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방산업체가 ‘효성 오너 가문 특혜지원’에 항의해 국방부 담벼락에 친 현수막.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를 지나는 영동고속도로 양지 나들목 근처에 있는 한 중소기업 공장 생산라인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숙련공 80여 명이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고 있다. 공장 안 관사에 살림을 차린 가족까지 합하면 300여 명에 이르는 장애인의 삶의 터전인 이곳은 중소 방위산업체인 (주)코리아일레콤이다.

요즘 이곳 장애인 노동자는 생계 터전을 위협받고 있어 시름이 깊다. 회사의 운명이 대기업 효성그룹 오너 가족이 이끄는 경쟁사 로우전자의 ‘횡포’로 풍전등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태의 발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 비무기체계 사업단은 중대급 교전 훈련장비 도입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를 공개경쟁 입찰에 부쳤다. 기존 소대급 교전훈련장비 납품을 독점해 100억원대 장비를 공급한 로우전자 장비 고장률이 무려 80%에 이르러 장병의 원성이 자자해 육군 소부대 전술훈련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중대급 교전훈련장비 공개경쟁 입찰에서는 엄정한 기술 평가와 심사를 거쳐 장애인 기업인 코리아일레콤(당시 명칭은 한림에스티)이 1위로 선정됐다. 함께 입찰에 참가한 로우전자는 3위로 탈락했다. 그런데 탈락한 로우전자가 군에 로비를 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로우전자는 육군 법무감 출신 김 아무개 변호사를 고용해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육군 법무감실에서는 육군 교육사령부에 “두 개 업체를 뽑아 경쟁개발을 시켜 납품토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라는 요지에 통지를 보냈다. 결국 육군은 법무감실의 권고라면서 개발 공고를 다시 내고 이 사업을 또다시 경쟁 입찰에 부쳤다.

불법·특혜로 얼룩진 마일즈 사업

 사실상 짜고 치는 고스톱이나 다름없는 재입찰을 통해 이번에는 코리아일레콤과 로우전자가 나란히 뽑혔다. 이 과정에서 로우전자는 육군의 요구 성능 기준을 제대로 맞추지도 못했지만 육군 사업단은 이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부적절한 특혜 조처를 해준다. 우선 중대급 마일즈 사업 당시 육군 교육사령부는 개발업체의 구비조건으로 자체 생산공장과 연구소 및 연구원 확보를 꼽았다. 또 자본금과 자체 기술개발 능력 보유도 조건으로 달았다. 그러나 로우전자는 경북 구미시에 있는 효성공장 한쪽에 딸린 종업원 10여 명의 영세 제조업체였다. 회계법인 감사보고서를 보면 이미 자본 잠식된 상태로 채무 불이행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온 불량 회사였다.

군 마일즈 사업팀의 ‘괘씸죄’ 적용으로 실직 불안에 떨며 생산 라인을 지키는 코리아일레콤 장애인 노동자들.
로우전자 현지공장을 방문 조사했던 한 장교는 소감문을 이렇게 적었다. “구미 지역 효성공장에 세들어 사는 로우전자를 방문해보면 누구나 어떻게 이런 회사에서 그 많은 마일즈 장비를 만들었을까 의구심을 가질 만큼 영세하고 공장 자체도 가내수공업 수준이다. 현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직원 10명 중 임원이 4명이고 나머지가 기술인력으로 장비 생산 시에는 임시직을 고용했다고 설명한다. 전량 조사를 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바로 이런 회사인 줄 알면서도 육군사업단 책임자들은 로우전자를 중대급 마일즈 사업에 무리하게 끼워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했던 것이다.

그 뒤로도 육군사업단의 불공정 행위는 노골적이고 교묘하게 이루어졌다. 군에서는 로우전자를 1위로 선정된 코리아일레콤의 경쟁 업체로 뽑아주었지만 로우전자는 사실상 중대급 마일즈 장비 기술개발에 실패했다. 로우전자의 개발 장비는 기술력 부족으로 군 요구도에서 명시한 “발사기와 통제기 사이의 무선통신 방식에서 기능이 강화된 국제 표준방식을 적용해야 한다”라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반면 코리아일레콤은 이 요건을 무난히 충족해 봉인한 개발 시제품을 육군에 제출했다. 이렇게 되자 육군은 봉인 시제품 비교 평가를 차일피일 미루더니 받은 지 5개월이 지난 2007년 4월27일에야 국제 표준방식에 관한 군 요구도를 변경해 로우전자를 구제해준다.

결국 참다 못한 장애인 기업 코리아일레콤은 로우전자에 대한 특혜와 불법 봐주기 사업방식을 국회 국방위에 알리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국감에서 한나라당 공성진·맹형규 의원 등이 육군의 부적절한 사업을 질타하고 로비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국방부 감사실에서 이 사업에 대한 감사를 벌여 군사 요구도를 변경해 로우전자를 선정해주는 따위 불법 사업이 진행됐음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국방부는 사업단 관련 장교 2명을 징계했지만 솜방망이였다. 로우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육군사업단 측이 부적절한 행위는 했지만 로우전자의 특혜성 로비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육군 사업단은 엉뚱하게도 업체의 과당경쟁으로 사업을 못하겠다며 이 사업 자체를 아예 취소하겠다고 맞섰다.

육군사업단, 법원 권고조차 무시

한편 대전지방행정법원은 증거 조사를 거쳐 “육군 사업 관계자들은 감정보다 이성으로 업무처리를 해야 한다. 국가의 전력과 육군을 위해 코리아일레콤과 육군사업단은 서로 사과·화해하고 이 사업이 계속되도록 조처할 것을 권고한다”라는 취지로 조정권고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육군 사업단은 법원의 권고를 무시했다. 더 나아가 육군비무기체계 사업단은 중대급 마일즈 사업 자체를 없애고 여단급 마일즈 사업을 신규로 시행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덮으려 한다. 누가 보아도 육군사업단이 감정에 치우쳐 장애인 중소기업이 사업을 못하도록 만들려는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중대급 마일즈 사업에서 정당하게 1위 업체로 선정돼 지난 5년간 50억원 빚을 얻어 장비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앞선 기술력을 갖춘 장애인 기업 코리아일레콤은 하루아침에 도산할 처지에 놓인다.

육군사업단이 미는 로우전자는 그동안 소대급 마일즈와 대대급 마일즈 장비, 야간표적지시기 등을 군에 독점 공급하는 과정에서 400억원대의 국민 세금을 가져갔다. 80억원대의 조세를 포탈해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도 드러났다. 중대급 마일즈 사업을 둘러싸고 온갖 편법을 동원해 부적격 업체인 로우전자에 특혜를 준 육군사업단에 대해 철저한 감사와 수사가 뒤따라야 할 이유가 넘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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