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5일부터 네이버에 정식 연재를 시작한 웹툰 〈뷰티풀 군바리〉 1화의 한 장면. 여자도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게 된 한국 사회에서 ‘군대 여성 가산점 논란’을 주제로 텔레비전 토론이 열린다. 여성 패널이 묻는다. “막말로 우리 여성들 아기도 낳아야 하고 군대도 가야 하고, 더군다나 일도 해야 하는데 당연히 군 가산점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남성 패널들이 박장대소하며 맞받는다. “그래서요? 으하하핫!”

이 두 컷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다. 한국 온라인 여성 혐오의 기원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웹툰에 달린 베스트 댓글은 “토론하는 장면은 진짜로 있던 일”이며 당시 웃은 주체는 ‘여성부’라고 말한다.

지난 2000년 언론인이자 여성학자인 김신명숙씨가 KBS 〈길종섭의 쟁점토론〉에 출연했다. “저도 총 대신 책을 잡고 싶었습니다”(남성 방청객) “그런데요? 그래서요?”(김신명숙) “그런데 의무이기 때문에 갔습니다.” 방청객의 질문이 길어지자 사회자가 중단했다. 그 과정에서 카메라에 비친 여성 패널들이 희미하게 실소했다.
 

네이버에 연재 중인 〈뷰티풀 군바리〉는 여자도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게 된 한국 사회를 가상한다. 이 웹툰에 나오는 ‘제대 여성 가산점’에 관한 TV 토론 컷은 상징적 장면이다(오른쪽).
네이버에 연재 중인 〈뷰티풀 군바리〉는 여자도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게 된 한국 사회를 가상한다. 이 웹툰에 나오는 ‘제대 여성 가산점’에 관한 TV 토론 컷은 상징적 장면이다(오른쪽).


이 짧은 순간은 맥락이 삭제된 채 각종 패러디로 재생산되기 시작한다. “총 대신 책을 잡고 싶다”는 남성의 말을 ‘깔깔깔’ 비웃은 여성의 이야기는 그렇게 ‘레전드’가 되어 십수 년을 살아남았다. 온라인을 떠도는 ‘군 가산점 폐지로 인한 청문회’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신명숙씨는 “남자도 총보다는 책을 들고 싶어 합니다”라는 방청객의 말에 “그래서요? 깔깔깔. 웃기네요. 남자가 저지른 전쟁, 남자가 처리하는 게 그렇게 억울하세요? 그리고 남자라면 그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답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글의 출처는 ‘헤니르’라는 작가가 쓴 판타지 소설 〈뉴트럴 3〉이다. 소설 속 가상 인물인 ‘여성부 차관 김신황란’의 발언은 실존 인물 김신명숙의 ‘망언’으로 유통됐다.

군 가산점 폐지는 한국 온라인 여성 혐오의 기원이자 마르지 않는 샘이다. 1999년 12월 헌법재판소는 제대 군인이 공무원 채용 시험 등에 응시할 때 가산점을 주는 제도인 군 가산점제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헌재는 전체 여성 중 극히 일부만 제대 군인에 해당될 수 있는 반면 남자의 대부분은 제대 군인에 해당하며, 현역 복무가 가능한지 여부는 같은 남자라 해도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판정 결과 등에 따라 정해지므로, 군 가산점제는 여성과 장애인 등을 차별한다고 보았다.

위헌 결정 뒤 하이텔과 천리안 등 PC통신 토론 게시판은 남성 항의자의 글로 뒤덮였다. “헌재 결정은 한국의 젊은이들과 군필자들에게 분노와 좌절감을 주었다.” “여성들도 군대에 보내자.” 헌법 소원을 낸 학생이 소속된 이화여대 홈페이지도 분노한 누리꾼이 몰려 홍역을 치렀다. 안티 여성부·페미니즘·이화여대 사이트가 만들어진 것도 군 가산점 논란 전후다.

군 가산점제 폐지와 맞물린 ‘군대 다녀온 남성 누리꾼’의 분노는 전국에 흩어진 불특정 여성이 아닌 ‘가시화된 대상’을 만난다. 여성부다. 2001년 1월 김대중 정부 때 출범한 여성부는 ‘여성에게 제도적 특혜를 남발하고 쓸데없는 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하는 변질된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과자 ‘죠리퐁’이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여성부가 유통 금지를 추진한다는 오래된 루머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민간 여성단체나 페미니스트 개인이 주장한 것도 곧 ‘여성부의 만행’으로 둔갑한다. 셧다운제나 표현물 규제 등 다른 차원의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문제도 일단 ‘여성부의 만행’으로 묶이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월장 사태’부터 일베의 ‘김치년’까지

뒤이어 ‘월장 사태’가 터졌다. 2001년 부산대 여성주의 웹진 〈월장〉에 실린 글 ‘도마 위의 예비군’이 도마에 올랐다. 대학 내 군사 문화의 문제점을 짚는 이 글에는 “예비역을 100% 적으로 상정하고”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었다.

파장은 상상 이상이었다. 〈월장〉의 게시판에는 전국의 예비역들이 몰려왔다. 게시판은 욕설로 도배됐다. “야 이X들아. 군대 가봐. 누군 되고 싶어 예비역 되냐.” 분노는 페미니즘을 겨냥했다. “대한민국 젊은 X들이 다 그렇지 뭐. 특히 돌대가리 빡아 성격장애자 추녀 페미들.” 여기에 “옷 벗어라” 등 성적 모독이 올라오더니 급기야 회원 신상정보가 유출되면서 실질적인 위협이 가해졌다. 부산대 총여학생회는 부산성폭력상담소와 함께 ‘사이버 성폭력 대책위’를 구성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font〉〈/div〉‘개똥녀’ 사건(위)은 ‘온라인 여성 혐오’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개똥녀’ 사건(위)은 ‘온라인 여성 혐오’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여성학 연구자 윤보라씨(서울대 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는 2013년 〈진보평론〉 57호에 ‘일베와 여성 혐오’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윤씨는 온라인 여성혐오 확장사를 보여주기 위해 이른바 ‘00녀’ 시리즈가 진화해온 궤적을 짚는다. 2005년 6월 발생한 ‘개똥녀’ 사건은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지하철에서 개똥을 치우지 않은 젊은 여성과 이를 대신 치우는 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공분을 일으켰다. ‘공중도덕을 무시하는 무개념 젊은 여성’이 탄생한 것이다. 여성 혐오의 표적 집단에 ‘일반 여성 개인’까지 포함되기 시작한 징후적 사건이라고 윤씨는 평가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인터넷이 평판에 미치는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 사건으로 ‘Dog Poop Girl(개똥녀)’를 주목했다.

이듬해인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언론에 오르내린 신조어가 ‘된장녀’다.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고집하는, 허영심 많고 사치스러운 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2007년 군삼녀(군 복무 기간이 2년은 너무 짧고 3년이면 좋을 것 같다고 발언), 2009년 루저녀(남자 키 180㎝ 이하는 루저라고 발언)가 등장하면서, 혐오해 마땅한 ‘무개념녀’는 해마다 축적됐다.

일간 베스트 저장소(일베)의 여성 혐오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그동안 한국 사회가 축적해온 온라인 여성 혐오 서사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된장녀 등이 특정 유형의 여성을 가리켰다면, 일베의 ‘김치년’은 개념 없음을 한국 여성의 ‘종특(종족 특성)’으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김치년’은 내 친구의 여자친구, 학교 동기, 직장 동료, 자리 양보 안 하는 행인, 한국 20~30대 여성으로 무한 확장된다. 모든 한국 여성은 잠재적 ‘김치년’이기 때문에 ‘판별’ 작업이 필요하다.

여성을 향한 온라인 공간의 분노는 결국 오프라인으로 흘러넘치게 될까. 2008년 등장한 남성연대는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남성의 권익’을 주장한 거의 최초의 단체다. 윤보라씨는 “그동안 대변인이 필요 없던 남성이 자신을 약자로 명명한 최초의 세대”라는 표현을 썼다.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가 죽으면서, 여성을 향한 일그러진 분노에 아이콘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하던 일을 계승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났다. 성재기를 드러내놓고 찬양하지 않지만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여전히 여성부의 ‘만행’에 분노하고, 일상에서 만나는 여자들이 ‘김치년’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며, ‘남성 역차별’을 조장하는 페미니즘을 혐오할 것이다. 그런 이들이 ‘명불허전 김치년’의 증거를 온라인 공간에서 퍼 나를 것이다. 또다시 증오의 언어가 소년과 청년의 마음을 흔들지도 모른다.

 

기자명 전혜원·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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