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경감과 교육 격차 해소를 목적으로 하는 EBS 2TV 시범 서비스가 실시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다큐 프라임〉 〈세계테마기행〉 〈방귀대장 뿡뿡이〉 등 성인과 유아 중심의 편성을 하는 기존 EBS는 EBS 1TV로 하고, 유료방송에서만 제공되던 초·중등 교육 및 연령별 맞춤 영어, 다문화 및 통일 등에 관한 강의 콘텐츠는 EBS 2TV에 편성하는 EBS 두 채널 시대가 열린 것이다.

EBS 2TV는 지상파 최초로 제공되는 다채널 서비스(MMS:Multi-Mode Service)이다. 디지털 압축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동안 하나의 채널만을 제공할 수 있었던 주파수 대역에 두 개의 채널을 제공하게 되면서 가능해진 무료방송이다. 그러나 여전히 EBS 2TV가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많다. EBS 2TV는 왜 보이지 않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를 전송하는 체계가 제대로 뒷받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전파를 통해 방송을 볼 수 있는 직접수신 가구가 전체 가구 대비 10%에도 이르지 못한다. 유료방송이 장악한 아파트 공시청 시설 등으로 인해 직접수신에 따른 불편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법적 정비나 보완작업은 없다.

두 번째로는 국민의 90% 이상이 가입한 케이블SO, 위성, IPTV 등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EBS 2TV 재전송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국내 유료방송은 초기 지상파 난시청 해소를 위한 보조 수신의 수단으로 확산되었지만, 20여 년이 흐른 지금 미디어 생태계의 최대 강자다. 이미 포화 상태로 치닫고 있는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면 무료방송의 다채널 서비스 확산은 플랫폼 경쟁 구도에 영향을 줄 만한 위협 요인이다. 이 때문에 처음으로 시도되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원칙도 방향도 분명치 않은 방송통신위원회에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민의 권익 보호와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운영 원칙에서도 이용자의 복지 및 보편적 서비스의 실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대책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방송통신위원회가 산업 진흥에 기울이는 관심에 비해 이용자 복지에 기울이는 관심은 인색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표적 복지정책의 하나인 무료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에 대해서도 우유부단한 행보를 보여왔다. 다채널 서비스는 디지털 TV를 구매한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이고, 박근혜 정부의 미디어 정책 플랜의 하나로도 계속 언급되어 왔지만 공표와 철회가 반복되었다. 그 결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허용 범위가 대거 축소되었으며, EBS에 한정해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최소화되었다. 그마저도 명확한 정책 방향을 천명하고 적극적인 서비스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의지 없음으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국민 위한 서비스가 사업자들 이해관계에 따라 후순위로 밀리다니…

방송통신위원회는 이러한 상황을 적극 조율하고 대응할 의사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직접수신을 위해 체계 정비를 요구하는 단호한 움직임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지원하려는 노력도 미온적이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의 행보에 대해 원만한 타협과 상생을 촉구할 뿐 의무재전송제도 정비 등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방향 제시에 앞장서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 다수의 편익을 증대시키는 공익적 서비스가 사업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후순위에 놓이는 관행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설립 목적을 무색하게 하는 일임에도 말이다.

기술의 진화에 따라 새롭게 발생하는 수혜를 이용자들이 함께 나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권리라 할 수 있다. 더 많은 서비스, 더 비싼 서비스가 계속 만들어지는 만큼 저소득층의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해 더욱 다채로운 무료 공공 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MB 정부 이후 미디어 정책은 온통 산업진흥 정책 일변도다. 그 안에서 공공성에 대한 고려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따라 무료방송, 공공 서비스의 구실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결국 국민은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환경으로 계속 떠밀려 간다. 언젠가부터 돈을 주지 않고는 방송을 볼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일이기에 앞서 방송통신위원회의 법적 책무다. 이를 방기하는 방송통신위원회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기자명 강혜란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정책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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