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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아이고 의미 없다

임기 5개월차 신임 교육감이 최대의 도전 과제를 일찍 받아들었다. 서울시 교육청은 10월31일 자사고 6곳을 지정 취소했다.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교육부가 시정명령을 내렸지만, 교육청은 수용 거부 의사를 밝히며 버텼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제3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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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이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6곳을 지정 취소했다. 자사고는 5년마다 교육청의 종합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올해는 서울지역 25개 자사고 가운데 14곳이 평가 대상이었다. 이 중 8곳이 기준 미달 판정을 받았다. 서울교육청은 이 중 2곳이 낸 개선 계획을 받아들여 취소 유예 판정을 냈고, 나머지 6곳을 지정 취소했다. 이 행정처분이 최종 확정되면 지정 취소된 자사고 6곳은 일반고로 전환해야 한다.

자사고를 일반고나 혁신학교로 전환하겠다는 것은 선거 당시 조희연 교육감의 대표 공약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상보다 빠르고,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서울교육청은 자사고가 주변의 공교육이 피폐해지는 데 책임이 있는지를 알아보겠다며 ‘공교육 영향평가’를 도입했다가 철회했다. 객관적인 측정 방법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서다. 5년에 한 번인 평가 기회가 하필 임기 시작 직후에 돌아오는 바람에 정교한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는 반성은 교육청 내부에서도 들을 수 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일반고 전성시대’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위)의 대표 공약이었다. 자사고 지정 취소는 예상보다 빨랐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연합뉴스
‘일반고 전성시대’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위)의 대표 공약이었다. 자사고 지정 취소는 예상보다 빨랐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이 ‘광폭 행보’를 이해하려면 2010년대 서울 교육의 특수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두 가지다.

첫째, 서울은 어느 광역 단위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 ‘자사고 세상’이다. 전국 자사고 49곳 중 절반이 넘는 25곳이 서울에 몰려 있다. 경기도는 서울보다 인구가 더 많지만 자사고는 2곳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자사고가 교육 현장에 던지는 충격파는 서울과 나머지 지역이 크게 차이가 난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입생을 받은 자사고는 성적 상위권 학생들을 휩쓸어갔다. <표 1>은 중학교 내신 석차가 상위 10%에 드는 성적 우수 학생들이 자사고와 일반고에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보여준다. 자사고는 도입 이후 매년 정원의 20% 이상을 상위 10% 성적 우수 학생으로 채웠다. 반대로 일반고 평균은 조금씩 미끄러졌다. 올해 일반고 신입생 중 상위 10% 학생 비중은 8.7%였다.

사실상 평준화 해체, 차원이 다른 고교 서열화


둘째, 서울은 2010년 공정택 교육감 시절부터 고교선택제를 도입했다. 고등학교를 고르거나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표 2>는 고교선택제 도입 전후로 이른바 기피 고교에서 중학교 학력 하위 10% 학생의 입학 비율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보여준다. 고교선택제 이전인 2009년에는, 하위권이 몰려 있는 학교라 해도 그 비중은 15% 미만이었다. 하지만 고교선택제 도입 이후부터는 몇몇 학교의 하위권 밀집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더니, 2012년에는 최고 24%에 이르렀다. 2013년에는 더 심해져서 이 비율이 31.3%를 기록한 학교도 있다.

그 결과, 2010년 이후의 서울은 사실상 평준화가 해체된 도시가 되었다. 대신 들어선 것은 다른 시대나 다른 지역과도 차원이 다른 고교 서열화다. 극소수 특목고와 절대다수 일반고로 나뉘는 단순한 서열화가 아니라, 고교 입학의 순간에 학생의 ‘급’이 사실상 정해진다고 믿게 만드는 촘촘한 서열화다. 2010년도 이후 서울지역 고교 입시를 치러보거나 준비하는 학생·학부모에게는 익숙한 얘기다.

   
 

최상위권에는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목고가 있다. 서울지역 자사고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 단위 모집이 가능한 하나고도 최상위권을 형성한다.

그 아래층에는 자사고가 있다. 그런데 자사고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IN>이 국회 유기홍 의원실(새정치민주연합)을 통해 입수한 서울교육청 자료를 보면, 자사고가 우수 학생들을 싹쓸이해가면서도 대학 진학 성과는 들쭉날쭉한 것으로 나타났다(자사고의 대학 입시 결과는 과연 어떨까? 기사 참조). 서울교육청의 핵심 관계자는 “최초에 하나고와 같은 특이한 사례가 자사고의 거품을 키웠다면, 지금은 과도한 기대치가 잦아드는 단계로 볼 수 있다. 평준화 지지 진영은 ‘싹쓸이를 했는데 심지어 입시 결과마저 나을 게 없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일반고도 양극화가 진행 중이다. 평균적인 구성원 대신 특정 성향·부류·학습 태도를 공유하는 학생들이 대거 배정된 학교에서는 ‘부정적 또래집단 효과’가 나타나기 쉽다. 자기 존중감과 학습 효능감이 매우 낮은 또래집단이 일단 형성되면, 주위의 동료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10대는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시기다.

서울교육감 인수위에 참여했던 이형빈 전문위원은 “진학 의욕이 높은 학생이 특목고·자사고 등으로 먼저 빠져나간 후 일반고는 이른바 ‘2류 학교’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학교 소속감이나 정체성을 얻기가 어렵고, 학교 만족도도 낮은 편이다”라고 지적했다. 특목고·자사고 등 ‘사다리 위쪽’에 있는 학교가 특정 학생들을 싹쓸이하면서, ‘사다리 아래쪽’ 학교들에서는 거대한 슬럼화가 진행된다는 얘기다.

조희연 교육감은 올해 선거 과정에서, 2010년 이후 서울 특유의 ‘촘촘한 서열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강하게 피력했다. ‘일반고 전성시대’나 ‘상향 평준화’와 같은 구호도 그래서 나왔다. 특정 학교의 상위권 학생 입도선매와 비선호 일반고의 슬럼화 현상은 동전의 양면이므로, 전자를 손보지 않으면 후자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접근법이었다. 10·31 자사고 지정 취소 선언은 그 귀결이었다.

   
 

당위와 돌파 가능성은 별개다. 당장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서울교육청은 시정명령 수용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대로 의견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법정에서 결론을 내야 할 수도 있다.

역설적인 대목도 있다. 지금은 교육부가 서울교육청에 날을 세우고 있지만, 불과 1년 전에 교육부가 내놓은 문제 진단과 해결 방안을 보면 현재 조희연 교육감의 노선과 판박이다. 지난해 10월에 나온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보자. 교육부는 “일반고 위기는 자율고가 많은 일부 지역에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일부 지역’이란 단연 서울이다.

이어 교육부는 해결책 중 하나로 ‘자사고 성과평가 및 일반고 상시 전환체제 구축’을 내놓았다. 자사고를 엄격히 제약해서 일반고 슬럼화를 되돌리자는 얘기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교육감이 판단하는 학교는 지정 취소. △2014년 상반기부터 시작되는 운영성과 평가를 엄정하게 실시하고, 지정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운영되는 학교는 일반고 전환.’

올해 조희연 교육감이 들고 나온 논리를 교육부는 1년 전에 정확히 미리 제시했다. 하지만 1년 전은 어찌 됐든, 현재 교육부는 자사고 수호 세력의 선봉이다.

지정 취소를 당한 자사고들도 부글부글 끓는다. 지정 취소 대상인 배재고 김용복 교장은 “학교 분위기가 술렁대면서 당장 수능을 앞둔 고3 학생들이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11월에 있을 자사고 신입생 지원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서울교육청이 대단히 비교육적인 시점을 일부러 골라서 그 같은 발표를 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가장 강고한 저항 블록은 학부모들이다. 하나고를 제외한 24개 자사고 학부모 모임인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는 11월3일에는 항의 집회를 열고 5일에는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 의장을 찾아가 대책을 논의하는 등 적극 행보를 펼쳤다.

2010년대 서울 특유의 촘촘한 서열화는 현재 서 있는 서열에 대한 강력한 애착을 생산하기 쉬운 구조다. 조희연 교육감 주위의 고민도 이 대목이다. 자사고 지정 철회는 이른바 ‘줬다 빼앗는’ 느낌을 들게 해 강고한 반대 블록이 똘똘 뭉치도록 만드는 길이다.

‘자사고 엑소더스’에 희망 거는 서울시 교육청

여론에 민감한 국회의 반응은 특히 조심스럽다. 김상희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대표 발의한 자사고 폐지 법안이 상반기부터 상임위에 계류 중이지만,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법안 통과를 위해 적극 나서는 의원이 많지 않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이명익</font></div>10월31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학부모와 교장단이 지정 취소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0월31일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자사고 학부모와 교장단이 지정 취소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 한 전략통은 “야당이라고 해도, 자신의 지역구에 자사고가 있는 의원들은 특히 이 문제에 나서고 싶지 않다는 기류가 많다. 자사고가 지역의 학력 신장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현실과는 별개로, 지역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의 ‘활로’로 느끼는 정서는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정서를 거슬러가며 자사고에 칼을 대는 입법에 적극 나설 의원은 많지 않다.

조희연 교육감 주위에서는 믿는 구석이 없지는 않다. 서울의 자사고가 완연한 공급 과잉이라는 점이다. 몇몇 하위권 자사고는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전학 행렬이 이어지는 등 거품이 낀 자사고 기대치가 하향 추세로 반전되는 징후가 있다고 본다. 학부모나 학교들이 똘똘 뭉쳐서 자사고 사수를 외치기보다, 한 발 빨리 출구전략을 모색하리라는 기대를 교육감 주위에서는 내비친다.

우선은 11월로 예정된 자사고 신입생 모집의 경쟁률이 관심사다. 중학생들의 자사고 지원 흐름이 한풀 꺾이는 것으로 나타난다면 서울교육청도 힘을 받게 된다. 다음으로는, 내년도 11개교 자사고 심사를 앞두고 자사고 포기와 일반고 전환을 선언하는 학교가 나올 수 있다는 데 기대를 건다. ‘자사고 엑소더스’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예측이다. 임기 5개월차의 신임 교육감이지만, 아마도 최대의 도전 과제를 제법 일찍 받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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