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사회복지세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연말정산 사태에서 보았듯이 세금에 대한 불신이 강하지만 동시에 복지에 대한 기대도 커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시사IN〉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78.8%가 ‘세금이 공정하지 않다’고 답하면서도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 수준을 유지하거나 높여야”에 50.3%가 동의하고, 구체적으로 “사회복지세를 신설한다면 세금을 더 내겠다”라는 사람이 51.6%에 달했다(제 388·389호 ‘세금과 복지 ‘바람’이 보인다’ 참조).

물론 거꾸로 절반에 가까운 사람이 증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깊은 조세 저항 정서를 생각하면 얼마 전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던 조사 결과다. 복지를 위해서라면 세금을 낼 수 있다는 ‘복지 증세’ 민심이 생겨나고 있는 건 분명하다.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주었다고 판단한다. 하나는 시민들이 점차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확대’의 한계를 알게 된 것이다. 물론 증세 대신 지출 개혁, 지하경제 양성화만으로 복지 재원을 조성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하지만 지난 2년의 국정 운영을 보면서 중앙정부 재정적자와 지자체 복지 예산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왕 증세할 거라면 재정지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복지목적세가 낫다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는 복지 체험이다. 한국의 복지가 빈약하고 이러한 상황에서 담뱃세를 올리는 박근혜 정부를 빗대 ‘복지 없는 증세’라는 비판도 등장하지만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에서 복지가 늘고 것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에서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특히 아이나 노인이 있는 집은 복지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 체험이 ‘복지 증세’에 대한 반발을 줄이거나 지지하게 만들고 있다.

2013년 복지 단체들이 국회에 청원한 사회복지세 제정안

내가만드는복지국가 등 복지 단체들은 2013년 사회복지세 제정안을 이미 국회에 청원, 제출했다. 사회복지세는 현행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종합부동산세에 각각 5분의 1씩 세금을 더 거두는 부가세(surtax)로서 2015년 기준 약 22조원을 마련한다. 복지목적세의 사용처는 시민의 증세 참여 동기를 북돋는 방식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는데 아무래도 아동·노인 복지가 핵심 대상이 될 듯하다. 그러면 세목의 이름도 아동노인복지세 혹은 세대연대세 등으로 불릴 수 있다.
사회복지세에 대한 관심이 커가는 만큼 의문도 제기된다. 우선 목적세로 도입되면 해당 예산을 다루는 부처 이기주의로 인해 재정 운용에 칸막이 효과가 발생한다는 우려다. 논리적으로 그러할 개연성이 있지만 이는 예산 운용의 민주주의 문제이지, 목적세라고 반드시 칸막이가 생기는 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를 맞아 복지 수요는 계속 증대되기에 사회복지세 세입이 남아 칸막이 안에 고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거꾸로 미래 복지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므로 사회복지세로도 그 재정을 감당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나라도 그러하듯이 한국의 복지 재원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다. 현재 복지 지출의 3분의 2가 사회보험에서 충당되고 향후 이 비중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사회복지세는 복지와 세금을 결합해 벌이는 대중적 복지 증세운동의 상징 세목이지 이것으로 모든 복지 예산의 필요분을 충당할 수는 없다. 그래서 건강보험·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료 인상도 필요하고, 소득세와 법인세의 공제·감면을 축소하며, 금융·임대·종교인 소득 등 기존 과세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종합적인 조세개혁이 요청된다.

사회복지세는 부자 증세, 보편 증세인가? 복지 단체들이 청원한 사회복지세에 따르면 기존 소득세를 내는 시민 모두가 자신의 소득세에서 5분의 1만큼 더 낸다. 과세 대상으로 보면 면세자를 제외한 70% 시민이 참여하기에 보편 증세에 가깝다. 그런데 기존 소득세가 지닌 강한 누진도가 그대로 사회복지세에 적용돼 근로소득자 상위 11%가 소득세 몫 사회복지세의 77%를 담당한다. 법인세 몫 사회복지세도 법인세입의 누진도를 반영해 전체 기업 약 50만 개 중 0.4%, 상위 2000개가 78%의 세입을 책임진다. 세입 규모로는 상위 계층, 대기업 몫이 대부분이어서 부자 증세에 근접한다. 과세 대상을 강조하는 종전의 ‘보편 증세, 부자 증세’보다는 과세 원리와 사용 목적을 부각하는 ‘누진 증세, 복지 증세’가 적합한 이름이다.
이제 증세가 불가피하다면 조세 저항을 넘어설 수 있는 ‘세금 정치’가 절실하다. 사회복지세가 세금 정치의 출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기자명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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