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전투경찰(오른쪽)은 지리산 ‘빨갱이’를 잡기 위해 처음 창설됐다.
촛불시위와 함께 서울 도심지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전·의경. 군 복무를 군대가 아닌 경찰서에서 하겠노라 자원하면 의무경찰, 군에 갔는데 경찰로 차출되면 전투경찰이다. 그 둘을 한데 일러 전·의경이라 하고, 경찰 소속으로 활동하지만 신분은 사실상 군인이다. 전·의경의 연원은 6·25 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의 이런 고민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리산 ‘빨갱이’를 소탕하고 싶지만 작전 지휘권을 미국에 넘겼으니 어떻게 할까? 전투 목적 경찰부대가 묘안이었다. ‘빨갱이’ 소탕이 끝나자 없어졌던 전투경찰은 박정희 정권에서 제도적 물꼬가 트였고, 전두환 정권이 이를 본격 활용했다.

2012년에 전·의경 제도가 폐지된다지만, 사실상의 군인이 적군이 아니라 우리 시민을 상대로 싸우는 이 기묘한 제도는 책 제목대로 ‘한국에만 있다’. 한국에만 있는 게 어디 그뿐이랴. 교회 다니면 금주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한국에만 있는 통념이다. 술을 마시고 즐기되 흥청거리지 말고 적당히 마시라는 게 성서의 가르침이지만, 근본주의 신학에 젖은 19세기 미국 선교사가 구한말 조선인을 게으르며 노름을 즐기고 늘 술에 취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금주·금연을 철칙처럼 부과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오창익 지음 삼인 펴냄
새로운 사람과 대면하거나 사귐이 진행되면 상대에게 꼭 던지는 질문이 있다. “저 실례지만, 올해 나이가?” 대학 다닌 사람들끼리는 나이 대신 학번을 묻는다. 386 세대라는 세대 용어도 1980년대 학번을 포함하고 있으니, 나이로 386 세대에 속해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3분의 2에 달하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 나이라는 개인 정보를 묻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결혼 여부, 자녀 유무, 출신 지역 등이 다 그렇다. 시비 붙어 드잡이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민쯩 까봐!” 소리치는 풍경이야말로 나이 질문의 극단적 말류(末流)라 할까.

십중팔구 나에게만 있는 것은?

‘민쯩 까보라’ 소리칠 수 있는 나라도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주민등록증과 번호 제도가 있는 보기 드문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 제도는 1968년 북한이 ‘청와대 까부수러’ 내려 보낸 무장부대 침투 사건을 계기로, 간첩 색출이라는 목적 아래 도입됐다. 우리나라 주민등록증 1호 박정희의 주민등록번호는 110101-100001로, 오늘날의 체계와 달리 처음 11은 서울, 다음 01은 종로구, 다음 01은 자하동(지금의 청운동)을 뜻하고 뒤의 맨 앞 1은 성별(남성), 그 다음 숫자는 주민등록을 한 순서다. 박정희는 서울시 종로구 자하동에 거주하면서 그 동네에서 처음으로 주민등록을 했던 것.

간첩 색출이라는 도입 명분이 퇴색된 오늘날에도 우리는 주민등록증과 번호를 당연하게 여기지만, 대부분의 나라에는 운전면허증이나 사회보장카드, 즉 특정 목적별 카드만 있다. 카드에 적힌 번호도 의미 없는 숫자의 나열일 뿐이다. ‘한국에만 있는 것’을 찾는 저자의 눈길은 세심하다. 길거리를 뒤덮은 현수막 물결도 저자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저자의 현수막 분류학에 따르면, 우선 관공서에서 붙이는 불조심, 교통 법규, 에너지 절약, 심지어 문단속 잘하자는 계도성 잔소리 현수막이 있다. 둘째로 식당·미용실·헬스클럽·학원 등 다양한 업소 현수막이 있고, 셋째로 어느 대학에 몇 명 합격시켰느니, 누가 어느 학교에 수석으로 붙었으니 하는 ‘비교육적’ 교육 현수막이 있다. 가히 현수막 공해요 현수막 공화국이다.

이렇게 우리의 별로 자랑스럽지 못한 구석을 삐딱하게 들추어 뭣 하자는 건가? 저자는 우리가 잘하는 것, 외국 사람에게 내세울 만한 것도 차고 넘치게 많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잘하는 것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지양해야 할 것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내 주변을 살피고, 나 자신도 되살피게 된다. ‘십중팔구 나에게만 있는’ 건 혹시 없을까? 괜히 부끄럽고 두려워지기까지 한다.

기자명 표정훈 (출판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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