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백승기김상봉 교수(위)는 “촛불은 미국의 폭력으로부터 자기를 구하고 인류를 해방시키는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봉화’이다”라고 말한다.

더러는 새 정부 들어선 지 100일도 되기 전부터 고작 쇠고기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이토록 소란스러운 것을 보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 그리 놀라울 것이 있겠는가? 왜냐하면 단순히 통계적으로만 본다 하더라도 지난 200년 동안 이 나라 역사에서는 20~30년마다 한 번씩 어김없이 거대한 민중 봉기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1811년 홍경래란이나 1862년 진주민란은 서곡에 지나지 않았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1919년 3·1운동, 1929년 광주학생운동 그리고 1948년 제주4·3, 1960년의 4·19, 1979년의 부마항쟁, 1980년 광주항쟁, 1987년의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 역사는 국가기구에 대한 들의 봉기와 항쟁으로 점철된 역사이다. 더러는 격렬한 무장항쟁으로, 더러는 비폭력 저항으로, 이도 저도 불가능할 경우에는 전태일처럼 자기 몸을 태워 불의한 현실에 항거했던 역사가 이 나라의 근현대사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6월항쟁 이후 21년이 지난 지금 그 모든 항쟁의 물결이 거대한 촛불의 해일이 되어 다시 밀려오는 것을 보고 있다.

정조 이래 과 국가는 전쟁 상태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것, 이것을 가리켜 정치라 한다. 수많은 만남이 서로 얽혀 일정한 형식과 외연 속에서 통일성을 얻을 때, 그것이 나라이다. 참된 만남은 너와 내가 누구도 일방적으로 객체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고 서로 더불어 주체가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만남의 진리는 ‘서로주체성’에 있다. 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너와 나들이 모여 참된 만남 속에서 서로주체성의 현실태를 이룰 때, 이것이 바로 참된 나라인 것이다.

역사상 어떤 나라도 온전한 의미에서 서로주체성의 현실태였던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가 완전히 ‘홀로주체’의 사적 점유물이 되어버리면 그런 나라는 온전히 존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때 한 국가는 자발적인 만남의 욕구에 의해 생성되는 공동체가 아니라 오로지 타율적 강제와 폭력에 의해서만 유지되는 집합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도 폭력만으로 나라를 세울 수는 없다. 그런 경우 나라는 계급투쟁이나 내전 상태에 빠져들어 결국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너무도 불행한 일이지만 1800년 정조가 사망한 이래 이 나라는 본질적으로 과 국가기구 사이의 잠재적 전쟁 상태에 놓여 있었다. 그 까닭은 이 땅의 국가기구라는 것이 한 번도 우리 모두의 나라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국가는 때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우리를 지배하는 ‘그들’의 통치기구였을 뿐이다. 권력을 사적으로 전유한 ‘그들’에게 들은 국가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이 아니라 단지 착취와 수탈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들이 국가의 야만적 억압과 폭력에 저항할 때, 국가의 지배자들은 저항하는 민중을 서슴없이 적으로 간주하고 학살하는 짓을 반복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다가 이 나라의 지배계급은 자기 국민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던가? 그 까닭은 예로부터 이 나라 지배계급이 숭상하는 유일한 정치적 이상이 사대주의이기 때문이다. 사대주의란 말 그대로 보면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인데, 약소국이 강대국 앞에서 몸을 낮추는 것은 일종의 생존의 지혜로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지배계급에게 사대주의란 단지 그런 것이 아니라, 외세에 굴종하여 그 하수인이 되는 대가로 자기들이 내부의 권력을 독점하고 같은 겨레를 노예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내가 아는 한, 이런 사대주의가 한 나라의 정치적 전통으로 굳어진 나라는 한국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불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서양에서 공화국의 기틀을 놓았던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로마의 경우, 원칙적으로 평민은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대부분 영세농이었던 그들은 자기 땅을 경작해서 자기가 먹고 살았을 뿐이다. 나라를 운영하기 위한 재원은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거나, 전쟁을 통해 조달했다. 로마에서는 아예 귀족이 자기에게 딸린 평민의 생계를 책임지고 평민은 자기의 후견귀족에게 투표하는 관행이 제도화되어 있기까지 했다. 시대에 따라 겉모습은 변해왔지만, 외국을 침략해 자기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서양의 정치적 전통인 바, 이런 전통에 기대어 그들은 계급투쟁을 억제하고 국가의 내적 통합을 유지해왔던 것이다.

서구와 달랐던 이 나라 지배계급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지배계급이 차라리 외세의 하수인이 될지언정 같은 겨레와 더불어 우리 모두의 나라를 만들려 하지 않는 곳에서, 외국 군대에 의지하여 동족을 오직 힘으로 억누르고 지배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된 나라에서, 들이 국가폭력에 맞서 싸우면서 자기들의 역사를 만들어온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처음에 동학농민전쟁이 반봉건 항쟁이었다면, 3·1운동은 그에 더하여 반제국주의 투쟁이었으며, 해방 후 이번에는 미국의 힘에 기댄 독재자들 아래서 민중항쟁은 반봉건, 반제에 더하여 반독재 투쟁이 되어야 했으니, 이 역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진보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갈수록 더 중첩되고 착종된 사회악과 맞부딪치게 되고 마침내 원하든 원치 않든 인류 역사의 가장 보편적이고도 본질적인 모순과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때마다 가장 강한 외세에 기대어 권력을 유지하려는 이 나라 지배계급의 고질병 때문에 우리는 가장 강한 외세의 직접적인 수탈 아래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이 나라 지배계급이 자기 국민을 적으로 돌리게 된 것은 그들이 숭상하는 유일한 정치적 이상이 사대주의이기 때문이다. 위는 부시 미국 대통령(왼쪽)과 이명박 대통령.

그런 외세가 미국이다. 오늘날 미국의 자본은 미국의 언어와 화폐, 법과 제도 그리고 미국의 군사력과 결합하여 세계를 지배한다.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은 미국과 적절하게 타협하고 또 대항하면서 자기 국민의 이익을 도모하겠지만, 이 나라의 지배계급은 계산을 복잡하게 하기에는 정신의 용량이 모자라는 까닭에, 그냥 미국이 달라는 것을 다 주는 대가로 자기 권력을 보장받으려 한다. 그 결과 1987년 이후 한국의 역사는 명실상부하게 미국의 식민지로 전락해가는 과정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IMF에서 시작하여 우루과이라운드를 거쳐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어지는 이 식민지화의 과정을 마지막으로 완성시킬 사명을 띠고 출범한 것이 이명박 정부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니, 영어몰입 교육 및 미국산 쇠고기 수입계획은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겸 쓰레기장으로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조치였던 것이다.

그 대가로 이명박씨는 부시의 별장 카트 운전기사가 되는 명예를 얻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들은 미국 축산업자의 먹이로 내던져져,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 제일의 강대국과 맞서 다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라는 산을 넘으면 FTA라는 또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싸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 이렇게 역사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지혜로운 겨레에게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해결을 맡겼다. 그것은 사람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절대자본주의로부터, 그리고 절대자본의 주체인 미국의 폭력으로부터 자기를 구하고 인류를 해방시키라는 과제이다. 지금 밝혀진 촛불은 그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봉화인 것이다.

물론 이 싸움은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동학농민전쟁 이후 한 세기가 지나서야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비로소 정착되었듯이 미국의 절대자본주의와 싸워 이기는 것은 이백년, 삼백년의 과제일 수도 있다. 그 엄청난 역사적 과제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인가.

사대주의에서 비롯된 불행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보면, 언제 우리가 그들보다 강해서 그들을 이겼던가? 지하실 고문대 위에서 질식하고, 아스팔트 위에서 총탄에 쓰러지며, 자기 몸을 불꽃으로 산화시켜 만들어온 것이 우리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오늘 우리는 그 비옥한 저항과 수난의 역사 속에서 단련되어, 방패와 곤봉으로 무장한 전투경찰 앞에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넘치는 생명력으로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새로운 들을 본다. 그들은 더 이상 복면하지 않으며 곤봉이나 화염병을 들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제 국가기구는 흉기를 든 어린애에 지나지 않는데, 이 나라의 들은 지혜로운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들을 두고 이런저런 과도한 걱정을 늘어놓는 것은 아직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촛불의 해일은 멀리는 동학혁명에서 시작하여 오늘까지 이어온 생명의 불꽃인 동시에, 짧게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른바 민주세력의 행보에 실망하고 좌절하면서 이 땅의 들이 스스로 찾아낸 새로운 빛이기도 하다. 촛불은 자기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빛, 아무도 위협하지 않고 다만 자기와 남의 내면을 밝히는 빛, 그리하여 어둠이 그 앞에서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가장 약하고 가장 순수한 빛이다. 폭력을 이기는 이성과 양심의 빛이 이 빛인 것이다. 벗이여, 그대가 바로 이 빛이다. 어서 오라, 우리 이 눈부신 길로 춤추며 노래하며 함께 가자.
 

*온라인에서는 한글의 고어체를 표현 할 수 없어 씨알을 이미지로 표현 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기자명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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