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72시간 릴레이 시위를 취재하는 이문재 시인.

거리편집국이 차려졌다. 청계천 물길이 시작하는 소라광장. 오른쪽 어깨 뒤로 동아일보 사옥, 11시 방향으로 조선일보 뉴스 전광판이 보이고, 왼쪽은 프레스센터다. 〈시사IN〉 거리편집국은 문정우 편집국장이 말한 대로 ‘알박기’였다. 한 평 남짓한 천막이 한국 언론의 난개발을 막는 상징적 장소였다. 개발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상스럽고 고약한 신조어 ‘알박기’가 촛불과 더불어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도,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청계천 물머리 위에서.

6월7일 금요일 저녁, 거리편집국 한 귀퉁이에서 나는 민주주의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강한 시장, 약한 민주주의’에서 ‘강한 민주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리처드 스위프트의 〈민주주의, 약자들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민주주의와 약자 그리고 희망은 지난 세기 후반부 이후 신자유주의와 강자 그리고 절망으로 대체되었다. 5월2일 촛불이 처음 켜진 이래 최대 인파가 모일 것으로 기대되던 이날 저녁, 청계광장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뒤적인다는 것은 생뚱맞았다. 하지만 내 어두운 눈으로는 2008년 6월의 대한민국이 잘 보이지 않았다. 책 속에서 촛불시위에 접근하기 위한 키워드를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툭 쳤다. “복직했어?” 고개를 들어보니, 이시영 시인이었다. “아니요. 촛불시위 참관기를 쓰는 중입니다”라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시영 시인은 7시부터 작가들이 모이기로 했다며 일민미술관 쪽으로 향했다. 복직? 그러고 보니 〈시사저널〉을 떠난 지 꼭 3년이 지났다. 2005년 6월1일부터 나는 기자가 아니었다.

대통령에 의해 미래 강탈당한 10대의 분노

2007년 2월 〈시사저널〉 기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삼성 관련 기사 때문에 불거진 편집권 문제는 파업으로 이어졌다. 편집국이 봉쇄되자, 기자들은 거리에 천막을 쳤다. 거리에서 쓴 기사를 노조 홈페이지에 올렸다. ‘강한 시장’의 논리 앞에서 편집권을 수호하려 했던 기자들은 독자와 함께 독립언론 〈시사IN〉을 창간했다. 그리고 〈시사IN〉은 6월2일 거리에 다시 편집국을 차렸다. 나는 거리편집국에서 72시간 릴레이 시위를 지켜보았다. 3일간의 복직이었다.

지난해 12월, 나는 절망스러웠다. 지난 대통령선거는 역사상 가장 많은 후보가 나왔지만, 그 후보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모두 경제였다. 경제 살리기가 유일한 공약이었다. 4월 총선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국회의원 후보는 ‘뉴타운’이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돈’에 지고 말았다. 도덕성? 도덕성은 밥을 먹여주지 않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그가 누구든 경제만 살리면 오케이였다.

4월18일 미국과 쇠고기 협상이 전격 타결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에도 나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쇠고기 협상이 타결된 다음 날, 이명박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대리운전’을 했다. 로드맵은 정해져 있었다. 한·미 FTA, 공기업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교육 자율화…. 국가와 정치는 강한 시장의 논리 아래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투항할 것이었다. 그런데 5월 들어 촛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10대 여중고생과 젊은 엄마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내가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가본 것은 5월 둘째 주 토요일(10일)이었다. 거기서 10대 소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도 국민, 국민입니다”라는 한마디가 박혔다. 청와대와 여당, 보수 언론이 촛불의 배후를 지목하자 어린 촛불들은 즉각 응대했다. “배후요? 배후는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조·중·동이 배후입니다”. 10대는 ‘대학에 가고 싶다, 결혼하고 싶다, 꿈을 이루고 싶다’는 피켓을 들었다. 자신들의 미래가 대통령에 의해, 정치인에 의해, 기성세대에 의해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10대는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조차 의식화되어 있었다. 어린이들이 독재라는 용어를 서슴없이 구사했다.

광우병에 대한 우려에서 촉발된 정권 퇴진 운동의 밑바닥에는 미래에 대한 염려가 자리잡고 있다. 미래라는 시간 의식이 2008년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주요 키워드로 보였다.  근대, 즉 모더니티를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근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이다. 근대는 과거와의 단절이자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였다. 이번 대선은 과거(노무현 정부)에 대한 단절이자 미래(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였다. 하지만 그 미래는 채 100일이 되지 않아 어그러졌다. 국민의 80%가 이명박 정부의 현재를 부정했다.
 

ⓒ시사IN 윤무영청계천광장에 차려진 〈시사IN〉 거리편집국. 〈시사IN〉 기자들은 〈시사IN〉 공식 블로그를 통해 촛불문화제 현장을 거의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기대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라지기는커녕 미래는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작동한다. 광우병이 없는 미래, 국민이 무시당하지 않는 미래, 그리하여 자신의 꿈, 혹은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미래. 그러나 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촘스키는 말했다. “당신이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당신은 정말 변화가 없는 현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누가, 무엇이 현재와 미래를 식민화했는지 직시하라는 충고일 것이다.

72시간 릴레이 시위 마지막 날인 6월7일 저녁, 행렬을 따라 걸었다. 세종로 네거리에서 숭례문, 숭례문에서 신세계 앞을 지나 종로2가를 거쳐 다시 세종로로 돌아왔다.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시민은 대중이 아니었다. 군중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다중이었다.

학자들은 다중을 ‘영리한 대중’이라고 규정한다. 다중은 스스로 자기 가치를 실현하고 욕망하는 주체다. 온라인, 즉 디지털 기술과 친화력이 강한 다중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다중의 정체성은 여러 겹이다. 국민이면서 시민이고, 또 개인이다. 이번 촛불시위에는 지휘부가 없다. 그 누구의 명령도 먹혀들지 않는다. 다중은 개별적으로 행동하면서 하나의 이슈에 동참한다.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다중은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주체다. 
 

ⓒ시사IN 윤무영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회’ 회원이 6월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위령제를 준비하고 있다.

여러 차례 지적이 있었거니와, 2008년 5~6월, 올드 미디어는 판정패했다. 웹2.0을 기반으로 한 1인 미디어(블로거)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주류 언론을 거꾸러뜨린 것이다. ‘아고라’와 블로거가 뉴 미디어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신문사 앞을 지날 때, 촛불들은 즉석에서 구호를 만들었다. 6월3일 밤, 행렬은 문화일보사 앞을 지나면서 “문화일보 폐간하라”며 촛불을 치켜들었다가 바로 옆 경향신문사를 지날 때는 “경향신문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촛불들은 미디어 지형을 뒤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시위 문화를 비틀었다(〈시사IN〉 제38호 참조). 촛불들은 대단히 창의적이었다. 행진을 하면서 구호를 만들어냈다. “이명박은”이라고 선창하면 “잠 좀 자라”가 뒤따른다. “대운하는~” “혼자 파라”, “미친 소는~” “너나 먹어” 이런 식이다. 촛불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를 전파하는 미디어적 주체였다.

행렬의 후미로 처졌다가 깨달았다. 촛불문화제가 강력한 시위이면서 동시에 축제일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도로라는 공간이었다. 촛불 행렬이 서울의 한복판, 10차선 대로를 광장으로 바꾼 것이다. 거대도시에서 도로는 법과 질서의 힘이 압축되어 있는 대표적인 공적 영역이다. 중앙선, 차로, 표지판, 신호등, 규정 속도 등이 운전자를 규제한다. 그리고 도심의 대로는 보행자에게는 금지된 장소다. 촛불을 들고 중앙선을 걸어보면 안다. 시속 3km로 완보하다 보면, 신호등, 표지판, 주위의 건물이 전혀 달라 보인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태평로 한가운데를 걷다 보면 일상적 삶에서 일탈했다는, 그리하여 무엇인가 커다란 것, 근본적인 것을 흔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촛불시위가 실내에서 혹은 서울광장이나 마로니에 공원 안에서 치러졌다면 촛불의 위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촛불은 전근대, 즉 아날로그의 불빛이다. 비실용적인 조명기구인 촛불은 그러나 실내에서 거리로 나오면서, 디지털과 손잡으면서 생활 정치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다중은 정치적 감수성을 자기화했다. 〈민주주의…〉에서 시몬 스트런스키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기보다 버스와 지하철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스트런스키의 지적에서 ‘버스와 지하철’을 ‘거리’로 바꾼다면 민주주의, 지금과는 다른 민주주의가 좀더 잘 보일 것이다.

약자에게 희망이 되는 민주주의 앞에 서다

촛불시위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는 하나의 창(窓)은 없다. 김종철 교수가 언급했듯이, 이번 촛불시위가 갖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분석하고 공유하는 작업은 지식인에게 주어진 숙제다.

이번 촛불시위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었다. 그러나 촛불이 거리로 나오면서, 쇠고기 재협상과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다중의 분노는 충분히 예고된 것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었다.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가 지적했듯이 한국의 대의 민주주의, 특히 선거 민주주의는 허약하기 그지없다. 유권자는 하루살이라는 것이다. 투표가 끝나면 나머지 4~5년간 한국 정치의 주인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고, 일반 시민은 무력한 개인으로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6월8일 저녁 72시간 릴레이 시위가 끝났다. 그러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자동차들이 질주하던 도로는 다시 광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 “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종업원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나에게는 저 소리가, CEO 대통령을 선택했던 유권자들이 강한 시장과 약한 민주주의의 연대가 가져올 어두운 미래를 직시했다는 발언으로 들렸다. 경제 논리는 더 이상 약자의 희망이 아니었다. 거리편집국을 떠나며 혼자 중얼거렸다. 우리는 다시 민주주의의 미래 앞에 서 있다. 기왕의 민주주의와는 다른, 약자에게 희망이 되는 민주주의 앞에.

기자명 이문재 (시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