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캐피탈은 지난 10년간 총수 일가를 비롯한 특수관계인에게 차명 거래를 위한 사금고 노릇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따르면 조현준 사장, 조현상 부사장 등 효성 오너 일가와 임원 10여 명은 대출과 상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효성캐피탈을 사금고처럼 이용했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효성캐피탈에서 끌어댄 돈이 1조2000억원이다.

그뿐이 아니다. 효성캐피탈은 총수 일가의 개인 부동산 회사(공정거래위 조사에서 ‘위장 계열사’로 적발)에 수백억원을 대출했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아들들이 이 부동산 회사의 소유권을 100% 갖고 있다. 조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씨가 부동산 회사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를, 3남인 조현상씨가 ‘신동진’을 보유하고 있다. 아들들의 부동산 회사는 효성캐피탈에서 빌린 돈으로 건물을 지은 뒤 효성 계열사들(효성캐피탈도 포함)을 입주시켜 연간 수십억원대의 임대료 수입을 거두어왔다.

ⓒ연합뉴스조현문 변호사(가운데)는 조현준 사장(왼쪽)과 조현상 부사장(오른쪽) 관련 회사의 경영진을 고발했다.
예컨대 효성캐피탈은 지난 2009년 7.95%의 이율로 200억원을 부동산회사 신동진에 대출했다. 조현상 부사장은 당시 효성캐피탈의 이사인 동시에 신동진의 최대 주주(80%)였다. 신동진은 ㈜효성을 시공사로 700억원에 빌딩 건설을 발주했다. 2011년 말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지하 6층, 지상 20층짜리 건물을 완공했다. 이후 해당 건물 1층에 효성토요타의 도요타 자동차 전시장을 비롯해 효성 계열사들을 입주시켰다. 자금을 빌려준 효성캐피탈 역시 그 건물에 들어가 신동진에 임대료를 내고 있다. 신동진이 이전부터 소유하던 서울 서초구 방배동 건물에도 효성 계열사들이 입주해 있다. 이들 두 형제 입장에서는 효성캐피탈을 비롯한 금융권 대출로 건물을 지은 뒤 계열사들이 내는 임대료 수익으로 보전하고 있는 셈이다. 계열사를 통한 수익은 신동진 매출의 71%를 차지한다.

문제는, 조 회장의 두 아들이 효성캐피탈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지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오너 일가가 계열 금융사를 통해 자신들 소유의 회사에 돈을 빌려주는, 일종의 ‘셀프 대출’인 셈이다. 조현준 사장은 회사 돈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에 저택 3채를 530만 달러(약 60억원)에 구입한 혐의가 적발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또 3남 조현상 부사장은 2008년 8월 262만 달러(약 29억6000만원) 규모의 외화를 밀반출해 하와이 별장을 사들였다. 그는 262만 달러 벌금형을 받았다. 2남 조현문 변호사, 그룹 경영 방식에 문제 제기

효성 오너 일가에 만연한 불법 행태로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해에는 내부에서 반기를 든 이가 나타났다. 조석래 회장의 아들 3형제 중 둘째인 조현문 변호사(전 효성중공업 PG장)다. 조 변호사는 재벌 3세치고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고교 동창인 고 신해철씨와 보컬 그룹 ‘무한궤도’의 멤버로 활동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그대에게’란 노래로 대상을 탔을 정도로 음악에 심취했다. 조 변호사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뉴욕 주 변호사 자격증을 따 미국 유명 로펌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2000년 부친 조석래 회장의 귀국 명령을 받고 효성중공업에 입사해 후계 수업에 들어간다. 중공업 사업그룹(PG)장을 맡아 부사장을 지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주)신동진 건물.
그런데 조현문 변호사는 2011년 9월을 기점으로 조석래 회장의 눈 밖에 났다. 조 변호사 측은 효성의 불법 비리를 바로잡으려다 부친의 미움을 받아 그룹에서 쫓겨났다고 밝혔다. 조 변호사는 경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한 가문의 불법 경영에 가책을 느껴 공개적으로 준법 경영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조 회장은 이런 둘째를 그룹 경영에서 내쳤다. 지난해 6월 조 변호사는 형과 동생의 부동산 관리회사인 트리니티에셋매니지먼트와 ㈜신동진의 최 아무개 대표를 배임·횡령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어서 지난해 10월에는 형 조현준 사장을 포함해 그룹 계열사 핵심 임원 8명을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서울 중앙지검에 고소했다. 그는 고소장을 통해 “조현준 사장 등은 허위 기재, 계열사 부당 지원 등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 특정 개인이나 법인이 부당 이득을 취하도록 공모하거나 조작한 의혹이 있다. (회사 돈을) 특정 개인의 사금고로 이용하는 불법행위는 근절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고소 사건은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 머물고 있는 조현문 변호사는 〈시사IN〉의 취재 질의에 대해 국내 한 로펌을 통해 이렇게 답변해왔다. “나는 그룹 내의 불법행위를 바로잡아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해왔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룹을 떠나 깨끗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했다. 하지만 저들은 한쪽에서는 이런 나의 진의를 왜곡하고 음해해왔으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사문서 위조 및 명의도용 등을 통해 자신들의 불법행위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 내가 정당하게 독립해서 바르게 새 출발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들의 불법행위에 얽어매려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번에 모든 불법행위를 바로잡고 정리하려고 고소를 결정했다.”

ⓒ시사IN 신선영 (주)신동진 건물에는 1·3·6층에 효성건설이, 7층에 효성엔지니어링이 입주해 있다.
이어서 조 변호사는 “효성그룹의 부도덕한 인신공격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검찰 수사를 통해 회사를 바로잡고 진실을 밝혀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효성캐피탈은 조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 명의로 2013년 11월 50억원을 빌려줬는데 조 변호사 측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도명 대출’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의 고소 사건에 대해 효성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조현문 변호사가 2000년대 초반 효성중공업 경영을 맡은 이래 중공업 경영 사정이 안 좋아져 재작년에 내보낸 것인데 이렇게 아버지와 형을 공격하고 있다. 그가 그룹을 떠나면서 세전 주식가치로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겨 갔다는 점에서 본인도 정의의 사도라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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