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 전문기자종전 선언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을 보면 마치 코미디를 연상케 한다. 특히 3자 내지 4자 정상회담에 이르면 당사자들은 정작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우리끼리 북 치고 장고 치고 하는 꼴이다.
마치 한 편의 엉성한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정전’에서 점 하나를 바꾸어 ‘종전’이 되면 과연 뭐가 달라지는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이 없다. 다만 연내 또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남북한과 미국, 더 나아가 중국의 정상까지 한날 한시에 모일 수 있는가 없는가, 하나마나한  소리로 날을 지새운다. 보통 사람도 서너 명이 한꺼번에 모이려면 쉽지 않은데, 국가 원수들을 그것도 한날 한시에 모이게 하겠단다. 스케일은 맘에 들지만, 종전 선언이 무슨 도깨비방망이인가?

처음 발상부터 너무 편의적이었다. 평화협정을 추진하기에는 노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너무 짧고, 그래서 이거라도 하는 심정으로 만들어진 게  종전 선언이 아닐까. 정치인이 역사에 이름 남기길 원하는 것이야 이해한다 해도, 처음 설정부터 껄끄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난해 11월16일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했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 내용부터도 그렇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이라는 전제 아래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했다는데, 그전과 달라진 게 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그 말의 당사자가 부시 대통령이라는 것, 거기에다 ‘노 대통령과 나와 김정일이 사인할 수 있다’고 살까지 붙였다는 것. 그러나 전제를 달고 하는 얘긴데,  무슨 말을 못하랴.

ⓒReuters=Newsis올해 9월 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왼쪽이 노무현 대통령, 오른쪽은 부시 대통령.
미국이 부시의 발언으로 얻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 정부 쪽에서는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미국이 핵 포기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북핵 문제가 불능화 단계에 접어들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기준을 정하는 게 바로 미국이라는 거, 그것도 마음대로라는 거, 이런 것 정도는 염두에 두었어야 하지 않을까?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던 미국이 최근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를 통해 비로소 속내를 밝혔다. “올해 안에 종전 선언은 가능하지 않다. 북한의 비핵화가 3단계에 접어드는 2008년이나 되어야 비로소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 한마디로 대못질을 한 것이다.

2008년이나 돼서야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면,  처음부터 노 대통령과는 인연이 없는 얘기 아닌가? 그런데도 지난해 11월의 하노이, 올해 9월의 시드니에서, 거듭 그 얘기를 꺼낸 까닭이 뭘까. 혹시 이런 얘기가 앞부분에 생략된 건 아니었을까. ‘이건 당신하고 할 얘기는 아니지만, 당신의 후임자가 들어설 2008년께 북한의 핵 포기가 이뤄지면….’ 버시바우 대사의 얘기대로라면 이 말을 부시 대통령의 원래 발언 앞에 넣었어야 한다.

처음부터 미국의 ‘트릭’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취임 초부터 노 대통령은 유독 평화에 집착했다. 평화협정이라는 선물을 꺼냈을 때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미국이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얻고자 한 게 무엇일까. 

당시 시점으로 다시 가보자. 지난해 10월 남과 북이 베이징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미사일 핵실험 등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진 한반도 상황을 극복하려고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 위해서다. 남북의 논의가 본격화하려 할 즈음, 노 대통령에게 선물이 건네졌다. 그리고 정확하게 12일 후  북한에도 라이스 방북이라는 선물이 갔다. 11월28~29일 베이징에서 열린 힐-김계관 회담에서다. 그리고 그 뒤 보다시피, 남북 접촉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워싱턴이 남북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우여곡절 끝에 남북이 지난 10월 초 다시 만났다. 하지만 아뿔싸, 이제 시간이 너무 없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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