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현상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 동기나 효과도 단순하지 않다. 공직 부패가 모두 부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이를테면 기름칠이 부족하면 기계가 멈추듯이 게으른 공무원을 부지런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부패하다고 반드시 비윤리적이거나 비도덕적인 것도 아니다.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관리를 매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영국 케임브리지 대학)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뇌물 수수의 소득분배적 효과를 지적하면서 부패가 오히려 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경제학적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판사 존 누난은 ‘뇌물의 역사’에서 부패는 독재 다음으로 정부를 좀먹는 재앙이라고 했다. 뇌물을 도덕적 측면에서 파악하는 관점이다.

한국은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면 심각한 부패 국가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명박 정부 이래 부패지수가 연속해서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OECD 34개국 가운데 27위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정치인과 공무원을 대상으로 부패가 어느 정도 존재하는지를 조사해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한다.

부패 문제의 핵심이 권력 부패인 점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공직 수행과 관련해서 이해관계의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특히 관 우위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의 영향력은 절대적이고, 이를 견제할 민주적 통제장치도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공직자의 청렴성, 공무에 대한 불가매수성(不可買收性)은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지속성의 근간이다. 뇌물을 받고 전투기, 전함, 대포와 같은 군수물자에 불량 부품이 사용되어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상황은 단순한 부패 문제가 아니라 간접적인 살인 행위이자 이적 행위에 해당한다.

권력형 부패는 정부의 결정을 ‘왜곡’함으로써 경쟁 원칙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정당한 절차가 아니라 돈으로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다. 돈이 좌우하는 강자 독식의 사회라는 인식을 하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체제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히 공직 부패를 줄여 투명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국회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 속칭 김영란법을 통과시켰다. 공포까지 소정의 절차를 마치면 내년 9월께부터 시행될 것이다. 이 법의 주목적은 공직 부패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통과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부수적인 사항 때문에 진통을 겪었다. 법안의 핵심은 ‘직무 관련성’을 따지도록 한 형법상 뇌물죄와 달리 직무 관련성을 규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공직자 이외에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 사학재단 이사진까지도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불고지죄도 규정함으로써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형사처벌 대상 금액도 비교적 적은 100만원을 기준으로 했고, 100만원 이하라도 과태료 처분을 받는 등 준수만 된다면 한국 사회의 부패 현상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내용들이다.

정부 비판적인 언론인 등에 대한 검찰의 자의적 법 적용 가능성 우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에 대한 숙고가 부족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안에 내재된 문제점을 알면서도 통과시켰다는 의원들의 소회, 통과되자마자 등장한 수정·보완 주장은 이를 방증한다. 그러나 일단 법을 제정한 다음에 이를 개정하기는 제정 못지않게, 어찌 보면 제정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부패 범죄에 대해서는 많은 법률이 있다. 형법 이외에도 특가법, 특정경제범죄처벌법 등 현행법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그동안 사법 당국의 소극적이고 편향적인 법 적용으로 인해 법망을 빠져나간 경우가 적지 않았다. 또한 대법원 판례는 직무 관련성도 청탁 유무나 개별적 대가 관계를 불문하고 전체적으로 대가 관계가 있으면 인정하므로 현행법 적용에 큰 장애는 없다.

오히려 이 법 제정으로 인해 가장 염려되는 점은 검찰의 자의적 법 적용 가능성이다. 공직자가 주 대상이 되지 않고 예를 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인이나 전교조에 가입한 교원에 대하여 적용한다면 이는 이 법 제정을 주장했던 사람들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이들이 돈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는 게 아니라 공정하지 않은 법 적용은 정의롭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존 누난이 말한 바와 같이 뇌물은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어서 뇌물죄를 단죄하는 세력이 어느 계급이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견해를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

기자명 박상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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