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가 있다. 둘은 대학 선후배 사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후배는 시민군으로 참여했고, 선배는 의사로서 시민군을 치료하는 일에 동참했다. 후배는 계속 민주화운동을 하다 수감된다. 그 후배가 출소할 때 선배는 마중 나와 환영해주었다. 그리고 후배의 평생 반려자를 소개해주었다. 후배는 선배를 시민운동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함께 시민단체를 만들어 국제 인권대회를 광주에서 열었다.

30년 넘게 둘의 아름다운 인연은 이어진다. 선배는 광주 시민운동의 대부로, 후배는 민중미술의 대부로, 자신의 영역에서 입지를 굳혔다. 선배는 광주의 대표적 대안공간인 메이홀의 후원자로, 후배는 이 갤러리의 대표 화가로 인연을 이어간다. 후배가 다른 화가들과 함께 필생의 역작이 될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선배는 직접 찾아와서 격려를 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난다.

선배의 이름은 윤장현, 지금 광주광역시장이다. 후배의 이름은 홍성담,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세월오월’을 그린 바로 그 화가다. 비엔날레재단 이사장이기도 한 윤장현 시장은 이 그림의 전시를 막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둘은 지금 벼랑 끝에서 대치 중이다. 그림의 전시를 막는 힘의 맨 상부에 윤 시장이 있고, 기필코 그림을 전시하겠다는 움직임의 중심에 홍 화백이 있다.

ⓒ시사IN 조남진작품이 철거된 광주시립미술관 전시관 곳곳에 흰 벽이 보인다. 광주비엔날레 20주년을 기념해 진행되고 있는 특별기획전 ‘달콤한 이슬-1980 그 후’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연합뉴스‘세월오월’ 전시 유보 이후 이윤엽 판화가(왼쪽) 등 미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빼겠다고 나섰다.
광주광역시가 그림 전시를 유보하면서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그림이 전시되지 못한 것에 책임을 지고 책임 큐레이터인 윤범모 교수(가천대)가 사퇴하고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윤엽 판화가와 홍성민·정영창 작가가 홍 화백의 작품 전시 유보에 항의해 자신들의 작품을 철거했다.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의 사키마 미치오 관장과 작품을 낸 히가 도요미쓰, 긴조 미쓰루 작가 등도 불참을 통보했다.

문제가 된 ‘세월오월’의 주제는 바로 ‘광주정신’이었다. 화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을 배우던 단원고 학생이 세월호 참사로 사망하자 홍 화백은 부모와 함께 직접 진도 팽목항을 찾았다. 그에게 세월호 참사는 1980년 광주 비극의 데자뷔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치유되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한다’는 의미를 담아 세월호 피해자와 광주민주화운동 시민군을 함께 그린 ‘세월오월’을 완성했다(“이 그림에서 ‘허수아비’만 보입니까?” 기사 참조).

‘세월오월’은 홍 화백이 혼자 그린 그림이 아니라 시각매체연구회 소속 화가 8명과 공모를 통해 선발된 광주 시민이 함께 그린 작품이다. 이렇게 함께 그린 그림이 논란이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홍 화백은 “박근혜 대통령 출산 그림 때문에 많이 시달렸다. 그래서 이 그림을 기획할 때 비굴할 정도로 자기 검열을 했다. 사실 싱거운 그림이다. ‘광주정신’을 담아내는 미션이 나에게 주어졌는데, 담론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광주정신’이라면 윤장현 시장도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불허되자 광주광역시장 후보였던 그는 ‘광주정신을 훼손했다’며 강력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 6·4 지방선거 때는 그의 선거 캠프 대변인이 경쟁자인 이용섭 의원과 강운태 전 시장에게 “공무원 신분이었던 두 후보는 1980년 5월에 어디 있었느냐?”라며 공격하기도 했다.

ⓒ연합뉴스윤장현 광주시장.
그러나 ‘세월오월’이 문제가 되자 윤 시장은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중국을 방문 중이던 그는 8월6일 측근을 통해 “창작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지만 시 예산이 들어간 비엔날레 특별전에 정치적 성격의 그림이 걸리는 것은 맞지 않다”라고 부정적 견해를 밝혔고, 이 발언이 논란을 빚자 다음 날에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다. 작품 전시 여부는 광주시가 아닌 광주비엔날레재단 등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긴다”라며 다소 후퇴했다.

윤 시장 “9월16일 대토론회 열어 결정하자”

형식적으로는 광주광역시는 뒤로 빠지고 광주비엔날레재단이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대표와 전시 책임 큐레이터가 사퇴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더구나 광주광역시장은 비엔날레재단의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결국 윤 시장이 풀어야 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윤 시장은 “9월16일 대토론회를 열어서 전시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발표했다.

논쟁 당사자에서 벗어나 시간을 번 직후 윤 시장은 물밑으로 홍 화백과 접촉했다. 〈시사IN〉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대략 세 차례 접촉했다. 윤 시장이 중국 방문을 위해 출국하던 무렵인 8월 초 윤 시장의 부인이 홍 화백과 함께 작업한 후배에게 연락을 해서 만났다. 8월17일에는 윤 시장이 직접 홍 화백을 불러내 차 안에서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후 둘은 문자로도 전시 철회 문제로 의견을 나누었다.

ⓒ연합뉴스윤장현 광주시장.
윤 시장과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 홍 화백은 “전시를 막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더라. 귀가 닫혀 있었다. ‘형, 이러다 형이 죽어. 내가 물러나려고 해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야. 아무리 나를 방해해도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 그림을 걸고야 말 거야’라고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자 광주는 최고 권력자인 윤 시장과 광주정신의 표상이 된 홍 화백 쪽으로 나뉘어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5·18기념재단과 5·18 관련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 등 광주의 대표적인 시민사회 단체나 문화예술 단체는 이번 논란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보고 ‘세월오월’을 즉각 전시하라고 압박했다.

전시를 반대하는 쪽도 소수지만 있었다. 8월20일 윤장현 시장은 안종일 전 광주시 교육감, 김양균 전 헌법재판관, 조비오 신부 등 지역 원로 16명을 불러 만찬을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홍성담씨의 걸개그림 작품 ‘세월오월’을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전시해서는 안 된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림 한 점을 놓고 광주가 완전히 갈린 형국이다.

‘세월오월’로 광주가 양분되면서 광주의 해묵은 문제들이 속속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부각된 것은 광주의 예산 축소다. 홍 화백은 “시청 공무원들이 비엔날레재단을 통해 압박할 때 가장 자주 거론한 것이 바로 예산 축소였다. 이런 일로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면 광주가 예산을 배정받을 때 소외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라고 말했다.

문화중심도시 사업을 위해 정부는 광주에 아시아문화의전당을 건립하고 아시아문화개발원을 설립했다. 총 3조원 규모의 사업인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50%씩 분담하는 방식이다. 광주가 예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2012년 개관했어야 할 아시아문화의전당이 2015년으로 개관이 미뤄졌다. 전당 운영과 개발원 사업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광주광역시와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중앙정부와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은 광주의 세대 갈등 문제다. 박호재 광주문화재단 문화사업실장은 “밖에서 보면 광주가 진보적인 도시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지극히 보수적이다. 광주비엔날레재단, 광주문화재단, 아시아문화개발원 이사진 구성을 봐라. 연로하다. 그래서 방식이 구태의연하다. 이번에도 사태 해결을 원칙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풀려다 엉켜버렸다”라고 지적했다.

문화 권력을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도 노출되었다. ㈔한국미술협회 광주광역시지회와 ㈔한국전업작가회의 광주광역시지회, ㈔광주미술상위원회는 8월21일 성명을 내고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에 대해 “특별전 파행의 원인을 광주시 책임으로 전가해 본질을 호도했다. 사건의 전모를 확실히 밝히고 진정한 사과를 한 후 즉각 사퇴하기 바란다”라고 공격했다. 이때 이 대표는 이미 “평론가 입장에서 볼 때 ‘세월오월’은 전시되는 것이 맞다”라고 밝히며 사의 표명을 한 상황이었다.

그런가 하면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전시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강연균 전 광주시립미술관장은 이번 사태를 논의할 예정이던 자문회의를 취소하며 “이번 특별전 파행의 중심에는 재단이 있고 재단이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자문위원 회의를 열어 논의하겠다는 것은 재단 측이 자문위원들에게 덤터기를 씌우려는 것으로 보여 자문회의 소집을 철회하기로 했다”라고 언론에 밝혔다.

‘세월오월’의 전시를 막고 있는 사람은 윤장현 시장인데 광주의 주요 미술계 인사들이 여기저기서 광주비엔날레재단을 공격하는 모양새다. 왜 그럴까? 광주의 한 공공문화 기획자는 “광주는 독특하다. 문제를 제기하면 개선하거나 개혁하려 하지 않고 문제 제기를 주도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준다. 작가가 문제 제기를 하면 특별전에 초대했다가도 본전시로 바꿔준다. 이것이 광주가 예술을 길들이는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강연균 전 관장의 경우 초대 광주비엔날레 때 ‘안티비엔날레’를 주도했는데 2회 행사 때는 광주비엔날레 사무차장으로 영전했다.

애초에 이번 사태도 큐레이터 사이의 내분에서 비롯되었다. 홍 화백은 “큐레이터 중 한 명이 박근혜 허수아비 부분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시 공무원들에게 보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나섰다. 나를 길들이는 것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으려고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말을 듣겠나? 밖에서 보기에 이 싸움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다툼 같지만, 밑바닥에는 광주비엔날레재단 자리를 놓고 벌이는 권력 다툼이 깔려 있다. 윤 시장은 인수위 시절부터 비엔날레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광주에서 활동하는 한 문화기획자는 “모두가 광주비엔날레를 살려야 한다고 말하는데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엔날레를 빌미로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들이다”라고 말했다. 조정태 민족미술인협회 광주지회장은 “다들 이해관계에 따라 대응한다. 국민은 광주에 정의를 기대하는데, 정작 문제 해결의 주체들은 혈연·지연·학연을 따라 줄만 대고 있다. 광주 안에서 본심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되어 있다. 참담하다”라고 말했다.

“광주비엔날레에는 4가지 갈등 축이 있다”

광주의 기득권층이 이런 이전투구를 벌일 때 문화기획자들과 신진 미술인들은 8월19일 ‘역사적 비엔날레:발굴하고 묻기 그리고 살기’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이명훈 예술공간 돈키호테 큐레이터는 “광주비엔날레에는 4가지 갈등 축이 있다. 민이 주도하느냐 관이 주도하느냐, 국제 행사냐 지역주의 행사냐, 순수예술 행사냐 시민을 위한 축제냐, 광주를 문화의 도시로 말하는 예향론을 앞세우느냐 광주정신을 강조하는 의향론을 앞세우느냐의 힘겨루기를 해왔다”라고 꼬집었다.

밖에서 보기에 광주비엔날레는 성공한 문화 행사다. 세계적인 권위의 인터넷 미술 사이트인 ‘아트네트’는 관객수, 역사, 예산, 영향력, 큐레이터 등 다양한 지표로 산출한 결과 광주비엔날레가 베니스 비엔날레와 카셀 도큐멘타, 휘트니 비엔날레, 유럽의 순회 비엔날레인 마니페스타와 함께 세계 5대 미술 행사로 꼽힌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광주비엔날레는 정작 이 지역 작가들이 보기에 ‘그들만의 리그’였다.

광주의 한 조각가는 “비엔날레에 매번 참석해왔는데 지역 작가들에게 유독 소홀하다. 약속했던 금액도 제대로 결제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역 작가에 대한 쿼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은 작가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우리는 광주의 미술가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큐레이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전고필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 총감독은 “광주비엔날레는 외부 전문가들이 와서 자신의 전문성을 쌓고 떠나버리는 곳이다. 비엔날레의 노하우가 정작 광주에는 남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는 ‘터전을 불태우라’이다. 이 말이 예언처럼 되어서 비엔날레가 송두리째 타들어가고 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한 문화기획자는 “이번 사태가 절망의 증거일 수도 있지만 생각을 바꾸면 희망의 근거로도 볼 수 있다. 광주니까 이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런 정도의 내부 문제 제기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민의 힘으로 그림이 다시 걸리게 된다면 광주는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과연 ‘광주정신’은 살아날 수 있을까? 홍 화백이 ‘세월오월’을 그렸던 대안공간 메이홀의 임의진 관장은 “이번 논란은 홍성담과 윤장현의 싸움이 아니다. 시민 시장으로 갈 것이냐 경제 시장으로 갈 것이냐의 갈등이다. 광주는 돈이 아니라 자존심을 택했다. 광주의 민심은 택시 운전사의 얘기를 들으면 알 수 있다. 오늘 만난 분이 그랬다. ‘이런 거 저런 거 주워 먹으면서 정권교체 할 수 있겠나? 우리가 언제 아부해서 좋았던 적 있나?’ 이게 답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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