담 안 주는 ‘집사형 총리’에 안주한다면, 미래는 없다. 대통령 자신의 인적 쇄신을 증명하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혁신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논리적으로는 여야를 넘는 이른바 거국내각도 불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권력 욕심에 눈이 멀지 않은 다음에야, 겨우 10% 근방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구하자고 이 시국에 야당이 움직일 리는 만무하다. 결국 남는 가능성은 여당 내부의 정적을 싸안고, 말 그대로 책임총리제를 시행하는 수밖에 없다. ‘국정의 동반자’를 국무총리로 맞아 그와 함께 내각을 구성한 뒤, 국무총리 책임 아래 국정을 운영하는 방안이 그것이다.

헌법에 규정된 책임총리제 실행이 해법

ⓒ연합뉴스현 난국을 돌파하려면 총리에게 실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한승수 총리(오른쪽).

책임총리제는 선거에 의해 구성된 두 권력(국회와 대통령)이 국민에 대해 공동으로 정치적 책임을 부담할 수 있는 독특한 방식이다. 주지하듯이 현행 헌법은 책임총리제에 의한 권력 운영을 예외가 아니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헌법도 지키고 지지도 보강하는 묘수가 이미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민심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인 것 같다. 국민의 기대치에 앞서서 뭔가 좀 시원스럽게 해내는 모습이 전혀 없다. 매번 헛발질 아니면 뒷북이고, 어쩌다 던지는 발언은 국민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이 대통령이 6월17일 OECD 장관회의에서 행한 “신뢰 없는 인터넷은 독이 될 수도 있다”라는 연설은 그 전형이다. 도대체 그 발언의 어디에서 네티즌을 향한 대통령의 신뢰나 애정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깊은 실망감을 고려할 때, 이미 인터넷과 촛불집회를 평정한 ‘이명박 아웃’이라는 구호의 느낌이 왠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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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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