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자신의 책 〈21세기 자본〉의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방한했다. 9월19일 오후 그를 만났다. 한때 한국에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은 불온 도서로 법률적 처벌의 대상이었다. 이 책의 제목을 원용한 〈21세기 자본〉이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 이채롭다. 〈자본〉이 금서였다는 것은 희한한 일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자본〉엔 문제가 있다. 지나친 이론주의와 ‘미래에 어떤 일이 필연적으로 벌어진다(자본주의 붕괴 등)’는 확신이다. 이에 비해 〈21세기 자본〉의 목표는 세계적 불평등에 대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투명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내 책이 주목받고 있다면, 한국 역시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면서 불평등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1세기 자본〉에 따르면, 당신은 이후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더 낮아질 것으로 본다. 한국은? 한국 역시 지속적으로 연 5% 이상의 성장률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고성장률은 선진국을 추격하는 개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예외적 사례다. 유럽도 한때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어느 정도 미국을 따라잡은 뒤엔 1%대로 떨어졌다. 세계경제 차원에서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까지 성장률을 계산해보면 연간 1.6% 정도밖에 안 된다. 이나마도 절반은 인구성장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 역시 (고성장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속적 성장을 생각할 때가 된 것 같다.
ⓒ시사IN 윤무영피케티 교수(위)는 ‘한국 재계가 불평등 심화에 적절히 대응해 시민의 공감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당신은 책에서 이른바 ‘자본소득배율’(‘록스타 경제학자’, 소득 불평등을 분석하다 참조)의 상승을 불평등의 원인 중 하나로 제시했다. 또한 성장률이 내려가면 ‘자본소득배율’이 올라간다고 했다. 결국 앞으로 불평등이 더욱 심각해진다는 이야기인데.
‘자본소득배율’의 상승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니다(사람들이 더욱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다는 의미). 다만 이런 자본을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금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 이외의 시민도 새롭게 자본을 가질 수 있어야 불평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이렇게 하려면, 부자들에게 누진세를 부과해서 자본수익률을 낮춰야 한다.
그래서 〈21세기 자본〉은 글로벌 차원의 국제 공조를 주장한다. 실제로 일부 나라에서만 고율의 누진세제가 시행된다면 이 나라의 자본은 해외로 달아나버릴 것이다. 그런데 국제 공조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부자 나라들인) 유럽과 미국, 아시아 주요 국가의 정부가 마음먹고 협력하면 글로벌 자본의 4분의 3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다. 조세회피처들이 자국 내에 들어온 자본의 내역을 밝히도록 해도 된다. 각국 은행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 국제적으로 이동하는 자본에 대해서도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다. 한국의 좌파 경제학자 사이에서는 당신이 분배 영역에만 몰두하고 생산영역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21세기 자본〉에서는 (과세를 통한) 분배를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생산 단계에서 벌어지는 불평등도 깊이 우려하고 있다. 나는 기업지배구조의 혁신을 통해 생산 영역의 여러 구조도 충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지배구조를 개혁하면 된다. 독일의 폭스바겐이 좋은 사례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키우려는 노력이 있는 것 같다. 노동조합이 회사의 일부 지분을 가지면, 그 두 배의 의결권을 보유하는 경우도 있더라. 좋은 사례다. 그러나 설사 노동자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이사회 등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재계는 당신의 주장이 사회적인 힘을 갖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듯하다. 〈21세기 자본〉에 따라 자본에 과세했다간 투자 의욕이 줄어 한국 경제가 망한다는 소리도 있다. 내 책의 목표는 경제성장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재계는 자신들을 위해서라도 〈21세기 자본〉의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기보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심화에 적절히 대응해서 시민들의 공감을 얻기 바란다. 앞으로 한국 기업들이 지구화된 경쟁을 헤쳐 나가려면 국가의 적절한 지원을 얻어내야 하는데, 여기에는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한국은 조세부담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라고 아는데, 스웨덴이나 덴마크같이 세금을 많이 내는 나라도 생산성이 상당히 높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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