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민주당(위)은 최근 구호를 ‘쇠고기 재협상’에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바꾸었다.
국회 본청 앞 천막이 사라졌다. 송영길 의원을 주축으로 ‘개혁과 미래’ 소속 민주당 의원 12명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장관고시를 막겠다며 농성을 시작한 지 15일 만이다. 천막은 민주당 장외 투쟁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천막을 걷고 쇠고기 재협상 실현과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근본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은 6·10 대규모 촛불집회에 나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애초에 이 운동은 ‘국민 1000만명 서명운동’으로 계획됐다. 그러나 내부 토의를 거쳐 ‘1000만’이라는 목표치를 지웠다고 한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1000만명 서명을 받으려면 국회에 못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국회로 밀어주는 힘이 없다”

민주당이 ‘어떻게 하면 국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장외 투쟁을 선언하고 뛰어든 촛불집회 현장에서 ‘환영’은커녕 ‘존재감’조차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몇몇 보수 신문은 민주당이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자기 할 일을 방기한다며 ‘민주당 흔들기’에 나섰다. 6월9일에는 자유선진당마저 야3당 공조 체제를 깨고 국회 등원을 선언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돌아가야 하는데 국회에 들어가라고 밀어주는 힘이 없다”라는 하소연이 새어나온다. 

민주당은 애초 ‘장외 투쟁’을 선언하면서 ‘쇠고기 재협상’을 국회복귀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6월11일 대변인 논평에서는 “한나라당이 국민의 재협상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진정성이 있다면 국회에 당장이라도 들어가서 민생 현안을 처리할 각오도 되어 있고 준비도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여기에서 ‘진정성’이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합의해주는 것이다. 처음보다 한참 후퇴한 자세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때 6·15가 지나면 등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왔다. 6월12일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의 만남에서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원내대표의 만남은 홍 대표가 ‘선 등원, 후 논의’를, 원 대표가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대한 선 동의, 후 등원’을 주장하며 견해 차만 확인하고 끝났다. 민주당은 방미단 추가 협상 내용을 두고 보자는 쪽으로 등원 시기를 다시 미뤘다.

민노당은 대책회의와 함께 가기로

민주당의 엉거주춤한 행보를 가장 신경썼던 쪽은 민주노동당이었다. 민노당은 애초에 “민주당이 등원하면 은근슬쩍 따라간다”라는 복안을 세워두었다. 촛불집회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강기갑 원내대표가 쇠고기 스타로 떠오르면서 ‘광장’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당 지지도가 올라 좋아했지만, ‘투쟁’ 이미지를 각인한다는 딜레마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노당은 고심 끝에 쇠고기 재협상이 타결될 때까지는 촛불집회에 남는다는 방침을 고수하기로 다시 결정했다.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자유선진당과 함께 열기로 한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에 관한 공청회에 불참하는 방안을 한때 검토하기도 했다.

민노당이 이처럼 방침을 강경하게 바꾼 것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측을 만나고 나서다. 민노당은 6월11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촛불집회의 향후 향방을 논의하는 자리에 정당으로는 유일하게 참석했다. 그리고 6월20일까지 재협상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 경우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겠다는 대책회의 측과 견해를 같이하기로 했다. 민노당 관계자는 “국민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촛불집회에 함께할 예정이다”라고 말을 바꿨다. 대책회의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라고 볼 수도 있다.

촛불집회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발을 빼고 싶어하는 일반 참가자도 눈에 띈다. 다음 아고라를 중심으로 모인 네티즌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그동안 촛불집회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구호를 ‘이명박 퇴진’으로 바꾸고 가두시위를 시작하는 등 집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6월7일 밤, 아고라 깃발 아래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 큰 분쟁이 있었다. ‘비폭력’을 고수해야 한다는 쪽과 ‘강경 투쟁’을 하자는 쪽이 맞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비폭력 대오’를 이끌던 한 네티즌이 ‘탄핵’당했다. 그는 연락을 끊고 시위에 나오지 않는 상태이며 매일 밤 그와 함께 거리행진을 했던 ‘아고리언’들은 ‘시위 무기력증’을 호소한다. 아고라에서 레인냥a(23)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는 네티즌은 “직장생활을 하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집회에 계속 나가는 게 힘들다. 아고리언끼리 싸우는 것도 지겹다”라며 현장에서 자주 만나던 몇몇 열성 아고리언이 벌써부터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촛불집회가 장기화하면서 득을 보는 쪽도 있다. 진보신당은 거의 매일 촛불집회와 관련한 내부 회의를 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사실 원외정당 처지에서 보면 ‘거리의 정치’를 하기에 지금처럼 좋은 기회가 없다. 진보신당에서 운영하는 현장 방송 ‘칼라TV’와 촛불집회 법률지원 서비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후원금이 쌓이고 정당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도 촛불집회에서 빠져나오기 싫은 대목이다.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역시 촛불집회 덕분에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상황이다. 시위 현장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오마이TV’가 인기를 얻기 때문이다. 오마이뉴스는 고가의 방송차를 구입하는 등 ‘촛불집회 특수’를 누리기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