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한국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초대형 뉴스였다. 사고 발생 및 수습 상황이 전 세계로 생생히 타전되었다. 외신들 역시 사고 초기에는 세월호 사건이 이토록 거대한 비극으로 기록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세월호 조난 상황이 알려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원 구조’라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이어 ‘전원 구조’가 오보로 판명되고 학생 수백명이 구조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 확인되자, 외신 기자들은 앞다퉈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AP, AFP, 로이터, CNN, 알자지라, 교도통신, 후지TV 등 주요 외신 기자 50~60명이 진도 현장에서 취재를 벌였다. 외신들은 한국 주재원뿐 아니라 도쿄, 베이징, 홍콩 특파원들까지 사고 현장에 급파했다.

현장은 외신 기자들에게도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피해자 가족과 한국 공무원, 기자들로 북적였다. 고성과 울음소리가 난무했다. 카메라만 들면 잡아채거나 촬영을 막아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한 미국 기자는 당시의 고충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 아는 영국 기자가 있어서 다가갔더니 손으로 내 얼굴을 밀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에게 공격을 많이 당해서 반사적으로 손이 나갔다’고 사과했다.”

ⓒ연합뉴스참사 나흘째인 지난해 4월19일 진도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오히려 외신 기자들이 현장에서 환영받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사의 한 기자는 “시민들이 한국 언론을 믿지 않았다”라며 유가족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유가족은 ‘정부의 언론 통제 때문에 한국 매체엔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 당신들은 외신이니 우리 처지를 가감 없이 보도해달라’고 말했다. 안타까웠다.” 또 다른 외신 기자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취재하기가 수월해졌다. 심지어 유가족이 먼저 다가와 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외신들은 세월호 참사와 수습 기간 내내 한국 정부의 부실 대응을 국내 언론보다 훨씬 강한 어조로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서방국가에서라면, 국가 지도자가 (세월호 사건 같은) 국가적 비극에 이토록 늑장 대응을 하고도 지지도와 자리를 온전히 보전하는 경우가 절대 있을 수 없다”라고 질타했다(2014년 4월21일).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도 “시민 보호를 최우선의 임무로 삼아야 하는 행정부와 관리 능력이 침몰한 것”라고 논평했다(2014년 4월23일). 영국 BBC 방송은 “가족 수십명이 거대한 경찰 차단선을 뚫고자 하는 시도에서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의 감정들이 느껴졌다”라고 보도했다. 알자지라 카타르 본사 관계자는 “전 세계 언론이 구조 작업을 주목하면서 한국 정부의 무능함에 탄식했다”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지난해 4월 이후에도 한국 언론보다 더 적극적으로 세월호 참사 보도를 이어갔다. 일본 후지TV 시사 프로그램 〈미스터 선데이〉는 지난해 9월21일, 세월호 침몰 순간의 선내 영상 11개와 사진 275장, 72인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1시간에 걸쳐 재현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단원고 학생도 다수 등장해 세세하게 증언했다.

새로 부임한 ‘산케이’ 지국장은 기자증 못 받아

일본 〈산케이 신문〉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 칼럼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을 바탕으로 한 보도였지만, 그 결과는 외신 기자에 대한 전무후무한 정부 측의 소송 제기였다. 검찰이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인 가토 다쓰야 기자를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하면서 외신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급격히 냉각되었다.

ⓒ시사IN 이명익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전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가운데)이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한 미국 특파원은 “외신 기자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송 제기는 미친 짓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취재가 분쟁 지역 취재보다 덜 위험할 이유는 무엇인가”라며 비아냥댔다. 더욱이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으로 새로 부임한 후지모토 긴야 기자가 외신기자증을 발급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냉소적 분위기가 극으로 치닫고 있다. 한 미국 일간지 기자는 “외신기자증 발급 거부는 ‘〈산케이 신문〉은 한국에서 취재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 한국 정부의 보복성 조치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매체의 한 기자는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 ‘매년 새로 발급되는 외신기자증을 받고 싶다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삼가라’는 농담이 오간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1980년대에 한국에서 미국 NBC 특파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기자는 “〈산케이 신문〉에 대한 고소는 한국 정부의 언론 통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외신 기자들은 허심탄회하게 세월호 취재기를 털어놓았지만 공통적으로 머뭇거리는 부분이 있었다. ‘당신이 근무하는 언론사와 실명을 밝혀도 되느냐’는 질문에서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국 정부에 찍히고 싶지 않다”라고 답했다.

세월호 참사 취재에서 외신 기자들이 겪은 또 다른 고충은 ‘여론의 격한 양분화’였다. 주재 기자들은 보통 해당 국가의 유수 언론을 통해 기본적 ‘팩트’를 확인하고 추가 취재에 나선다. 그러나 한국처럼 여론이 양분되어 있는 경우 사실관계 확인은 물론 ‘일반적 여론의 추이’에 대해서도 서술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고충이 세월호 사건에서는 극에 달했다는 게 외신 기자들의 중론이다.

한 미국 기자는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분열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했다.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비극적으로 희생된 사건인데도, 보수·진보가 격렬하게 다투며 상반된 의견을 쏟아냈다. 어느 의견을 ‘한국의 여론’이라고 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또 다른 기자는 “보수 쪽의 의견을 보도하면 그다음부터는 진보 측을 취재하기 힘들었다. 진보 측에 힘을 실어주는 기사를 쓰고 나면 보수 측의 취재가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신 기자 대다수는 한국이 여전히 ‘뉴스 메이커’이며 세월호 취재 역시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한다. 미국 언론사의 한 특파원은 기자인 동시에 부모로서 세월호의 진실을 끝까지 ‘팔로(follow)’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에게만 세월호의 진실을 알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난해 4월16일부터 지금까지의 1년은 한국의 외신 기자들에게도 고통과 숙고의 시간이었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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