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수〉EBS 최고의 교수 제작팀 엮음 예담 펴냄
수십 년 넘은 낡은 강의 노트를 해마다 어김없이 들고 들어와 녹음 테이프처럼 반복하는 교수, 휴강을 밥 먹듯이 하다 보니 한 학기가 지나도 도대체 뭘 배웠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강의, 농담과 시사 평론(?)으로 매 시간 강의를 커버하다 보니 해당 강의 주제에 관한 전문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강의. 이런 대학 강의가 비일비재하다면 과장일까?

학기마다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는 철저한 준비, 강의 과목에 대한 넘치는 열정, 늘 학생과 소통하는 열린 사고를 보여주는 강의. 이런 강의를 하는 교수가 많다면 등록금 비싼 대학도 다닐 만할 것이다. 바로 그런 교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에서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강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알 수 있다. 단, 모두 미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 이야기라는 점을 감안하자. 우리나라에도 그런 강의, 그런 교수가 어찌 없으랴마는, 치열한 경쟁에서 최고가 된 미국 대학교수의 사례를 살펴보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인민복에 레닌 모자 쓰고 강의하는 까닭

먼저 동국대 석좌교수이자 미시간 공대 겸임교수 조벽 교수다. 미시간 공대 최초로 ‘최우수 교수상’을 두 차례나 받은 그는 자기의 교수법을 이렇게 말한다. “교수가 질문하고 스스로 답하는 강의는 최하급 강의, 교수가 질문하고 학생이 답하면 조금 발전한 강의, 학생이 한 질문에 교수가 답하면 바람직한 강의다. 최상급 강의는 학생이 한 질문에 다른 학생이 답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조벽 교수는 “최상급 강의는 학생이 한 질문에 다른 학생이 답하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강의란 소통이자 대화여야 한다는 점은 하버드 대학 정치철학과 샌들 교수의 사례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학생의 머리를 연방 두들겨대는 골치 아픈 질문을 던지는 그의 강의에 대해 학생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시작부터 쏟아지는 질문에 거수투표를 하고,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게 하는 수업은 흔치 않다. 게다가 한발 더 나아가 학생이 직접 그 토론에 주인으로 참여할 수 있다니. 내 인생에 이렇게 재미있는 수업은 처음이다.” 샌들 교수 본인은 질문 위주의 강의를 이렇게 말한다. “첫 수업부터 모호하고 둥글둥글하게 정치철학이란 이런 거다 하며 이야기하는 건 딱 질색이다. 그 대신 나는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나의 학생을 딜레마로 초대하는 초대장이다.”

가장 딱딱할 것 같은 의과대학 강의에서도 독특한 교수법으로 큰 효과를 거두는 교수도 있다. 밴더빌트 의대 세포생물학과 교수이자 임상신경학 교수인 노던 교수다. 그는 신경과학 강의 시간에 무용수를 초청해 학생에게 춤을 배우게 한다. 인간 두뇌의 작동 원리를 실감나게 체험시키기 위해서란다. 더구나 그는 질환을 경험한 환자와 환자 가족이 함께하는 특별 수업도 연다. 전쟁사 분야의 석학 피츠버그 대학 골드스타인 교수는 강의실에 무솔리니의 군복을 입고 등장하거나, 마오쩌둥을 강의할 때 인민복에 레닌 모자를 준비해 입고 오기도 한다.

골드스타인 교수.
골드스타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수업이 살아 숨쉬도록 연출하고 싶다. 수업을 창조하고 조율하는 감독이자 작가가 되는 셈이다. 이를테면 나는 오늘은 히틀러가 되고 내일은 무솔리니가 된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은 역사 수업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영상과 사진, 기사 등을 이용해 생생한 관련 자료를 보여주고 이에 대해 토론하게 한다. 무솔리니에 관한 글만 읽는 것보다 그의 사진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
강의는 교수와 학생 모두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신성의 차원에까지 닿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최고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학생의 권리가 먼저 보장되어야 할 것 같다. 최고의 강의에 참여할 수 있다면 최고의 등록금이라도 조금은 덜 무겁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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