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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다가가니 경공업 살아나나

최룡해 노동당 비서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북·러 간에 이뤄진 합의 배경에는 지난해 3월 북한이 발표한 핵·경제 병진전략이 숨어 있다. 시베리아 인력 송출을 통해 경공업 발전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남문희 대기자 bulgot@sisain.co.kr 2014년 12월 13일 토요일 제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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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 북한 노동당 비서의 러시아 방문(11월17~24일)을 계기로 북·러 간에 이뤄진 합의의 배경에는 지난해 3월 북한이 발표한 핵·경제 병진전략이라는 핵심 키워드가 숨어 있다. 북·러 관계에 정통한 국내 한 소식통에 따르면 최룡해 방러 당시 북한과 러시아는 내년 1월이나 2월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전제로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북한 철도의 연결 문제, 극동 시베리아에 대한 인력 송출 및 북·러 군사협력, 6자회담 개최 문제 등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먼저 북한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결 문제를 살펴보자. 북한 철도 현대화에 대해서는 10월20일 방북한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이 ‘포베다 프로젝트’를 통해 청사진을 발표했다. 최룡해 방러 때는 앞으로 있을 북·러 정상회담에서 대외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목표로 북한 철도를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연결하는 문제가 집중 논의됐다고 한다. 현재 북·러 간에는 지난해 9월 나진-하산 구간만 철도가 연결된 상태다. 나진에서 평양까지 철도가 있으나 노후화되어 실용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이 노선의 현대화를 추진하되 시베리아 철도와의 연결을 시야에 두고 광궤(廣軌)를 병행하는 문제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러시아 측에서는 하산-블라디보스토크 연결 구간을 정비해야 한다. 나진-하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를 시발점으로 해서 중국 철도와 몽골 철도가 집결하는 이르쿠츠크에서 합류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남북 철도를 먼저 연결하고 거기에 러시아 철도를 잇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북·러 철도를 먼저 연결하고 나중에 한국이 원하면 추가하는 방식이다. 한국은 주체에서 객체로 처지가 바뀌었다. 철도 연결 프로젝트는 북·러 정상 선언이 이뤄지면 계획상으로는 완결된다. 그다음에 추진되는 게 바로 가스관 배관 및 연결 프로젝트. 이것 역시 남쪽과 상관없이 북한 측에 먼저 가스관을 연결해 가스 공급을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 측의 광물을 대가로 한 것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평양 조선중앙통신</font></div>11월18일 푸틴 대통령을 면담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오른쪽)는 군부의 저항을 눅일 적임자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11월18일 푸틴 대통령을 면담한 최룡해 노동당 비서(오른쪽)는 군부의 저항을 눅일 적임자다.

두 번째가 인력 송출 문제다. 한때 극동 시베리아에는 북한 인력이 약 3만명까지 진출했으나 그동안 북·러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현재는 노보시비르스크, 연해주, 아무르 주 등에 벌목공 및 농업 노동자로 5000명 정도가 나가 있다. 이번에 그 수를 지금의 10배인 5만명까지 늘리고 파견 직종도 기존 단순 노무직 위주에서 전문 기술직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변수가 붙는다. 즉 러시아가 북한의 무기 현대화를 지원하고 전투기·잠수함 등 첨단 무기를 제공할 경우 북한이 재래식 병력을 감축해 이 병력을 극동 시베리아 개발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1차적으로 합의된 것은 5만명이라고 한다. 앞의 5만명과 합치면 10만명이 1차로 시베리아 개발에 투입될 수 있다. 앞으로 30만명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56쪽 기사 참조).

러시아는 북한과의 군사 협력이 대외로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따라서 북한이 요구하고 러시아가 수용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나 실은 러시아 측 요구가 강하다. 나진항 3호 부두에 대형 물류 터미널을 짓고 그것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경비 병력을 파견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나진항을 러시아 군함의 상주 기지로 고착화하겠다는 의도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북·러 합동 군사훈련 계획도 잡혀 있다.

마지막으로 핵 문제와 6자회담 문제다. 러시아도 북한의 비핵화를 지지한다. 그러나 중국과 달리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기보다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장기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북한의 핵 확산을 방지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동안 미국과 중국은 이것조차 방법을 찾는 데 실패했는데, 이제 러시아가 책임을 지고 확산을 막을 테니 6자회담을 개최하자는 것이다.

“북·중 시대에서 북·러 시대로 넘어가게 됐다”

북·러 간의 이 같은 합의 내용을 전한 소식통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동북아 질서가 북·중 시대에서 북·러 시대로 넘어가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북·러 관계가 공고화되면 러시아로서는 앞으로 다양한 카드를 활용해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진출의 중추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하산·나진·선봉을 동북아 평화 및 경제지대로 묶은 후 이를 발판으로 시베리아 개발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동북아 주도권이 북·중 시대에서 북·러 시대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는 또 다른 맥락에서 짚어볼 수 있다. 지난해 3월31일 북한이 김정은 시대 통치 비전으로 발표한 핵·경제 병진전략과 관련해서다. 특히 대규모 인력 송출 대상이 이번 합의를 통해 러시아의 극동 시베리아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

북한의 대규모 인력 송출 계획이 구체화된 것은 2012년 12월 말부터로 알려졌다. 당시 2015년까지의 김정은 집권 1기 플랜을 둘러싸고 당 중앙위 내에서 토론이 전개됐는데, 이때 산업화를 위한 종잣돈을 인력 송출을 통해 확보하는 방안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했고, 2015년까지 그 규모를 30만명으로 하자는 제안이 나왔다고 한다. 이 경우 약 20억 달러를 벌어들여 산업진흥자금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안이 지난해 1월 내부 회의를 통해 채택되면서, 3월31일 북한중앙통신을 통해 ‘핵·경제 병진전략’이 발표되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평양 조선중앙통신</font></div>10월20일 방북한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왼쪽 두 번째)은 북한과 ‘철도 문제’를 논의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
10월20일 방북한 갈루슈카 극동개발부 장관(왼쪽 두 번째)은 북한과 ‘철도 문제’를 논의했다.

사실 핵·경제 병진전략을 뜯어서 살펴보면 30만명의 인력 송출을 통한 산업자금 마련 계획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설명한 내용에 불과하다. 즉 이 전략의 목적은 북측 발표문에 나온 대로 ‘인민 생활을 최단기간에 안정·향상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한 ‘주 타격 방향’은 바로 농업과 경공업이다.

농업은 그렇다 치고 경공업을 발전시키려면 산업자금, 즉 종잣돈이 있어야 한다. 지난 20년간 자력갱생을 외쳤건만 매번 구호에 그쳤던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핵을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핵무기를 국방에 투입하면 ‘국방비를 추가로 늘리지 않아도’ 된다. 그다음 재래식 전력 위주의 기존 국방체계를 구조조정해 외화를 획득할 수 있다. 재래식 무기를 생산해 국내 배치하는 대신 해외로 수출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이다. 병진전략에서 언급한 ‘대외무역의 다각화·다양화’의 의미다. 마지막으로 삭감된 인원을 해외로 송출해 외화를 획득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 세력인 군부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투입된 인물이 바로 최룡해다. 2012년 4월 그가 총정치국장에 취임한 이후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룡해가 지난해 중국에 이어 이번에 러시아에도 특사로 가게 된 것은 핵·경제 병진전략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최적임자이기 때문이다.

북·중 관계에서 북·러 관계로의 주도권 이동과 직결된 게 바로 인력 송출 문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30만명 송출 대상지는 중국이었으나 북·중 관계 악화로 러시아 극동 시베리아로 대상 지역이 바뀌었다. 이것을 계기로 러시아는 극동 시베리아에 대한 중국인의 범람을 막고, 북한의 젊은 인력이라는 안심할 만한 개발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반면 북한은 외화 획득 및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을 얻을 수 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물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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