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한국노총 조합원이 6월5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버시바우 대사의 쇠고기 재협상 관련 발언을 규탄하고 있다.
쇠고기 협상 다음에는 무엇이 올까. 자동차? 유감스럽게도 자동차에 그칠 것 같지 않다. 한·미 간 이면 접촉에 밝은 전문가들은 “쇠고기 문제에서 미국의 양보를 받는 대신, 한국이 미국산 재고 무기 처리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염려했다. 이들은 “시민의 저항이 반정부를 넘어 반미로 치달을 것을 걱정한 미국이 한국의 요구인 재협상에 응하고 그 대신, 한국이 미국산 자동차와 무기 수입에서 대폭 양보하는 이면 협상이 진행돼왔다”라고 지적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의 재협상 불가론이나 한·미 양국 수출입업자들의 자율규제 방안 등은 시민 반응을 떠보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으며 이미 물밑에서는 제2의 6·29 같은 반전 카드를 내밀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일부에서는 청와대와 내각 쇄신 인사를 발표하는 시점이 재협상 여부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미 관계 및 안보 분야에 정통한 이들 전문가의 증언을 토대로 한·미 간 협상 이면을 추적했다.

김성호 국정원장 방미 때 가닥 잡혔다는 얘기도

어떤 채널이 동원됐나:전문가들에 따르면, 한·미 간 비공개 접촉이 시작된 것은 6월3일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미국에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중단을 공식 요청’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이 걱정하고 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한 월령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들여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라고 공식 발언한 날로부터 약 2주일 전이었다고 한다. 당시 몇 개 채널이 동시에 움직였다. 공통점은 기존 통상 라인이 뒤로 빠졌다는 점이다. 쇠고기 문제는 이미 통상교역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결코 무시하거나 외면할 수 없는 명분과 논리를 들이대는 게 필요했다. 그게 바로 한국민의 ‘반미 감정 확대론’이었다. 즉, 쇠고기 문제로 인한 시민의 저항이 반정부를 넘어 반미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지렛대로 미국에 읍소 또는 압박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주로 정치권, 즉 한나라당 쪽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통령 측근 한 의원이 워싱턴 현장에서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연합뉴스6월3일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왼쪽)과 이상희 국방장관(오른쪽)이 국방장관 회담장에 들어서고 있다.
정치권과 병행해 안보 라인도 대미 설득에 가세했다. 6월3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 방한에 맞춰, 쇠고기 문제로 한·미 동맹 기반이 흔들릴 수 있으니 미국 무역대표부를 설득해달라는 요청이 전달됐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5월 중순쯤 비공개로 미국을 방문한 김성호 국정원장의 행보를 주목하기도 한다. “민감한 시기에 국정원장 방미가 이뤄졌던 만큼 이때 한·미 간에 가닥이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안보 관계에 정통한 전문가가 지적했다.

미국은 왜 양보했나:재협상은 안 된다며 펄쩍 뛰던 미국이 나름으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두 가지 요소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앞에서 언급한 반미 감정 확대 가능성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한국민의 반미 운동에 놀란 경험이 있는 미국으로서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6·10 항쟁, 미선이 효순이 6주기(6월13일), 6·15 선언 기념일 등 폭발성이 높은 날이 즐비한 6월에 쇠고기 정국이 반미로 확산된다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끔찍한 일이다.

이 문제는 두 번째 이유인 실리 측면과도 직결돼 있다. 한국은 미국에 엄청나게 큰 무기 시장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시작한 ‘국방개혁 2020’으로 신규 창출된 무기 구매 수요가 220억 달러에 달한다. 이 중 80%인 180억 달러 정도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갈 돈이다. 지난해만도 미제 무기를 37억 달러어치 구매했다. 전세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타이완 다음이라고 한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때 해결하지 못한 군수 관련 현안이 잔뜩 밀렸다. 친미 보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 초기, 정확하게는 4월 방미 이후 적어도 7월 부시 방한 이전까지 모두 매듭짓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쇠고기 문제가 터져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으니 미국으로서도 갑갑한 노릇이다. 여기서 자칫 반미로 넘어가면 무기 판매와 관련한 엄청난 이권이 날아갈 판이다. 미국 역시 더 큰 장사를 위해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놔야 할 상황이다.

ⓒ연합뉴스6월4일 최전방 GP에서 북한 지역을 바라보는 월터 샤프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가운데).
군수산업 이해 앞에 힘 못 쓰는 축산자본

축산자본과 군수산업:미국 내에서 쇠고기 재협상 문제가 거론될 때 가장 크게 반발할 두 세력은 의회와 축산자본이다. 축산자본의 반발이야 당사자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고, 의회가 반발하는 것은 바로 축산자본의 로비력 때문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의회에서 축산자본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이 바로 군수산업이다. 즉, 미국 행정부가 아무런 담보 조건 없이 쇠고기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하면 당연히 의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겠지만, 그 대가로 한국으로부터 대규모 무기 판매 이익을 거둘 수 있다고 하면 의회는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다가 한·미 FTA에서 자동차 분야 협상이 잘못됐다는 민주당 측 요구를 수용해, 자동차 관련 양보도 덤으로 얻어낼 경우 의회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축산자본의 반발이 문제인데, 이에 대한 보전 방안 등에 대해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국산 재고 무기 처리장으로 전락하는 한국: 무기 판매와 관련해 앞으로 나타날 양상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포지티브 협상’과 ‘네거티브 협상’이다. 포지티브 협상이란 공개리에 이뤄지는 협상을, 네거티브 협상은 공개할 경우 한국 시민단체의 반발이 우려돼 대외비로 진행하는 협상을 말한다.

포지티브한 분야는 최근 들어 몇 가지 방식으로 표면화하고 있다. 그 한 예가 지난 6월3일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거론된 주한미군 근무기간 연장 문제다. 최근 미국 측은 북한의 위협 감소를 근거로 현재의 1년 근무제를 3년 근무제로 바꾸는 문제를 우리 측에 제기해왔다. 즉 아프간이나 이라크 같은 전쟁 지역은 6개월, 한국처럼 준전시 지역으로 구분된 곳은 1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시켜왔는데, 북·미 관계 진전으로 전쟁 위협이 줄어들었으니 한국을 3년 근무지로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약 5조원에 이르는 미군 가족용 아파트 신축 자금을 우리더러 대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방위비 분담 증액을 위한 편법으로 근무기간 연장제를 들고 나온 것으로 본다.

재협상 불가 배수진도 성난 민심에는 역부족

최근 불거진 또 한 가지 사안이 바로 공격용 아파치 헬기 도입 문제다. 아파치는 대간첩 작전 등에 투입하는 공격용 헬기다. 미군은 보유한 헬기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중고 헬기를 우리에게 사라는 것인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이를 거부하고, 한국형 공격 헬기를 자체 개발하는 계획(KHA)을 추진했다. 그러나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걸려 6월까지 타당성 조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보고서가 나오기도 전인 지난 5월 말, 한국형 헬기 개발보다는 미제 중고 아파치 헬기 36대(약 9000억원)를 구입하는 쪽으로 갑자기 선회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더욱 큰 문제는 대외비로 물밑에서 결정될지 모를 현안이다. 그 중 하나가 한국의 MD(미사일방어) 참여 여부를 가늠케 할 X-밴드 레이더 설치 문제다. X-밴드 레이더는 고성능 조기경계 레이더로 탐지거리가 5000km에 이르는, MD 체계 중 하나다. 그런데 최근 일부 군사 전문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이명박 대통령 방미 전 미국 측이 한국에 X-밴드 레이더를 설치하는 문제를 타진했다고 한다. 당시 국방부는 난색을 표했으나, 앞으로도 계속 이같은 방침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최근 문제가 된 또 한 가지가 바로 미국의 전시 비축 탄약(WRSA) 구매 문제다. 이번 쇠고기 협상과 관련해 미국이 양보의 대가로 챙기려는 대표 분야로 지목된다. WRSA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에서 저장 공간을 초과하거나 도태된 탄약을 한국에 들여와 유사시 대비 차원에서 보관해온 것인데, 미국은 2000년부터 우리 정부에 이를 구매할 것을 종용해왔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80% 이상이 이미 사용 불가능한 쓰레기탄에 불과하기 때문에 구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국방부는 선별 구매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인 5월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서 제5차 회의가 열렸는데, 국방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성능이 검증된 물량을 선별해 공정가격으로 인수하기로” 했고 “미인수 물량의 처분을 위해 미국 측이 필요로 하는 일정량의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하였다”라고 한다. 국방부 자료에는 금액이 나와 있지는 않은데, WRSA의 총물량이 5조원대라는 얘기가 있고 보면, 액수가 결코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미국에서 연간 수입하는 쇠고기 물량은 약 10억 달러(약 1조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첫 단추를 잘못 꿰는 바람에 전체 쇠고기 수입액의 몇 배가 될지도 모를 방위비 지출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판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또다시 재협상 불가라는 배수진을 치고 나오긴 했지만, 이미 성난 민심을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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