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구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4월은 어떤 달이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대답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중심인물로 등장하면서 이 총리의 금품 수수 여부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니만큼 그에게 2015년 4월은 잔인한 달일 수도 있다.

우리 정치사에서 돈의 힘으로 정계에 진출한 기업인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성공적인 정치인으로 변신한 경우는 별로 없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대표적 인물이지만, 대선 패배 후 김영삼 정부에서 적지 않은 고초를 겪었다. 성완종 전 새누리당 의원 역시 추측하건대 정치인들에게 뒷돈을 대주는 기업인 정도로만 이용당하지 않았나 싶다. 성 전 의원 본인이 가졌던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나름 돈을 써가며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부패 기업인으로 낙인찍히자, 이에 대한 분노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동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진정 잔인한 일은 지난해 4월16일에 벌어진, 현대 한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세월호 침몰 참사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유가족의 슬픔이 가시기는커녕 그들의 마음에는 대못만 박혔다. 악플과 일부 시민의 혐오 섞인 말들이 유가족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사건의 진상을 밝히자고 세월호 진상조사특별위원회가 겨우 만들어졌지만 시행령 내용을 둘러싸고 갈등이 재연되어 아직 진상조사에 착수하지도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정부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세월호 유가족의 진상 규명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단순한 선박 사고로 취급하여 빨리 세월호에서 탈출하고 싶겠지만 세월호 침몰은 단순한 선박 사고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부패와 잘못된 관행, 생명보다 돈의 가치를 더 중하게 생각하는 국가가 낳은 부끄러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언제나 영혼 없는, 판에 박힌 지시만 한다. 공감능력이라는 것이 정치인에게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절감하게 해주는 분이다.

최근에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이 ‘세월호 기억의 숲’ 조성을 위한 모금 활동을 위해 방한했다.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을 영원히 기억하고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숲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라 외신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특집기사를 쏟아내며 한국 사회가 그사이 어떻게 변했는지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반면 우리의 지난 1년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일각에서는 유가족들을 향해 이제 그만하라고, 그 정도 하면 되었다고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세월호 인양에 드는 돈을 계산하고 있었고, 인양 여부에 대한 여론조사를 운운했다. 4월16일이 다가오자 보상·배상액을 발표하면서 유가족을 돈을 바라고 투정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했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4월16일 3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다녀온 나라로 출국했다. 불가피한 일정이라고 하기에는 씁쓸하고 이를 말리지 않은 참모진의 의식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을 잊지 않고 그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의무 아닐까. 나쁜 일은 빨리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악습의 반복이 우리 사회의 병폐를 없애지 못하는 원인이다. 오래된 역사를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비극적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세월호의 비극과 ‘성완종 리스트’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독일의 예를 보자. 얼마 전 독일 검찰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약 30만명에 이르는 헝가리 출신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90대의 오스카 그뢰닝이라는 사람을 기소해 재판을 앞두고 있다. 아우슈비츠 생존자 60여 명이 공동 기소자로 참가했다. 그뢰닝은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의 현금과 물품 관리를 담당했던 인물이다. 역사를 감추지 않고 직시하려는 자세가 독일이라는 국가를 무시할 수 없게 한다. 이것이 국가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교육의 목표이며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이다.

뒤집어진 가치관, 경쟁만을 강조하는 약육강식의 사회를 지향하는 사회는 결국 모두를 패배자로 만든다. 기업이 이익을 넘어서 탐욕만을 추구하고, 학교는 ‘탐욕충족술’을 가르치는 기관으로 전락한다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탐욕스러운 인간밖에 되지 않는다. 사람이 중심인 사회, 인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었을 때에 세월호의 비극도 ‘성완종 리스트’와 같은 사건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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