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6월17일 평택시청 조찬간담회에 참석한 송명호 시장(왼쪽 두 번째)과 원유철 의원(왼쪽).
송명호 평택시장이 행정 제안자로 경기도에 개발 승인을 신청한 민간 주도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에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문제의 택지개발 부지는 수도권 전철 지제역사 앞에 자리한 약 72만 평(약 238만㎡)에 이르는 광활한 곳이다. 현재 이곳은 전답과 야산 상태이지만 개발이 이뤄지면 줄잡아 수천억원대 이권 창출이 가능한 평택 내의 노른자위 땅이다.

이른바 ‘지제역세권 민간 택지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지역 내에서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곳이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인 원유철 의원 지역구(평택갑)라는 점이 우선 꼽힌다. 원 의원은 경기도 정무부지사 시절부터 각종 평택 지역 개발에 힘을 실은 바 있다.

게다가 3선 의원으로 여당의 경기도당위원장까지 맡아 지역 정가의 거물로 자리 잡은 원 의원의 지역구 택지개발 사업에 송명호 평택시장도 적극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사업 추진이 ‘급물살’을 탔다. 송 시장은 지제역세권 택지개발을 초고속으로 승인해준 뒤 자기가 행정 제안자가 되어 경기도청에 개발 승인을 요청했다.

여기에 사실상 지제역세권 택지개발을 주도하는 시행 대행사 대표는 원유돈씨. 그는 원유철 의원의 친척이다. 지난 4월 총선 때는 원유돈씨의 개발 시행 대행업체 임직원이 대거 원 후보의 선거운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당시 선거운동에 나섰던 개발 시행업체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택지개발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향 선배인 원 후보 선거를 돕게 됐고, 그 과정에서 자금도 많이 썼지만 자세한 내용을 공개하기는 곤란하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정희상평택시 지제역세권.
시행업체에서 원유철 의원 선거운동 하기도

원유돈씨는 이 지역 개발에 눈독을 들이는 건설사 월드건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토지 매입에 나서는 등 사업을 주도한다. 월드건설에서 매월 억대의 사업비를 받은 원유돈씨의 시행대행사 동인개발과 월드도시개발에서는 다시 지제역세권 3개 지역 지주조합장 앞으로 매월 3000여 만원씩 ‘세금 없는’ 지원금을 내려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제역세권 민간 택지개발 사업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당사자로 거론되는 원유철 의원 측은 “개발 업자 원유돈씨가 우리 집안 6촌 형제이고, 내 지역구가 개발 부지에 포함된 것은 맞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정치인으로서 이 사업에 개입하지 않았다. 사업과 정치는 별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택지개발을 주도하는 시행사 임직원이 지난 총선에서 자기의 선거운동에 나선 사실에 대해서도 “그분들이 정식 선거운동원으로 등록은 안 했지만 좁은 평택 바닥에서는 모두 선후배로 지내는 사이라 자발적으로 나를 지지했을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이 사업을 자신을 둘러싼 권력형 비리로 보는 것은 억지라는 주장이다.

평택시 지제역세권 민간 택지개발 사업을 뒤에서 주도하는 원유철 의원의 6촌 원유돈 동인개발 대표.
그러나 이 사업 추진 배경과 지금까지 진행된 절차를 보면 개발 주체가 꼼수와 편법을 썼으며, 지자체가 특혜성 밀어주기를 했다는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국토이용계획법상 100만㎡(약 30만 평) 이상의 개발부지는 난개발을 막고 국토 이용 효율화를 기하기 위해 중앙정부(국토해양부)의 지구 지정 승인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72만 평에 이르는 지제역세권 택지개발 부지는 당연히 국토해양부 승인 대상이다. 평택시가 내부적으로 마련해 대외비에 부친 ‘지제역세권 개발도면’을 입수한 결과 72만 평 전체를 단일 개발권역으로 설정해둔 것으로 확인됐다(위 오른쪽 도면 참조).

그러나 실제 평택시와 원유돈씨 등 개발 업자는 중앙정부 승인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민간 개발하는 편법을 택했다. 전체 한 단위의 부지를 쪼개 각각의 부지가 100만㎡가 넘지 않게끔 4개 권역으로 나눈 것이다. 동삭 지구(16만㎡), 모산·영신 지구(70만㎡), 영신 지구(56만㎡), 지제·세교 지구(60만㎡) 등이다. 이렇게 해서 지제세교 지구를 제외하고 올봄 초고속으로 평택시장의 사업 승인을 거친 3개 개발 부지는 현재 경기도로 넘어가 도지사 지구 지정 승인을 앞뒀다.

이에 대해 평택시청은 “각각의 지주조합이 구성돼 별도로 사업제안서를 냈기 때문에 사업 주체가 다르다고 보고 개별 승인해 경기도에 올렸다”라고 주장했다.

중앙정부 승인 피하려고 개발 지역 쪼개기

이들 개발 제안자가 평택시에 낸 제안서는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하다. 현행 도시개발법상 개발 대상 부지의 3분의 2 또는 전체 지주의 2분의 1 이상이 동의하면 민간 개발 제안 신청이 가능한데 이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꼼수이며 편법이다. 우선 사업 주체로 평택시에 제안서를 낸 3개 지구 (가칭)지주조합은 사실상 껍데기 지주조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업은 원유철 의원의 집안 형제인 원유돈씨가 주도하는 시행 대행업체 동인개발과 월드도시개발에서 애당초 지역을 쪼개 순차적으로 민간 개발 방식으로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각각의 지주조합도 이들이 주도해 급조했던 것이다. 현재 각 개발 부지 위에는 지주조합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서 실제 움직이는 이들은 모산·영신 지구 지주조합장을 맡은 유천형 전직 경기도의회 부의장과 시행 대행업체 직원이었다. 그럼에도 평택시는 이들이 서류상 지주조합 명의로 접수한 내용에 법적인 하자가 없어 승인을 내줬다는 주장을 폈다.

평택시가 비밀에 부치고 있는 지제역세권 개발 도면. 전체를 개발하려면 국토해양부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를 편법으로 4권역으로 쪼개 평택시와 경기도 승인만 받아 개발을 추진해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평택시가 승인해준 모산·영신 지구 개발 부지에는 인근에 공해배출 업소 2개가 자리 잡고 있다.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하는 아파트 개발 부지로서는 부적합한 곳인데도 승인을 내준 데 대해 지역 환경단체에서는 불법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평택시에서는 “공해 배출 업소에 대해서는 경기도청에서 지구 지정을 승인해주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받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개발 돈줄은 월드건설이 쥐어

이 지역 개발 주체인 월드개발과 동인개발은 월드건설로부터 막대한 용역비 지원을 받아 지주를 설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땅을 개발하면 환지 방식으로 큰 보상을 해주겠다면서 ‘토지사용 동의서’를 받아 평택시에 제출한 것이다. 동의서를 써준 한 지주는 “시행 대행사 설명회에 참석했더니 자기네가 개발하지 않으면 평택시나 경기도에서 땅을 헐값에 수용해 공원부지로 쓸 수 있다고 불안감을 조성하며 사용 동의서를 재촉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지상권을 월드개발과 동인개발에 넘긴 지주들이 땅을 보상받을 길은 환지 방식밖에 없다. 이 과정을 둘러싸고 일부 지주는 월드개발과 동인개발 등 시행업체가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이미 엄청난 이권을 챙겼다고 주장한다.

ⓒ시사IN 정희상지제역세권 택지개발 부지에 들어선 모산·영신 지구.
대형 시공회사인 월드건설로부터 사업비와 용역비 등 거액의 자금 지원을 받은 동인개발과 월드개발은 이와 별도로 모산·영신 지구 아파트 부지 직접 매입을 위해 1400억원대에 이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했다. 피닉스자산운용을 통해 2006년 8월 ‘PAM 부동산투자신탁3호’라는 펀드를 모집해 투자자 돈을 끌어모은 것이다. 이 펀드는 시공사인 월드건설이 원리금에 대한 지급보증을 했다. 그 140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이 지역 토지 매입에 풀린 것이다.

결국 지제역세권 민간 토지개발 사업은 부지를 편법으로 쪼갠 뒤 국토해양부 승인을 거치지도 않고 민간 건설회사를 자금주로 낀 지역 내 ‘실세’에 의해 평택시장과 경기도의 승인만 받아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유령 지주조합 대표에게는 탈세를 통한 불법 자금 지원도 이뤄졌다. 평택시는 이 사업의 배경과 내막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주조합 명의의 제안신청서’가 법적 요건을 갖췄다는 이유로 민간 개발을 승인했다. 이 사업을 둘러싸고 송명호 시장과 원유철 의원 등의 개입 여부를 묻자 평택시청 도시개발 담당자는 “공무원은 사업 배경에 누가 있는지 알 필요도 없고, 알아도 말할 수 없다. 신청 서류가 요건이 갖춰졌는가만 검토했지 현장을 방문해 실제 누가 추진하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정희상영신 지구 지주조합 사무실. 조합장은 원유철 의원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불리는 유천형 전 경기도의회 의장과 일부 마을 이장이 맡고, 이들의 활동자금은 원의원의 6촌인 원유돈 동인개발 대표가 댄다.

원유철 의원의 집안 형제로 지제역세권 민간 개발사업을 야심차게 주도하고 있는 원유돈 동인개발 대표는 수차례에 걸친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듭 회피했다. 대신 그의 동업자인 김규엽 월드개발 대표가 “평택시는 전체 72만 평에 대한 개발계획을 수립했지만 맨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한 쪽은 우리다. 원유돈 사장이 자연과 도시라는 시행대행사를 차려 첫 사업 부지인 동삭동 4만7000평을 월드건설 아파트 건립 사업에 뛰어들면서 모산·영신 지구도 순차적으로 월드건설과 손잡고 진행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월드건설에서 매월 내려오는 억대의 돈은 업무 추진비라고 밝혔다. 또 원유철 의원과 송명호 평택시장이 지원하는 권력형 사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평택 지역 내부에 그런 시선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라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가 원유철 의원을 잘 알고, 평택시장과 친하긴 하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걸 보고 자금을 대주겠는가. 경기도청에서도 우리가 추진하는 도시개발 사업을 모범 사례로 선정했다. 우리의 사업 수완과 방식을 신뢰해서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본다”.

평택시장 승인을 거친 지제역세권 지구지정 승인 요청서류는 현재 경기도로 넘어가 있다. 경기도청이 지구 지정을 승인하면 사업은 본궤도에 오른다. 경기도청 도시개발 담당자는 “평택시장이 검토를 거쳐 승인하고 올렸기 때문에 우리는 하자가 없는지 서류 검토만 하고 경기도지방도시계획위원회 분과위원회로 수권 위임했다”라고 말했다. 사업의 배후 및 평택시청의 현장 확인 소홀 등 절차상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서는 “만일 실제로 한 건설회사가 배후에서 민간 개발을 조종했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은 평택시장이 입안할 때 철저히 확인할 사항이라 경기도로서는 뭐라 말할 수 없다. 문제의 소지가 발견되면 수정 보완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권력형 비리 사건 될 것이다”

그러나 지제역세권 민간 택지개발 추진에 권력형 비리 의혹이 있다고 문제 제기하며 사업 추진에 제동을 거는 이들이 나타났다. 개발 예정지 내에 토지를 소유한 진주유씨 하양공파 문중의 일부 인사이다. 이들은 지주조합이 받아간 택지개발 동의서 자체가 절차상의 하자가 있고, 편법으로 집안의 몇몇 인사가 낸 동의서는 효력이 없는 것을 알고도 당시 평택시와 추진 주체가 사업의 배후를 감췄고, 이로 인해 지주가 권력형 비리에 들러리를 서게 됐다면서 평택시에 동의서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문중의 한 관계자는 “당초 이 사업은 지주가 자발적으로 조합을 결성해 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는 모양새로 시작됐지만 알고 보니 지주조합은 허울뿐이고, 사업의 배후에 월드개발과 동인개발이라는 시행 대행사가 자리했다. 이대로 사업이 추진되면 과거 수서 택지비리 사건 같은 권력형 비리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평택시와 사업 시행 주체는 이들의 동의서를 반환하지 않고 있다. 하루바삐 경기도 승인을 받아 개발에 박차를 가한 뒤 나중에 환지 정산 과정에서 불만 세력을 무마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현행 개발 반대론자들은 평택시와 개발 주체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고 법정 싸움에 들어갔다.

 


 

〈바로잡습니다〉

본지 지난 2008년 6월28일자 제41호 사회면 ‘평택 민간택지개발 수서비리 닮았네’ 기사 중에서 평택시 지제역세권 개발사업 시행대행사인 동인개발과 월드도시개발이 의도적으로 사업부지를 4개 권역으로 쪼개고, 월드건설로부터 매월 억대의 돈을 받으면서 사실상 ‘껍데기 조합’인 3개 지주조합 조합장에게 매월 3000만원씩 ‘세금 없는’ 지원금을 내려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개발 반대론자들로부터 행정소송을 당했다는 내용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시행대행사들은 해당 사업지구를 지역 사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3개 지구로 나눠 개발을 추진했고, 각각의 지주조합은 실체를 갖고 활동하고 있으며, 월드도시개발이 월드건설로부터 받고 있는 자금 및 지주조합장에게 지원한 운영비는 계약에 따른 적법한 대여금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해당 개발사업에 대한 행정소송은 현재까지 제기된 바 없기에 이를 바로잡습니다.

한편, 시행대행사 측에서는 “환지 방식의 도시개발사업에 따른 개발이익은 토지 소유자들에게 귀속된다”라고 알려왔습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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