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뉴스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에서도 이명박 정권을 질타하는 집회(위)가 이어진다.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의 분위기도 서울과 크게 다르지 않다. 6·4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후보 4명 가운데 3명이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다. 상징적인 사건이다. 선거 다음 날인 6월5일 밤에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700명이 모였다. 이날은 지난 5월3일 대구에서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뒤 처음으로 경북대·대구교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생 300명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정부가 ‘고시 강행’ 의지를 보인 5월31일에는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촛불 2000여 개가 켜졌다. 이 가운데 적어도 절반은 중·고생과 20대 초반 젊은이였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와 아이를 목말 태운 아빠, 60대 노인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니나 무라 미친 소’ ‘경박하다 이명박’ ‘반품 요청’ 같은 말이 적힌 손팻말을 저마다 흔들었다. 문화예술인 277명과 교수 300명도 ‘재협상 촉구’ 선언을 했고, 대구민변 변호사들은 ‘인권침해감시단’을 꾸려 집회·시위 현장에서 공권력의 인권 침해 여부를 감시한다.

 집회 분위기도 크게 달랐다. 예전에는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일장 연설’을 이어갔다면, 이번 촛불문화제에서는 “그냥 소 키우는 사람인데…” “전 아직 학생이라 잘 모르지만…” 같은 말로 발언을 시작한 이가 많았다. 군중의 반응도 달랐다. 웃음과 박수가 그치지 않았다. 시민의 자유발언 사이에 시민사회단체 인사의 정치 발언이 나오자 “저 아저씨들 마이크 좀 안 잡으면 안 되나, 재미없다”라는 불평이 쏟아졌다. 청소년은 “집회가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는 줄 몰랐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정리 집회 거부한 평범한 시민들

시위 주도와 정리 방식도 달라졌다. 5월31일 거리 행진이 끝날 즈음인 밤 11시, 난데없이 도심 길바닥에서 즉석 연좌토론이 벌어졌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대책위원회 측이 “정리 집회를 하자”라고 했지만, 시위대 수십여 명은 “당신들이 무슨 권한으로 집회를 정리하느냐”라며 시위를 이어가자고 반박했다. 결국 ‘강행’을 주장하던 시민 수십 명은 다음 날 새벽까지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전개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하던 예전 시위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6·10항쟁을 경험한 옛 ‘민주화 세대’의 참여가 부쩍 늘었다. 서울 지역과 마찬가지로, 조직되지 않은 ‘그냥 시민’의 참여가 특히 눈에 띈다. 이들 평범한 시민이 얼마나 나서느냐에 따라 집회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런 ‘광우병 항쟁’이 ‘보수적’인 대구·경북 정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다. 아직까지 보수층의 집회 참가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이명박 찍었드만 하는 꼬라지가 영 그카네”라는 중·장년층의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과거 대구·경북 지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대 지지 기반인 대구·경북에도 과연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을까. 섣불리 예상하기는 이르다. ‘그냥 시민’의 참여를 어떻게 의미 있는 변화의 동력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숙제가 지역 시민사회의 몫으로 남았다.

기자명 유지웅 (평화뉴스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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