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때문에 기자들을 괴롭히는 유명인들이 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비슷한 이미지의 동명이인들이다. ‘김갑수’가 대표적이다. 배우 김갑수는 워낙 독특해서 구분이 쉽고, 정치를 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서 정치 분석을 하는 김갑수까지도 어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데, 소설가 김갑수와 시인이자 문화평론가 김갑수는 헷갈리기 십상이다. 구분법은 방송에 자주 나오는 머리가 긴 김갑수가 시인이자 문화평론가라는 것. 또 하나의 구분법은 그가 ‘지독한’ 클래식 애호가라는 점이다. ‘줄라이홀’이라는 그의 작업실에는 LP판 3만 장과 CD가 1만 장 있다.

ⓒ김기연 제공시인·문화평론가 김갑수씨는 클래식 마니아다.
김씨의 아지트인 ‘줄라이홀’은 중년 남자들을 위한 최고의 놀이터다. 여러 종류의 LP와 CD뿐 아니라 최고 성능의 오디오도 종류별로 있다. 그의 수집벽을 엿볼 수 있는 세계 각국의 커피메이커와 각종 석유 랜턴들이 즐비하다. 이것을 다 조합하면 천상의 시간을 맛볼 수 있다. 은은한 석유 랜턴 아래서 커피를 마시며 조용히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음악이 말을 걸어오는 것을 느끼며 추억에 잠길 수 있다.

30여 년 동안 심취해 있던 클래식에 관한 책을 썼다. 그런데 좀 수다스럽다. 그 클래식을 들으며 떠올랐던 상념들을 그대로 담았다. ‘추억은 뭐랄까, 다큐멘터리 장르라기보다 창작물에 가깝다’ ‘어떤 학자가 대중적인지 통속적인지 판정하는 사람은 대중이어야 할까 전문가여야 할까’ ‘가장 화끈한 여행은 자기가 발 딛고 사는 익숙한 땅이 낯선 이방으로 느껴지는 상태다’ ‘모든 예술가들에게 진정한 작품은 데뷔작 하나뿐이고 나머지 전부는 자기 복제품일 뿐이다’ ‘이성적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적으로 낙관하라!(그가 인터넷에서 건진 말)’ 이런 상념을 적고 그와 어울리는 작곡가와 음악을 설명했다.

클래식에 대한 책이지만 두서가 없다. 체계도 없다. 그때그때 기분에 어울리는 곡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은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클래식 관련 책을 보게 되는데 대부분 전공자나 지망자를 위한 교과서적인 책이다. 그런 책에서 공통적으로 소개하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있다. 그렇게 규격화된 클래식에는 정을 주기가 쉽지 않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고수들끼리 찾아낸 작곡가와 연주자가 있다. 그들의 음악이 언제 어울릴지 궁리했다”라고 말했다.

클래식 하면 왠지 LP판으로 들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어깨 힘을 빼고 들으라며 “이 책은 유튜브로 검색해 음악을 들으면서 읽으면 된다. 왠지 좋고 들으면 기분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조금 오래 들어본 사람이 그 감흥을 전달해준다는 생각으로 썼다. 내가 느꼈던 강렬함을 독자에게도 전달하고 싶었다. 슬픔도 절망도 음악을 통과하면서 삶의 즐거움으로 바뀐다. 그 찰나의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취미는 인생을 근사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그는 흔들리는 중년 남성들에게 삶을 붙드는 가장 강력한 끈이 취미라고 충고한다. 그는 “취미는 중년 남성들이 자기 인생을 근사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소득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열심히 할 때 삶의 내용이 채워진다. 취미로 하면 두루 걸치며 겉만 스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를 깊이 있게 파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다른 영역도 추론이나 유추가 가능해진다. 여러 분야에 걸치면 제대로 발을 담그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여러 취미 중에 끄집어낼 것이 가장 많은 게 클래식이다. 파도 파도 팔 게 더 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문화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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