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게 봄 날씨라더니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제법 세차다.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토론회로 향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았다. “서민경제의 뿌리, 자영업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전순옥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마련한 소상공인정책연구소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의 주제다. 농업과 중소기업 정책은 참 다종다양하고 결코 적지 않은 예산이 배정되었는데도 지난 30년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열악한 자영업은 더 말해 무엇하랴.

전인우 박사(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발표 역시 자영업 부문의 위기로부터 시작했다. 소상공인 실사지수(Business Survey Index)가 2014년 7월 45.4를 기록했고 지금은 53 정도로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다. 실사지수란 100을 기준으로 하는 지표인데, 100 이하로 전망이 어둡다 하더라도 70이나 80 정도가 아니라 50이라는 건 절망적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자영업 비율은 사업체 수든 종사자 수든 어떤 기준으로 보나 선진국보다 높다. 예컨대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을 보면 2013년 한국은 22.5%로, 미국의 6.5%, 일본의 8.8%보다 훨씬 높다. 인구 1000명당 사업체 수로 보면 숙박·음식업의 경우 한국은 13.5개인 데 비해 미국은 2.1개, 일본은 5.6개이다. 따라서 자영업의 과잉 경쟁 및 수익률 하락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주현 박사(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인위적 구조조정은 심각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므로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 경향을 역전시키거나 저지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토론회의 모든 참석자는 자영업자를 사회보험(산재보험, 공공부조 형식의 고용보험)에 포함시켜 보호하고 이를 위해 일정한 조건하에서 자영업자의 사회보험료 부담을 지원하자는 이병희 박사(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의 제안에 찬성했다. 또한 자영업 정책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데도 모두 동의했다. 예컨대 저임금 노동자의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능력 있고 젊은 자영업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업체가 아무리 어려워도 이를 그만두고 노동자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기업들의 생존 전략인 네트워크화와 지역공동체와의 결합이 자영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는 이은애 서울사회적경제센터 소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에밀리아 로마냐 지방에서는 협동조합과 영세 기업들이 신뢰의 네트워크를 이뤄 위험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넘어야 할 장애물은 수도 없이 많다. 당장 기획재정부는 사회보험 지원에 들어가는 예산에 난색을 표할 것이고(이 부처는 자영업의 획기적 구조조정을 지지한다), 스스로를 모래알이라고 표현하는 상인들이 협동조합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테다. 더 결정적인 장애물은 이동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정책실장의 입에서 나왔다. 대형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하면서 대기업의 유통사업 진출을 지원하는 ‘유통산업 발전 5개년 계획’은 군사작전 식으로 밀어붙인다면 이런 토론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GDP가 아닌 사람들의 생활수준과 행복이 정책 목표여야

결국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영업의 회생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라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연말 통과한 부동산 3법을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했다. 하지만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대리점보호법, 상가임대차보호법, 중소상인적합업종특별법은 말하자면 ‘썩어 문드러진 국수’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더구나 정부가 지금 빨리 통과시키라고 채근하는 서비스발전 기본법은 자영업자들을 다시 한번 강타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3법’과 서비스 민영화 정책은 혹여 단기적인 성장률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의 삶을 절벽 끝으로 밀어붙일 것이다. 최근 강남의 집값이 뛰는 걸 보며 희희낙락하는 대통령이라니, 설령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서민들의 경제는 3년 내내 한겨울일 것이다.

설 연휴 기간에 읽은 논문 몇 편이 떠오른다. ‘사람이 우선하는 거시정책’에서 GDP와 같은 거시지표는 정책 수단일 뿐이며 사람들의 생활수준, 행복이 정책 목표여야 한다는 애트킨슨 교수의 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아무리 쇠귀에 경 읽기라 해도.

기자명 정태인 (칼 폴라니 연구소 창립 준비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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