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휴대전화 알림음이 울렸다. 9월29일 독일산 메신저 앱 텔레그램을 처음 설치한 날부터 매일 스무 명이 넘는 새 친구가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떴다(텔레그램은 새 가입자가 생기면 그의 번호를 저장한 모든 이에게 ‘××× just joined Telegram’이라고 연락한다). 특히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40일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압수수색했다는 경찰의 집행 사실 통지서를 받았다”라는 기자회견을 한 10월1일은 텔레그램 새 가입자 알림이 수시로 왔다. 가능성으로 떠돌던 ‘카카오톡 사찰’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정 부대표는 지난 9월16일 서울종로경찰서에서 통지서 한 장을 받았다. 2014년 5월1일부터 6월10일까지 그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 대화 일시, 수·발신 내역 일체, 그림 및 사진 파일을 ㈜카카오로부터 압수수색했다는 내용이었다. 6월10일 청와대 만민공동회 집회를 열고 청와대로 행진을 시도하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그는 그때까지 자신의 카카오톡이 압수수색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카카오톡이 집시법 위반 혐의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적도, 수사 과정에서 제시된 바도 없었다.
 

그는 소름이 돋았다. 경찰이 어디까지 자신의 카카오톡을 들여다봤는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 기간의 카카오톡을 살펴보았다. 대출 문제로 아내에게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준 카톡, 자신의 재판으로 변호사들과 의견을 교환하던 단톡(단체 카카오톡), 초등학교 동창들과 잡담을 나누던 단톡 등 3000여 명과 대화를 나누었다. 공무원·교사로 재직 중인 평범한 친구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언급했던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통지서 내용은 자기와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의 카카오톡 아이디 및 전화번호가 수사기관에 압수되었다는 뜻이었다. 집시법과 관련 없는 수많은 대화를 경찰이 압수수색한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연스레 사찰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음습한 곳에서 뒤를 밟으며 정보를 빼낸 1970년대와는 다르게,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게 나오는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볼 수 있는 2010년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새삼 깨달았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집회 ‘가만있으라’를 주도한 대학생 용혜인씨 또한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당했다. 뒤늦게 받은 경찰의 압수수색 집행통지문에는 카카오톡 내용뿐 아니라 위치 정보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맥 어드레스(MAC Adress)까지 요청되어 있었다. 지난해 철도 파업에 참가했던 철도노조 이용석 부산본부장이 지난 2월 부산지방경찰청으로부터 받은 통신자료제공 집행 통지서에는 카카오에 로그인 기록과 실시간 IP를 요청했다고 쓰여 있었다.

서버 저장 기간을 2∼3일로 줄이겠다지만…

정진우 부대표 등의 폭로가 논란이 되자, 종로경찰서는 당초 40일치 카카오톡 내용을 요구했지만 서버에 6월10일 하루치밖에 남아 있지 않아 그날 내용만 받았다고 해명했다. 카카오 또한 사찰 논란에 선을 그었다. △카카오톡은 대화 내용을 3~7일만 저장하고 이후에는 복구 불가능한 방식으로 삭제하며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이 있을 경우에만 기록을 사법·수사기관에 제공한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았다. 나아가 서버 저장 기간을 이번 달 안에 2~3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적법 절차를 거쳐 영장을 들고 와도 내줄 내용이 없게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맥 어드레스와 위치 정보는 수집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는다. 정진우 부대표처럼 ‘내 카톡도 털릴 수 있다’고 걱정하는 이들의 사이버 망명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우려는 근거가 있다. 무엇보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쉽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정청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달 내놓은 보도자료를 보면, 5년 동안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90%대다(2009년 97%, 2010년 96%, 2011년 93%, 2012년 91%, 2013년 92%).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10번 신청하면 9번은 나온다는 뜻이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법원이 별도의 기일을 잡아 영장실질심사를 하며 당사자의 소명을 들어보는 절차까지 밟는 구속 영장에 비해, 압수수색 영장은 너무 쉽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법원의 통제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 심사라는 절차를 두고 있지만, 법원이 제대로 역할을 한다고 보기에는 기각률이 너무 낮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라고 언급한 이틀 뒤인 9월18일, 검찰은 유관기관 대책회의에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인지수사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고소·고발이 없이도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를 특정해 수사에 들어갈 경우 카카오톡 내용 또한 얼마든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이 90%를 넘는 상황에서 검경이 카카오톡 내용을 들여다보는 건 손쉬운 일이라는 뜻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이른바 ‘박시후 사건’ 때 박씨(가운데)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고소한 여성의 카카오톡 증거 보존을 신청했고, 사건 당일로부터 열흘 전 카톡 내용을 받았다.

게다가 기존 서버 저장 기간이 3~7일이라는 카카오의 주장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배우 박시후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2월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박씨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법원에 자신을 고소한 여성의 카카오톡 증거 보존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카카오톡 서버를 압수수색했고, 그 결과 사건 당일로부터 열흘 전 카카오톡이 수사기관에 제출되었다. 기존 3~ 7일간만 카카오톡을 저장한다는 카카오측 설명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카카오의 한 관계자는 “통상 3~7일이라는 거다. 메시지 양이 많은 경우에는 데이터베이스 교체 주기가 짧아지고, 메시지 양이 적을 때는 8~9일, 어떤 때는 10일까지 서버에 남아 있지만 10일까지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과거 검찰이 사이버상에서 사찰의 칼을 휘둘렀던 전례 또한 시민들의 불안감을 부채질한다. 2009년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광우병을 보도한 MBC 〈PD수첩〉을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PD와 작가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다. 혐의 사실은 정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이었지만, 검찰은 이와 거리가 먼 〈PD수첩〉 메인 작가의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해 여론재판에 불을 댕기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반감이 담긴 작가의 표현을 대중에게 내보이며 자신들의 수사가 정당하다는 식의 ‘언론 플레이’였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당시 검찰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편지 형태인 이메일보다 대화 형태인 카카오톡은 수사기관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더 크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실제로 피의자와 함께 수사에 입회해보면, 카카오톡이 수사에 많이 활용된다는 걸 알게 된다. 혐의 사실과 관련된 부분만 보는 게 아니라, 일단 통째로 받은 후 거기서 혐의 사실과 관련되었는지 여부를 가리기 때문에 다양한 여죄나 피의자의 약점이 나오기도 한다. 그중에 꽤 많은 게 불륜이다. 이런 부분 등을 가지고 검찰이 피의자를 협박하거나 플리바게닝(봐주기를 전제로 한 협상)을 들어오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통신 매체의 저장된 메시지가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4년 말 경찰이 수학능력시험 부정행위 수사를 하면서 수험생의 문자 메시지 내용을 광범위하게 확인해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었고 이후부터 이동통신회사는 기존에 보관하던 문자 메시지 내용을 삭제하고 보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송수신 내역과 기지국 위치 정보만 확인해준다는 것이다. 통신기관의 자정 노력으로 지금은 문자 메시지 내용이 수사 자료로 나오지 않는다.

개인의 ‘정보인권 보호’에 미흡한 현행 통비법

반면 카카오톡 등 모바일 메신저는 아직 이 부분에 대해 특별한 방침이 없다. 지난해 카카오는 서버에 텍스트 메시지를 저장하지 않는 ‘겁나 빠른 황소 프로젝트’를 검토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PC 버전 도입과 사용자 서비스 편의를 위해서 서버 저장이 필요하다는 게 카카오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상에도 송수신 내역과 위치 정보는 보관하라는 규정(통신사업자는 12개월, 모바일 메신저는 3개월)이 있지만, 내용 저장에 대한 명시는 없다. 메시지 내용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 보니 사업자별로 판단이 달라지는 형편이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정병두 당시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 검찰은 PD와 작가의 이메일을 압수수색했고 사적인 이메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이버 검열’의 토대는 이미 갖춰졌다. 아니, 이미 시도되고 있었다. 통비법에 따라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졌을 뿐이다. 통비법 9조3항에 따르면 검찰이 기소 여부를 결정한 지 30일 안에 압수수색 집행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2008년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던 주경복 전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7년치 이메일을 압수수색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이듬해 신설된 조항이다. 늦게나마 압수수색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한계가 많은 조항으로 지적된다. 진보네트워크 장여경 활동가는 “처벌 조항이 없다 보니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하고도 통지를 하지 않는 경우에 제재할 방법이 없다”라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조영선 변호사는 수사 종료 30일 이후에 집행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압수물을 은폐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라면 집행 사실을 뒤늦게 알려준다는 법 취지가 맞다. 하지만 카카오톡같이 이미 서버에 저장되어 있는 경우 개인이 그 내용을 은폐할 가능성이 낮다. 오히려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통지하고 2011년 전교조에 대한 대법원 판례(전자정보 압수수색 영장을 혐의 사실 부분만 집행해야 한다는 판단)처럼 피의자와 변호인 입회 아래 혐의 사실과 관계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가려내서 수사에 넘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서버 저장 기간 등에 대한 카카오 측의 해명.

폭탄을 맞은 카카오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10월1일 다음카카오 출범식에서 이석우 공동대표는 “검찰이 부르는데 안 갈 수 없는 거 아니냐” “정당한 법 집행에 협조한다”라는 심정을 토로했다. 시민단체와 법률 전문가들은 입법이 미비하거나 법률적 통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져오라고 해도 쉽게 가져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장 발부를 좀 더 엄격하게 하고, 영장 집행에 피의자를 참여시켜 혐의 사실과 관련된 부분만 수사기관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번 검찰의 사이버 모니터링 전담반 신설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아무 문제 없는 글을 쓰면 위축될 이유가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부 비판이나 권력자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아예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힌다. 과거 검찰의 행태 때문이다. 날카로운 경제 예측으로 이명박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던 미네르바와 광우병 위험에 대해 보도했던 〈PD수첩〉은 검찰의 광범위한 사이버 수사를 당했고 기소되었다. 둘 다 무죄가 나서 검찰의 무리수가 드러났는데도, 해당 검찰 지휘라인은 승승장구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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