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를 망친 100가지 방법〉 존 터먼 지음 재인 펴냄
“기만이 만연한 시대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혁명적 행위이다.” 미국 MIT 대학의 국제학연구소장인 저자가 서두로 삼은 조지 오웰의 말이다. 곧 그가 보기에 ‘기만이 만연한 시대’가 바로 우리 시대이며, 이 시대의 진실이란 ‘세계 최강대국’을 자임하는 미국이 그동안 세계를 망쳐놓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 100가지 방법으로. “그게 어디 100가지뿐이겠어?”란 생각이 먼저 드는 독자라면 굳이 펼쳐보지 않아도 좋을 책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의 예찬론자이면서 “미국이 정말로 100여 가지의 방식으로 세계를 망쳐놓았을까?” 의구심이 드는 독자라면 하나, 둘 세면서 차근차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영어본과 달리 주제별로 재구성돼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죄목’으로 제일 먼저 다루어진 항목은 공통적인데, 그것은 ‘지구의 기후변화’에 끼친 미국의 악영향이다. 얼핏 미국의 패권주의적 외교정책과 침략전쟁 등에 견주면 죄상이 가벼워 보이지만, 저자가 보기엔 매우 중차대한 문제다. 미국 문명 자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미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대 오염원이며 온실가스 최다 배출국이다. 통계에 따르면 전세계 인구의 4%가 사는 나라에서 지구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5%를 대기중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규제하고자 하는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세계 157개국이 서명하고 비준한 협약인데도 말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을 움직이는 거대 기업의 이익이 걸렸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아예 “교토 협약이 우리 경제를 파멸시킬 것이다”라고 천명했다. ‘우리 경제’는 물론 ‘미국 경제’이며 환경 파괴가 낳을 전지구적 재앙보다는 미국 경제와 미국 기업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부시를 비롯한 미국 권력 엘리트의 판단인 셈이다. 거기서 ‘민주주의’란 대의는 한갓 허울에 불과하다.

테러와의 전쟁도 군수업자의 ‘술수’

〈미국이 세계를 망친…〉 저자 존 터먼(왼쪽)은 미국 MIT 대학 국제학연구소장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미국의 강한 권력은 바로 ‘돈’이다. ‘돈’이라는 권력은 국제무역이나 환경 관련 조처, 전쟁, 그 밖에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테러와의 전쟁조차도 거대 군수업자들이 미국 재무부의 예산을 더 뜯어내기 위한 술수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그렇게 돈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저자는 ‘금권(gilded) 민주주의’라고 이름을 붙인다.

이 ‘금권’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부자 나라’ 미국은 대단히 성공한 나라다. 전세계적으로 순자산이 80억 달러가 넘은 사람 중 절반이 미국인이고, 나머지 절반의 반수 정도도 미국에 의존해 있다고 하니까 말이다. 이 부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끌어들이는 데만 전념한다. 악행을 저지르고, 자선에 인색하며 정부 특혜와 재정 혜택을 요구하고, 재산을 은닉하고, 세금 감면을 촉구한다. “미국은 이와 같은 부자들의 추악한 행위가 정점에 달한 나라이다.” 덕분에 점점 빈털터리가 되어가는 세계인에게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도 부자가 되어 우리처럼 인생을 즐겨라!”

그런데 한편으로 지난 30년간 미국의 가계 실질소득은 증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소득 불균형만 점차 늘어나는 형편이라면 이 ‘아메리칸 드림’이야말로 불평등한 꿈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미국 빈곤층의 장시간 노동으로 이룩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소수가 독식한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미국 기업 경영진의 봉급은 노동자 평균임금의 475배에 이른다고 한다. 일본이 11배, 영국이 22배인 것과 비교해보아도 얼마나 터무니없는 차이인가를 알 수 있다. 과연 이러한 미국식 표준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만한 것일까?

책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오만과 저급한 상업문화에 대해서 줄곧 신랄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서문을 쓴 하워드 진의 말대로 “이런 책을 쓰고 읽고 출판하는 행위야말로 민주주의를 고양하는 일”이다. 감상적인 자기애를 바로잡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힘, 그래도 미국을 버텨주는 힘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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