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포토경찰의 군홧발에 머리를 찍힌 시민은 ‘서울대 여학생’뿐만이 아니다.
“사망설 좀 취재해주세요.” 주문이 쏟아졌다. 〈시사IN〉 거리편집국에 하루 두세 번꼴로 제보자가 찾아왔다. 인터넷 게시판에 ‘여성 사망 의혹’ 사진과 글을 올린 최 아무개씨(48)가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까지 됐지만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경찰은 괴담에 엄정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그럴수록 ‘설’을 믿는 사람은 들끓었다. ‘뭔가 켕기는 게 있구나.’ 

널리 확산된 ‘설’은 너클 아저씨 의혹과 여성 사망설, 크게 두 가지이다. 지난 6월1일 새벽, 한 남성이 전경에게 둘러싸여 ‘너클처럼 보이는 기구’로 얻어맞는 장면이 KBS와 한겨레의 카메라에 찍혔다. 뒷머리를 가격당하고 코피까지 흘리며 연행되는 피해자를 보면서 사람들은 ‘최소한 의식불명에 빠졌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애타게 걱정하던 네티즌 앞에 김태성씨(37)가 나타났다. 자기가 ‘너클 아저씨’라고 밝혔다. 지난 6월2일 밤 석방된 김씨는 6월5일, 자신은 무사하다며 인터넷에 글과 얼굴 사진을 올렸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동영상에 찍힌 얼굴과 사진 속 얼굴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연행된 시점, 함께 연행된 사람의 신상정보, 접견했다는 민변 변호사 이름 등도 ‘네티즌이 아는 사실’과 김씨가 밝힌 내용이 달랐다. 김씨는 위험에 처해 있을지도 모르는 ‘진짜 너클 아저씨’를 사칭하는 사기꾼이 돼버렸다.

김태성씨와 너클 아저씨가 동일 인물이 아닐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시사IN〉은 김씨를 만나 신분증과 병원진단서, 경찰통지서, 당시 입었던 옷을 확인했다. 6월1일 새벽 함께 연행된 박태훈씨(22)도 증인이 돼주었다. 다음 아고라와 마이클럽 등에 20여 건 의혹 글을 올리며 김씨가 너클 아저씨가 아니라고 확신하던 김경아씨도 직접 확인하고 의심을 거뒀다. 김경아씨는 “직접 보니 김씨는 옆모습과 앞모습이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특히 만났다는 민변 변호사 이름을 틀리게 대는 걸 의심했는데, 알고 보니 변호사 명함을 연행자 중 한 사람만 받아서 생긴 오해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문점이었던 연행 시점도, 당시 김씨를 찍었던 KBS 〈취재파일 4321〉에서 새벽 4시가 아니라 0시 전후라고 고쳐 밝혔다. 김씨가 박씨의 소속을 연세대 실용음악과로 말한 것 역시 연세대 사회교육원 안의 음악교육센터와 혼동해 생긴 오해였다.

너클 아저씨 의혹보다 더욱 심각하게 퍼진 것은 여성 사망설이다. 최 아무개씨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의혹을 제기한 뒤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서 나름의 분석이 나왔다. 지난 6월1일 새벽 경복궁 옆 통의파출소 근처에서 전경 사이에 흰옷을 입은 한 여성이 죽어 누워 있고, 이후 그녀가 급히 스타렉스 승용차에 실려 어딘가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광화문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오인된 사람은 당시 현장에서 호흡곤란으로 쓰러졌던 서울경찰청 소속 306중대 상경 방 아무개씨였다”라고 해명했다.

연합뉴스 “전경을 여성으로 잘못 써”

의혹은 꺼지지 않았다. 6월3일 연합뉴스에서 나온 “과잉 진압 허위 동영상에 경찰 골머리”라는 기사가 증거로 쓰였다. 조선일보 등이 이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네티즌은 “(경찰) 확인 결과 사진에 등장한 전·의경들은 당시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있던 여성을 심폐소생술로 소생시킨 뒤 경찰 차량을 이용해 병원으로 이송했던 것으로 드러났다”라는 기사 문장을 보고 사망설을 확신했다. ‘여성’을 ‘전경’으로, 경찰이 말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기사를 쓴 연합뉴스 박인영 기자는 “경찰 보도자료를 받고 급히 쓰는 과정에서 실수로 ‘전경’ 대신 ‘여성’을 써버렸다. 뒤늦게 지적을 받고 1시간 뒤 쓴 ‘종합’ 기사에서는 내용을 정정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김태성씨는 자신이 ‘너클 아저씨’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최 아무개씨가 구속된 이후 인터넷에는 “내가 바로 최 아무개이다. 국정원에 의해 풀려났고 정부가 장례식까지 치른 여대생 사망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서울 동부이촌동에 사는 우리 어머니를 확인해봐라”는 요지의 글이 퍼졌다. 최씨의 석방 촉구와 변론을 진행하는 광우병대책위 측은 “최근까지 변호사와 대책위 담당자가 유치장에서 최씨를 직접 만났다. 최씨 양친은 다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글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너클 아저씨와 여성 사망설을 둘러싸고 수많은 해명이 나왔지만 일부 네티즌은 아직까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김태성씨에게는 “도대체 얼마를 받았기에 이런 짓하냐” “너클 아저씨 사칭해서 뭘 얻으려는 거냐”라는 식의 전화가 자주 걸려온다. 김씨에 대한 의심을 거두고 게시판에 글을 올린 김경아씨도 ‘알바’라고 욕을 먹었다. 대책위도, 최씨의 변호사도 믿지 않는다. 아무리 증거를 보이고 직접 만나서 확인하라고 해도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라며 막무가내로 말을 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김태성씨는 “처음에는 그래도 나를 걱정해주는 거니까 이해가 되다가 인신공격적인 말을 너무 많이 들으니 화가 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김씨를 의심하다가 함께 ‘알바’로 몰려 욕을 먹는 김경아씨도 누리꾼의 ‘자중’을 부탁했다. “며칠 동안 욕을 먹는 나도 이렇게 괴로운데, 김씨는 오죽했을까 싶다. 진지하게 너클 아저씨를 걱정해 의혹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장난으로 언어폭력을 퍼붓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정부·경찰·언론은 한패니까…”

그렇다고 정부와 보수 언론의 지적대로 괴담을 ‘비이성적이고 철없는 사람들의 난동’으로만 치부하기는 무리가 있다. 〈시사IN〉을 찾은 제보자 대부분은 헤드헌터·학원강사 등 ‘멀쩡한’ 사회인이었다.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팀장은 “사망설이 가짜다, 진짜다 아직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다만 말 바꾸기와 위장하기의 달인인 전과 14범 대통령에 대한 불신, 경찰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괴담을 낳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말했다. 김경아씨는 자기가 왜 ‘설’을 믿었는지 설명했다. “너클 아저씨가 얻어맞는 동영상을 보고 저게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떨었다. 일반 시민은 정부와 경찰, 언론이 다 한패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으니, 우리라도 은폐된 진실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괴담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 같다.”    

너클 아저씨 의혹과 여성 사망설은 모두 6월1일 새벽 청와대 앞 진압 과정에서 나왔다. ‘정부의 KT 외압설’(〈시사IN〉 제38호 20쪽 참조)은 5월27일 새벽 ‘종각역 진압’ 때 불거졌다. 공통점이 있다. 모두 치열한 밤이었다. 수많은 시민이 바로 앞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시민기자단 사진으로 경찰의 폭력과 구타를 목격했다. 그 중 경찰이 인정하고 사과한 경우는 ‘군홧발로 밟힌 서울대 여학생’ 사건뿐이다.

김태성씨도 ‘너클은 아니지만 뭔가 딱딱한 플라스틱 물체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모습이 똑똑히 카메라에 잡혔다. 병원비로 25만원을 썼다. 아직 왼쪽 눈에 상처가 남았고 목과 허리가 욱신거린다. 김씨에게 경찰은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다. 2008년 6월 대한민국을 강타하는 ‘괴담’이 결코 ‘괴담’만은 아닌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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