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2년 내가 원장이었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공동 저서 〈리셋 코리아〉에서 ‘소득 주도 성장’을 내세웠을 때 당시 제1야당 대통령 후보의 캠프에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흘러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등이 ‘소득 주도 성장’을 입에 올리더니,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최근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에 대해 “진심으로 환영하는 마음”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라는 논평을 하고,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전 공동대표도 최근 당에서 주최한 ‘정책 엑스포’에서 ‘공정성장론’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등 봄꽃이 만발하는 백화제방 가운데 자리 잡았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 주도 성장으로 불리는,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서의 ‘소득’은 임금소득을 말하며 임금소득이란 1인당 평균임금×노동자 수(고용)이므로 임금 주도, 소득 주도, 고용 주도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소득 주도로 표현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소득 주도 성장을 노동시장 정책, 간단히 말해서 ‘임금이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상전벽해다. 지난 50년간의 ‘수출 주도(-부채 주도) 성장’ 기조에서 임금 인상은 수출경쟁력을 낮추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임금 인상이 총수요(내수)를 늘려서 성장률을 높인다는 주장이다. 최근의 계량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한국도 소득 주도 경제에 속하며, 투자와 수출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절한 속도의 최저임금 인상,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지출의 확대는 빈곤과 양극화 해소라는 차원에서 동의(하고), 내수 진작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라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발언은 어쩌면 획기적인 인식 변화다. 하지만 유승민·안철수 두 정치인은 “저성장의 대재앙이 예고된 우리 경제에 대하여 이 정도의 내용을 성장의 해법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유승민),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기업의 결심이 필요한 일인데, 기업을 움직이게 할 정부의 수단이 줄어들고 있다”(안철수)라고 비판한다. 소득 주도 성장을 좁은 우리에 가둔 것이다.

하지만 소득 주도 성장은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정책을 아우르는 정책 기조이며 그들의 경제학 방법론을 집약한 용어다. 예컨대 임금은 노동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사회적 힘들이 작용한 결과이며 이렇게 분배가 결정된 이후에 다른 경제변수가 결정된다. 또한 상품의 가격은 기업의 독점력에 따른 마크업(비용에 일정한 이윤을 가산하는 것)이 결정하며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설정한다. 따라서 포스트 케인지언의 정책 기조는 각 이해 당사자(보통 모델에서는 노동자·기업·금리생활자)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소득 주도 성장을 주창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정책의 핵심은 ‘사회적 합의’

역사를 봐도 그렇다. 1970년대 로빈슨이나 칼레츠키 등 ‘케임브리지 케인지언’들(포스트 케인스주의의 창시자들)이 적극적으로 옹호한 소득정책(incomes policy)은 현재 소득주도성장론의 원형이다. 해서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노동조합의 강화뿐 아니라 고용주 연합(예컨대 대한상공회의소)의 단결을 통한 중앙교섭을 지지한다. 당시에는 인플레이션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은 ‘장기 침체’에 대해서 노동자와 고용주,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 바로 유 대표의 연설에 나오는 ‘합의의 정치’ ‘여야의 합의기구’야말로 포스트 케인지언 경제정책의 핵심이다. 

포스트 케인지언들은 세계적인 ‘장기 침체’가 부와 소득의 분배 악화에 의한 총수요 부족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각국은 내수 부족에 수출 주도 성장(중국과 독일)과 부채 주도 성장(미국과 영국)으로 대응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수출 주도에 부채 주도를 결합한 모델이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원화 표시 수출은 2년째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140%에 달하는 부채 비율로 인해 더 이상 가계가 빚으로 소비를 늘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연설은 환호를 받았지만 그의 말줄기 밑바닥에는 균형재정의 사상이 깔려 있다. 그가 ‘증세에 의한 복지’를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앞으로 유 원내대표가 제출하는 경제정책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유의 안정정책=긴축정책의 기조를 따를 것이다. 앞으로 소득 주도 성장과 균형재정 성장은 서로 토론을 하고 합의도 해나가야 한다. 하지만 지난 역사와 유럽연합의 현재 상황은 유 원내대표의 정책 기조가 불황의 장기화를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기자명 정태인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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