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새정치민주연합의 개혁 지향 모임으로 알려진 ‘더 좋은 미래’와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주최하는 간담회에 초청을 받아 몇 가지 나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언론에서 자주 논의되어온 문제이기에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참고가 될까 해서 소개한다.

▲우선 이른바 이원집정부제가 핵심인,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개헌이 불가하다는 점이다. 지난 독재시대에는 궁여지책의 타협안으로 이원집정부제가 은밀하게 추진된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독재 시대를 점차 벗어나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도만을 생각할 때 과연 이원집정부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제2공화국의 내각제 때도 대통령과 총리 측의 파벌 다툼이 심했음을 경험했다. 그보다 권력 분산이 심한 이원집정부제에서는 어떠하겠는가. 지금 정치세력들의 권력 접근에의 편의만을 위해 그런 어설픈 가건축물을 만들어서야 되겠나 싶다.

대통령 5년 단임·직선제가 된 후 독재 위험은 사라졌다. 국민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 오히려 대개의 대통령이 2년만 지나면 힘이 빠지고 3년차부터는 레임덕처럼 되는 현상도 보아왔다. 한국은 지금 개혁 과제가 많고 힘차게 추진해야 할 과업도 산더미 같다. 그런데 이원집정부제로 정부의 추동력을 약화시키고 권력 게임만 즐기게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금권을 휘둘러온 재계가 이제는 정치권력마저 더 용이하게 요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지 않을까. 차라리 대통령 중임제를 말하는 측도 있다. 그러나 연임했더라면 하고 생각되는 인물도 별로 없었으니 현행 제도로 노력해보자. 지금 야당 안에서도 개헌 찬성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트로이의 목마’를 끌어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해두고 싶다.

▲ 보수 언론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야당의 중도화, 심지어는 우경화를 부채질한다. 현실은 대폭적인 개혁이 필요한데, 대부분의 보수 언론이 내세우는 편향된 방침은 기득권 세력의 옹호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객관적 보도자가 아니라 현실 참여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절박한 현실을 깨닫지 못한 측에서는 가끔씩 중도화·우경화란 넋두리를 말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수구화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밑에 깔린 계층의 고통을 외면하자는 이야기이다.

▲ 지난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내놓은 정책들은 야당 두뇌의 총화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민의 지지를 얻어 절반에 가까운 득표를 했다. 그 뒤 나온 책 〈1219 끝이 시작이다〉도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바탕 위에서 계속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다. 혹여 엉뚱한 정책으로 국민을 놀라게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과감한 개혁을 해야 한다는 의욕에는 뜻을 같이한다. 그러나 이념에 쏠리지 말고 현실의 바탕 위에서 한 발짝씩 정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생적인 문제의식과 상인적인 현실감각”이라고 그의 정치 철학을 압축하여 말한 바 있는데 나는 매우 탁월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 이제 야당도 지도자가 구심점이 되어야 할 때다. 야당 스스로 지도자를 아껴주고 그 주변에 뭉쳐야 국민들도 그를 아끼고 존중하게 된다. 여권에서는 권력의 권위도 있고 해서 그렇지 않았는데, 야권에서는 한마디로 이제까지 너무했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폄하할 때 국민 사이에 그들의 지도자상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이른바 카리스마도 바랄 수 없다.

한낱 썩은 나무토막에 불과한 ‘종북몰이’

▲ 가장 중요하게는 종북몰이의 문제가 있다. 우리 정치사회의 종북몰이는 참으로 병적이다. 그리고 불행한 것은 그 종북몰이가 집권세력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이다. 계속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과감하게 싸우다 보면 종북몰이도 종당에는 자충수에 빠질 날이 올 것이다. “에비! 에비!” 어린이들에게 잔뜩 겁을 주던 도깨비불이 한낱 썩은 나무토막이었음이 밝혀질 날이.

▲ 북한 문제다. 한국과 미국은 그 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북한은 실패한 체제이지만 없어질 체제는 아니지 않나. 지금의 중국 실력이라면 그들은 능히 실패한 북한을 지탱해줄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간에도 종당에는 대타협을 이룰 것이고 언젠가는 한반도에서의 안보 타협도 있게 되리라 본다. 그런 긴 전망으로 우리는 미국·중국 등과의 현명한 외교를 지속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도 큰형님 같은 도량을 보여야 할 것이다.

기자명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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