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은 세월호 관련 1심 재판 기록을 입수했다. 공판은 준비기일을 빼더라도 29차례나 열렸다. 화물을 고정시키는 고박을 담당한 하청 직원부터 생존 학생까지 법정에 나와 진술했다. 검찰 증거 목록까지 합치면 재판 기록은 3만 장에 달한다(유병언 일가 관련 재판은 제외). 이 기록을 일일이 분석했다. 분석 과정에서 증거가 뒷받침되지 못한 주장은 배제했다. 카카오톡과 통신 기록 등 객관적 증거를 최대한 취합했다. 세월호 ‘골든타임 48시간’은 이 과정을 통해 재구성되었다.
재판 기록을 분석해보니, 세월호 승객의 운명을 가른 시간이 드러났다. 오전 9시26분이었다. 9시26분, 세월호 안에서는 ‘해경 구조정이 1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다’라는 방송이 나왔다. 9시25분, 진도VTS가 세월호 선원들에게 ‘10분 후 경비정 도착’ 사실을 알린 직후였다. 이때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이 퇴선 명령을 내렸다면 세월호 승객들은 전원 탈출이 가능했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꾸린 전문가들의 판단도 이와 같았다.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는 가상 대피 시나리오를 짜 탈출 시뮬레이션을 만들었다.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정한 피난 행동과 배 기울기에 따른 승객들의 보행 속도를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그 결과 세월호가 52.2° 기운 상태에서도 9분28초 만에 전원 탈출이 가능했다. 검찰 조사 결과 세월호가 52.2°로 기운 때는 오전 9시34분이었다. 선원들이 대피 안내를 하고 4층에 있던 승객들이 3층까지 내려오면 10분 안에 전원 탈출할 수 있었다.
9시26분은 52.2°보다 기울기가 덜해 이동이 더 수월했다. 9시26분 전후로 해경이 10분 뒤에 도착한다는 사실도 방송을 통해 학생들이 알고 있었다. 일반인 승객들이 로프를 이용해 학생 탈출을 돕고 있었고, 학생들은 복도에 나와 대기 중이었다. 누구 하나 먼저 탈출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지도 않았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생존 학생들 증언을 들어보더라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순간에도 학생들은 질서를 지켰다. 승무원 박지영씨 등도 학생들 탈출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3층 좌현 갑판 출입구에 있었다. 4층 좌현 갑판 출입구 쪽에는 승무원 정 아무개씨 등이 위치했었다. 고 최혜정·남윤철씨 등 단원고 교사들도 학생들 탈출을 돕기 위해 함께 있었다. 바로 이때 ‘탈출하라’ ‘퇴선하라’는 한마디 방송만 나왔어도, 학생들은 10분 안에 탈출할 수 있었고, 세월호 밖에서 기다리던 구조의 손길을 받을 수 있었다.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복도에 대기해 있어 시뮬레이션에서 가정한 이동 시간을 더 절약할 수 있는 상태였다. 9분28초보다 더 빨리 퇴선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퇴선 방송도 어렵지 않았다. 선실에 있는 선내전화 0번을 누르면 누구나 전체 방송이 가능했다. 탈출 도중 맥주를 마신 박 피고인(선원)은 “0번을 누르면 전체 방송이 가능한 걸 알고는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 생각을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9시50분까지 ‘대기하라’는 방송을 했던 승무원 강씨는 “선장이나 조타실 지시가 없어 퇴선 방송을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그가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 방송을 하던 때는 이미 선원들이 탈출한 뒤였다. 조타실로부터 지시가 없자 강씨는 대기 방송을 지속한 것이다. 강씨는 3층 안내데스크 쪽에 물이 들어와 4층으로 이동해 퇴선했다. 그때 퇴선방송을 시도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그는 “방송 장비가 물에 잠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따로 퇴선 방송을 할 수 없었다”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오전 8시52분 최초 침몰 신고 접수부터 탈출 시뮬레이션이 가정한 9시34분까지 적어도 40분간 전원 탈출 기회가 있었다. 재판 기록을 분석해보더라도 참사의 가장 큰 책임은 이준석 선장에게 있다. 그는 인근 둘라에이스호에 구조 요청을 보내라고 직접 지시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둘라에이스호가 구조 대기 상태인 걸 알면서도 당장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그 법정 진술에 탄식이 나온다 참조). 이 선장은 해경이 온 데다, 둘라에이스호 자체가 구조에 적절하지 않은 걸로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00~300m 지점까지 접근해 세월호를 주시하던 문예식 둘라에이스호 선장의 판단은 달랐다. 9시25분 진도VTS, 둘라에이스호, 세월호 3자 교신 때 누군가 “라이프 링이라도 착용시켜 탈출시키십시오. 빨리”라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대검 디지털 포렌식팀 분석 결과 목소리 주인공은 문 선장과 동일인이었다. 문 선장은 “워낙 상황이 급박해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라고 말했다. 둘라에이스호는 세월호 승객 전원을 수용할 공간이 있었고, 화물 선적 때문에 바닷물 수면과 배 높이가 1.5m 정도였다. 문 선장은 법정에서 “배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는 사람들이 뛰어내려 바다에 뜬 채 대기하고 있어야지 침몰하는 배 안에 있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다”라고 증언했다. 그가 보기에 9시25분 세월호는 침몰하고 있어서 대형 참사가 불가피해 보였다. 그는 탈출한 승객을 구하기 위해 둘라에이스호 선원들을 선수와 중간, 선미에 배치까지 시켜놓았다.
판단할 주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자 참사는 일어났다. 123 경비정 김경일 정장은 목포 해경 상황실로부터 세월호 진입 명령을 받고도 “당황해서 잊었다”라고 실토했다. 현장에 출동한 헬기 조종사와 조난구조사들은 사전 정보를 전혀 알지 못했다고 증언했다(26~28쪽 기사 참조). 방청석에서 이들의 증언을 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휴” 하며 한숨을 쉬었다.
해경은 “선원들이 탈출 지시를 내려야 했다”라고 책임을 떠넘겼고, 선원들은 “해경이 구조할 줄 알았다”라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책임 회피와 구조 시스템 붕괴는 참사로 이어졌고 시스템 붕괴를 방치한 건 정부 당국이었다.
1심 재판의 기록 분석에도 한계는 있다. 검찰의 수사 목적은 형사처벌이다. 세월호 선원과 해경의 부실 구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청와대 등 구조 지휘 라인은 애초부터 수사 대상에서 비켜나 있었다.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부재’는 논란거리다. 7시간 논란은 부재 그 자체보다 과연 대통령이 제대로 보고를 받았느냐로 모아진다. 논란이 계속되자 청와대는 감사원 감사를 받았고, 자체적으로 7시간에 걸쳐 7회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곧장 ‘부실 감사’ ‘면피 감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5급 공무원 2명을 청와대로 보냈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방문해 사고 당일 상황관리를 담당한 행정관(5급) 4명만 대면 조사했다. ‘하루짜리’ 실지 감사로 그친 것이다. 감사원은 실지 감사 한 달 뒤 청와대에서 2장짜리 서면 답변을 받고 감사를 마무리했다. 앞서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할 때는 청와대에 미리 보고도 했다. 결국 지난해 10월 감사원의 세월호 관련 최종 감사 발표 때 청와대의 ‘청’자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세월호 1년을 되돌아보면,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보다 앞으로 밝혀야 할 진실이 더 많아 보인다. 이 간격을 메우는 것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역할이다. 정부가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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