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성 소수자들이 서울 국방부 앞에서 ‘군대 내 동성애자 병사 인권침해 규탄’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성수(가명·28세)는 불명예 제대를 했다. 그때 성수는 상병이었으며 같은 부대 운전병인 다른 사병과 연인 관계였다. 두 사람 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알았지만, 정체성을 감추었고 사고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해왔다. 야외 훈련을 나갔다가 서로 게이임을 확인한 뒤 둘은 아무런 문제 없이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 두 사람이 대대장에게 불려간 것은 2006년 만들어진 ‘동성애 사병 지침’ 때문이었다. 당시 군대는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고백한 사병에게 중대장이 ‘섹스를 한 사진을 찍어오라’ 강요하고, 강제로 에이즈 검진을 시키는 등 인권을 유린한 사건으로 발칵 뒤집혔던 때다. 새로 부임한 대대장은 만일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사병을 조사했고 둘의 관계가 발각되었다. 그들은 누군가를 추행하거나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지만, 결국 강제로 불명예 제대를 당했다.

대법원 판결, 군대를 ‘변태스럽게’ 만들어

군대는 참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남성 동성 간 성추행과 성폭력이 그 어느 곳보다 많이 발생하지만 동성애는 철저히 금한다. 남성 동성애자에게 군대는 천국이자 지옥인 셈이다. 한 남성 동성애자 사이트가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끔찍했던 순간을 물어봤을 때, 두 질문 다 1위를 한 곳이 ‘군대’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추행’과 ‘폭력’이 동원되면 자기가 욕망하는 남성의 육체를 얼마든지 감상할 수 있지만, 자신들이 갈망하는 남성과의 사랑은 완전히 금지되어 있다는 점에서 천국이자 지옥인 것이다.

군은 동성애에 대해 가혹하다. 동성애 자체를 ‘성적 문란’으로 규정하며, 동성애 행위시 징역 1년형의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징병 검사에서도 동성애는 심신장애로 구분된다. 물론 성수의 경우처럼, 동성애자임이 ‘발각’되면 불명예 제대를 당한다. 성수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때로는 강제로 장기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거나 정신병원과 자대를 오가게 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성행위 사진’ 강요 사례처럼, 이 과정에서 수많은 성추행과 인권유린이 벌어진다.

반면 동성애가 아닌 동성 간 ‘성추행’ ‘성폭력’은 어떨까? 지난 6월10일 대법원은 사병의 젖꼭지를 비틀고 손등으로 성기를 툭툭 친 행위에 대해 ‘폭력’ 부분만 인정하고, 추행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그 근거를 “추행 장소가 중대 복도나 행정반 사무실 등 공개된 곳이고 다수인이 왕래하는 상태였으며 피해자도 불특정 다수인 점 등에 비춰 피해자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볼 수 없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판결로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며, 가해자가 비정상적인 성적 만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성추행’으로 볼 수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성 추행범은 허용하지만 동성애자는 인정되지 않는 곳, 공개적인 추행은 무죄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유죄인 곳. 대법원 판결은 그렇게 군대를 진정 ‘변태스러운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당연히 대안은 그 반대이어야 한다. 동성애자에 의한 것이건, 이성애자에 의한 것이건 군대에서 동성 간의 추행을 금하고, 동성애자들의 사랑을 허하라. 군에 있는 동성애자들이 사랑이면 사랑, 추행이면 추행,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성’을 허하라. 그렇지 않으면, 군대는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쫄따구’의 젖꼭지를 비틀고 성기를 손등으로(물론 손바닥으로 주물럭거리는 것은 피해야 할지 모른다. 그건 손등으로 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이어서 성적 만족 행위로 인정될지 모르니까) 툭툭 치는 ‘이성애자’의 천국이 될 것이다. 그건 대법원이 허락했으니까!

기자명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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