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법률가다.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는 등 시민사회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면서도 합리적이고 신중하다는 평가가 많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의 압도적인 지지로 특조위원장에 추천될 때에도 보수 진영의 반대가 거의 없었다. 위원장이 된 뒤로는 언론 인터뷰도 사양해왔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특조위원들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말을 아꼈다. 엄중한 임무가 주어진 만큼 ‘성과’를 내는 데에만 집중하겠다는 태도였다.

그랬던 그가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특조위로 출근하는 대신 시민사회 원로와 정치권을 접촉하는 등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3월27일 정부가 내놓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에 반발해서다(대통령님, 특조위 맘에 안 들죠? 참조). 시행령 철회를 요구하며 대통령 면담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석태 위원장은 4월1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특별법에 의해 탄생한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무력화되고 있다며, 국회가 정부의 시행령을 감독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논란 등 조사 범위에 대해서도 “성역은 없다”라고 밝혔다.

ⓒ시사IN 윤무영이석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
지금 특조위 상황이 어떤가? 강남에 있는 임시 사무실은 4월15일까지만 임차해둔 상태다. 민간 임시 지원단을 비롯해 20여 명이 근무 중이다. 문서 취합 등 1차적 업무만 하고 있다. 4월16일 명동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고 특조위를 본격 가동할 계획이었다.

정부 시행령의 문제점이 뭔가? 진상조사는 민간 전문가가 맡는다는 원칙이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의 성격상 공무원이 조사한 결과를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갑자기 기획조정실이라는 걸 만들어냈다. 해양수산부 파견 공무원이 진상 규명 등 위원회의 업무를 종합·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조사 대상은 ‘정부조사 결과’에 국한했다. 정부의 공식 조사 결과만 따져보고 나머지는 손대지 말라는 건데, 세월호 참사가 코끼리라면 코끼리 코만 조사하라는 식이다. 기획조정실이 생기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우리 특조위가 제출한 시행령안에서는 위원회별로 독립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부당한 간섭을 상호 배제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안에서는 기획조정실에 파견된 공무원이 특조위 업무를 사실상 통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특조위의 조사 대상이 정부 관계자들인데, 어제까지 거기서 일했던 공무원이 조사 과정을 총괄한다는 것이다.

전체 인원이 125명에서 90명으로 줄었다. 예산도 줄었고. 우리를 ‘세금 도둑’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때문에라도 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인력을 확충해 조사를 빨리 끝내야 한다고 본다. 활동 연장 기한인 1년9개월까지 갈 필요 없이 1년 안에 끝내야 세금을 아낄 수 있지 않겠나.

특조위에서 제출한 안을 정부가 수용한 것이 한 가지도 없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정부의 시행령 철회를 주장하는 것이다. 정부안은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는 법이다.

3월25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우리는 일관되게 특조위가 만든 시행령안을 존중해줄 것을 요구했다. 유 장관은 특조위가 잘 됐으면 좋겠다는 덕담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 (이틀 뒤에) 시행령이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시사IN 이명익3월31일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이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정부가 내놓은 시행령의 폐기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유족들을 만났다.
그동안 특조위를 꾸리면서 정치권의 압박을 느낀 대목이 있나? 김재원 의원이 1월16일 난데없이 ‘세금 도둑’ 발언을 내놓기 전까지는 순조로웠다. 그 이후 우리가 정말 세금을 함부로 쓰는가 검토하기도 했다. 회의와 조정을 거듭하면서 2월17일에 안을 확정해 보냈다. 한 달 넘도록 아무런 답변이 없다가 정부에서 이런 시행령을 발표한 것이다. 특조위 내부에서 좌절감이 크다.

특조위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속단하기 어렵지만 그런 면이 있다. 정치적 부담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겠지. 우리도 일종의 행정기구다. 그럼 일단 맡겨놓고 봐야 한다. 나중에 결과를 놓고 비판하면 되는데. 애초에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기를 쓰고 (조직과 조사 범위 등을) 줄이려 하는 것 같다.

여당 추천위원 5인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도 계속 논란이다. 특조위는 ‘끝없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자리다. 상임위원들이 법률가로서 같은 철학을 공유하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게 되어야 특조위가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리라 본다. 자신을 추천한 진영 쪽으로 가려는 원심력을 줄이고 특조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위원들 간에 견해차를 좁힐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선입견이다.

정부의 시행령안이 나오면서 특조위 문제가 다시 정치 이슈로 바뀌었다. 우리 위원회는 특별법에 의해 구성되었다. 국회는 정부의 시행령이 특별법 취지에 맞는지 세심하고 분명하게 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지 않는다면 국회의 직무유기고,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세월호 1주기의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가 진전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여전히 가족은 길거리에 있고 국민 여론은 나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4월16일이 되면 특조위 현판식도 하고, 새롭게 출발하리라 봤다. 그러나 진상 규명을 위한 인적·물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현판을 걸 수 있겠나. 어떤 슬픔의 결이 여전히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고 느낀다. 세월호 유가족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진실을 밝혀달라고 하고, 또 우리를 믿어달라고 하고…. 정부 시행령이 나온 뒤 특조위에서 청와대를 방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족들이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면서 농성하고 있으니…. 가족들이 특조위가 못하는 일을 대신 해주고 있다(유가족 이야기에서 이석태 위원장의 눈시울이 여러 차례 붉어졌다). 특조위가 정상 가동되면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나 국정원의 세월호 실소유주 논란도 조사할 수 있나. 그렇다. 물론 위원장이 하라 마라 할 문제가 아니라, 전체 위원회의 논의에 따라 결정할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특조위에 성역은 없다는 것이다.

이석태 위원장은 지금 벌어지는 특조위 논란도 결국 ‘우리 사회의 단면’이라고 말했다. 희망이 있다면 어느 누구도 특조위를 해체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어떠한 역경이 있더라도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이튿날인 4월2일 세월호 특조위는 전원위원회를 열고 정부 시행령안 철회를 공식 결의했다. 전체 위원 17명 중 14명이 참석했고, 10명이 정부안 철회에 찬성했다. 반대한 위원은 4명이었다. 전원위원회 회의를 방청한 유가족은 결의안에 반대한 위원을 향해 “역사에 이름이 남을 것”이라며 항의했다. 이날 유가족은 정부의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며 삭발 농성에 돌입했다.

기자명 이오성·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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