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윤민석이 작곡한 민중가요 ‘헌법 제1조’는 요즘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가장 널리 불리는 노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거리에 쏟아져나온 시민 틈에 서서 반복적인 선율에 실린 이 단순명쾌한 정언명제를 듣노라면 마음 한쪽에서 의문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거리는 요즘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장 같다. 사람들이 저녁마다 광장으로 몰려나온다. 집회와 공연이 자발적으로, 산발적으로, 밤새 이어진다. 삼삼오오 모여서 난상 토론을 벌이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촛불 든 가족과 “청와대로 진격”을 외치는 시위대가 뒤섞인 거리에서 지도부는 없거나, 있더라도 통하지 않는다. 새로운 시위문화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아나키 민주주의’에 대한 걱정도 있다.

5월 초부터 시작된 촛불문화제가 한 달 넘게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10대 소녀들뿐이더니, 곧이어 20대와 386 세대가 동참했고, 지금은 온 세대가 나섰다. 촛불문화제는 이제 ‘국민 MT’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이번 주 〈시사IN〉은 역사의 기록자가 된 심정으로 촛불의 장강을 58쪽짜리 대형 기획 속에 담아냈다. 이문재 시인이 72시간 릴레이 시위 현장을 지켜보고 글을 썼고, 기자들이 거리로 총출동해서 시민 100명을 인터뷰했다. 다음 아고라 사이트, 진중권 중앙대 교수 등 거리의 스타와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 임헌조 뉴라이트전국연합 사무처장 등 이른바 ‘X맨’들의 뒷이야기를 취재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00여 일밖에 안 됐는데, 국민은 왜 분기탱천 거리로 뛰쳐나갔을까. 내줄 것 안 내줄 것 다 줘버린 쇠고기 협상이 직접 원인이지만, 민심을 거스른 새 정부 정책에 대한 쌓이고 쌓인 불만이 이 기회에 한꺼번에 터졌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번 호 특집의 두 번째 섹션에서는 촛불 정국의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살피는 한편, 쇠고기 협상의 내막을 분석하고, 새 정부 정책의 문제점 및 ‘CEO 리더십’의 허상을 파헤쳤다.

정치권은 그동안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무엇을 했을까. 청와대만 쳐다보며 하루가 달리 말을 바꾸는 한나라당이나, 국회를 떠나 거리로 나섰지만 환영받지 못하는 민주당의 모습에서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자고로 정치권이 무능하면 국민이 직접 나서는 법이다. 철학자 김상봉 교수의 말마따나 현재의 촛불 정국은 “흉기를 든 어린애 같은 국가 기구에 맞서 지혜로운 어른인 씨알들이 나선” 형국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차원에서 세 번째 섹션을 여는 정치학자 최장집 교수의 글은 촛불 정국 너머를 전망하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담고 있다. 현재의 한국 정치는 대통령제 본연의 폐해가 노출되는 과정이며, 정당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최 교수의 주장이 얼마나 파급력을 가질지 한번 지켜보기로 하자.


-온라인에서는 '아래 아' 표기가 불가능해 '씨알'로 표기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기자명 안철흥 기자 다른기사 보기 ah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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