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후기

안전하신가요? 

 

지난 7월17일 세월호 구조 업무에 투입됐던 강원도 소방본부 헬기가 광주 도심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소방관 다섯 명이 순직했다. 유족들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만나 “유언장을 써서 서랍에 넣어놓고 일을 해왔다. 야박한 지방공무원직 처우를 제발 개선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소방관들은 지방공무원 신분을 국가공무원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소방관 조직은 이원화되어 있다. 현장에 투입되는 소방관들은 모두 지방직 공무원이고, 소방방재청 행정직과 지자체 본부장을 포함한 322명만이 국가직 소방공무원이다.

7월30일 오전 8시부터 이튿날 오후 6시까지 강원도 춘천소방서 소방관들을 동행했다.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의 24시간을 재구성했다.
 

ⓒ시사IN 신선영7월31일 자정이 넘은 시각. 화재 진압, 구조 차량이 줄지어 도로를 달리고 있다.


오전 8시45분 “생각도 안전, 행동도 안전, 나의 안전, 동료의 안전, 가족의 안전!”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 춘천소방서 앞. 주간근무를 시작하는 대원들이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야간근무 대원들은 하나둘 퇴근하는 중이다.

이들은 3조 2교대로 일한다. 주간근무 시간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야간근무는 오후 6시에서 다음 날 오전 9시다. 나머지 한 팀이 주말에 24시간씩 당번을 선다. 춘천소방서 소속 소방관은 모두 263명. 관할 지역(춘천시·화천군·양구군) 인구는 32만명으로 서울 서대문구와 비슷한 정도이지만, 관할 면적은 2725㎢로 서대문구의 150배, 서울의 4.5배다. 실제 사고 현장을 담당하는 현장대응과는 불을 끄는 진압팀, 환자에게 응급조치를 하고 병원으로 이송하는 구급팀, 인명 구출을 맡은 구조팀으로 나뉜다.

오전 9시55분 “구조 출동, 구조 출동.” 경쾌한 음악 뒤에 무전 소리가 울렸다. 119 신고가 강원도청 종합상황실에 접수되면, 거기서 관할 구역에 따라 ‘출동 지령’을 내린다. 지령은 건물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온다.

‘신고 내용:주택 진입로 다리 아래 말벌집.’ 이날 첫 출동은 벌집 제거다. 여름철 가장 많은 신고 중 하나다. 하루에 많게는 10건까지 신고가 들어온다. 몇 년 전부터 119 홍보가 강화되면서 이런 생활 민원이 부쩍 늘었다.

김진호 진압대원(37·소방교)과 의무소방대원(군 대체복무의 한 종류) 1명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서 신고 장소에 도착했다. 흰색 보호복과 노란색 고무장갑을 착용한 김 대원이 능숙한 솜씨로 다리 밑에 생긴 말벌집을 뜯어내 비닐봉지에 담았다. 옆에서는 의무소방대원이 방충제를 뿌렸다. 김 대원은 신고하지 않은 인근 주민 집에 생긴 벌집 4개도 제거했다.

 

 

ⓒ시사IN 신선영소방차 안에는 7월17일 헬기 사고로 숨진 동료들을 추모하는 ‘근조’ 리본이 달려 있다.


소방관들은 부상을 달고 산다. 이날도 말벌 한 마리가 비닐봉지를 뚫고 나와 대원 한 명의 오른쪽 가슴을 쐈다.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하다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만성 질병도 문제다. 한 구급대원은 “아마 구급대원 절반은 허리 디스크 환자일 거다. 환자로부터 감염을 우려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니 치료를 받을 여건이 안 된다. 내가 빠지면 동료가 고생하니까…”라고 말했다.

다쳤을 때 사비로 치료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한 구조대원은 “출동을 나갔다가 술 취한 주민에게 폭행을 당해 이가 깨졌다. 그런데 공무 중 부상 처리를 하려고 보니 서류가 너무 많고 심사 절차가 까다로워서 결국 내 돈 내고 치료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방관은 “공상 처리가 통과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싶다. 행정부처에서 다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예산이 없다는 걸 알고 윗선 눈치도 보이니 지레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벌집 제거는 하루 10건 이상씩 신고가 들어온다. 몇 년 전부터 생활 민원이 부쩍 늘었다.

낮 12시 지하 1층 구내식당에서 대원들이 점심식사를 했다. 게시판에는 ‘현장출동 방송 발생 시 원활한 출동을 위하여 정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밥을 먹다가도 출동지령이 떨어지면 달려나가야 한다. 대원들은 유독 밥을 빨리 먹었다.

21년차 소방관 한 아무개씨(47)는 신입 시절에 일주일 넘게 밥을 거의 넘기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람이 불에 타 죽은 냄새를 처음으로 맡은 탓이었다. “50대 여성이었는데, 살갗이 다 타서 뼈가 드러나 있었다. 신입 시절에는 시신만 보면 꿈에 나왔다.”

소방관은 늘 죽음과 마주하는 직업이다. 춘천소방서 관할지 중 소양1교는 자살 시도가 끊이지 않는 자리다. 익사한 시신은 부패가 진행되면 가스가 차서 떠오르는데, 여름엔 5일, 겨울엔 열흘 정도 걸린다. 이때쯤이면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는 시신을 보게 된다. 교통사고 현장은 특히 고통스럽다. 시신이 차 사이에 끼거나 뼈가 훤히 드러나는 장면도 감당해야 한다.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소방대원도 많다. 춘천소방서의 한 소방관은 “소방관이 자살을 하면 목을 매는 경우가 꽤 된다. 목을 맨 시신을 자주 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학습’이 된다고 우리끼리는 이야기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참혹한 현장을 처리하고 나면 심리검사를 받도록 공문이 내려온다. 그나마 올해부터 생긴 변화다.

고기봉 소방관(47·소방장)은 1994년 첫 발령지였던 양구 센터에서 겪은 잊지 못할 기억을 들려줬다. 20대 초반 청년이 차량으로 건물을 들이받았다. 119가 출동해 청년을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차가 흔들리면서, 청년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청년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철근이 목을 꿰뚫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동안 고 소방관은 소주 없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4월 소방방재청이 현장에서 뛰는 전국 소방관 3만91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소방공무원 심리평가’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3만7093명)의 39%(1만4460명)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나 알코올 사용장애, 우울증이나 수면장애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는 화재 사건에 출동하거나 동료 사망, 본인 부상 등에 노출된 빈도는 지난 1년간 소방관 1인당 평균 7.8회였다.

오후 2시35분 등산을 하던 75세 여성이 사라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 신고는 ‘산악 사고’로 분류됐다. 강원도에서 특히 잦다. 구급대원 2명과 구조대원 1명, 의무소방대원 4명이 출동했다. 일대를 수색하던 대원들은 4시간이 지나서야 실종자가 집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허탈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시사IN 신선영거동이 어려운 독거노인을 이송하는 차 안에서 구급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에야 사고 없이 넘어갔지만, 긴급 상황에는 헬기가 떠야 한다. 강원도소방본부 소속 헬기 추락 사고로 도내에는 양양 제2항공대 헬기 한 대뿐이다. 수색하는 동안 대원들은 줄곧 “헬기도 없는데…” “양양 헬기 부르기 미안한데…”라고 중얼거렸다.

순찰차 안에는 한자로 ‘근조’가 적힌 검은 리본이 달려 있다. 대원들은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헬기 사고 순직자의 이름이 적힌 노란 리본으로 바꿔놓은 상태다. 사무실 벽에 걸린 단체 사진에는 이번 참사로 희생된 고 신영룡 소방관이 대원들과 함께 웃고 있다. 신 소방관은 춘천소방서 구조대원으로 활동했다. 사고가 난 헬기는 이번처럼 춘천소방서 관할 지역에 산악 사고가 생기면 지원 나왔던 헬기다.

홍순걸 구조대원(47·소방위)은 신영룡 소방관의 특전사 선배다. 2년 넘게 함께 일했다. “형제를 잃은 심정이었다. 그 헬기 안에 있었으면 마음이 어땠을까…. 그 일 있고 변사 사건 현장에 갔는데, 평소에는 흔한 일이지만 유독 하기가 싫었다”라고 말했다. 한국 소방관은 1만명당 1.85명이 업무 중에 사망한다. 미국의 1.8배, 일본의 2.6배다(소방방재청, 2011년 기준).

오후 5시 근무교대 준비 시간이다. 대원들은 펌프차, 구조차, 배연차, 고가 사다리차 등 각 차량에 적재된 운용 장비를 점검한다. 내구 연한이 임박했거나 이미 지난 차량도 있다. 한 구조대원은 “차량이 가다 멈춘 적도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구조대원은 “출동할 때에도 차량에 어떤 결함이 있는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기 때문에 장비에 대한 불신이 있다. 건의도 하고 위에서도 다 알고 있는데, 돈이 있어야 제때 바꿔주지. 행정 부처가 쓰는 차는 5년만 돼도 새 걸로 바꾼다는데 뭔가 거꾸로 된 것 같다”라고 고개를 저었다.

소방방재청 자료를 보면, 강원 지역 소방장비 중 28.3%가 사용기한을 넘긴 노후 장비다. 특히 소방관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장비의 노후화가 심각하다. 방화복은 61%, 헬멧은 56%, 공기호흡기 세트는 48%가 노후 장비다.

‘장비 사비 구입’도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정석찬 진압팀장(48·소방위)은 “동료가 화재 현장에 출동했다가 헬멧에 달린 헤드랜턴이 파손됐다. 연기 투시 기능이 있는 랜턴이라 30만원 정도 하는데 사비로 구입했다. 여유가 있어서 창고에 쌓아놓는 게 아니니까 교체에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소방관 대부분은 황토색 신형 방화복(오른쪽)이 아닌 검정색 구형 방화복(왼쪽)을 입었다.


기능이 더 좋은 장비가 새로 도입된다 해도 바로 보급되는 게 아니다. 화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대원들 대부분은 새로 나온 황토색 방화복이 아닌 검정색 방화복을 입고 있었다. 구형과 신형은 고열을 견디는 기능에서 3배 차이가 난다. 정석찬 진압팀장은 “검은 건 다 지급이 됐는데 신형은 100% 지급이 되지 않았다.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절반이 안 되는 곳도 있다”라고 말했다.

애초에 방화복이 제대로 나온 것도 2001년 서울 홍제동의 화재 사고가 계기였다. 연립건물 화재 붕괴 사고로 소방관 6명이 순직했는데, 사고 당시 소방관들은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을 입고 있었다. 같은 해 3월 또다시 화재 사고로 소방관 7명이 순직하자 의무소방대가 설치되었다. 3교대 근무로 바뀐 것도 이른바 ‘나홀로 지역대’에 근무하던 소방관이 홀로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뒤 생긴 변화다. 그나마 실상은 3조 2교대다. 아직 24시간 맞교대를 하는 지역도 적지 않다. 오후 6시부터 야간근무가 시작됐다.

오전 0시25분 “화재 출동, 화재 출동.” 꽝꽝거리는 음악이 잠시 흐른 뒤 화재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춘천시 동내면 거두리에 있는 한 제약회사에서 자동화재 속보 설비가 울렸다. 그러면 강원도청 종합상황실에 자동 통보돼 출동 지령이 떨어진다. 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건물을 빙 돌며 확인했고, 지하 1층 기계실도 둘러봤다. 설비 오작동이었다.

대형 화재는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진압팀은 보통 10명이 출동하는데, 휴가나 교육 등이 있어서 전원이 근무하는 날은 거의 없다. 7월11일 동내면 학곡리의 한 교회 건물에서 불이 났을 때 춘천소방서는 비번을 포함한 전 직원을 비상소집했다. 정석찬 진압팀장은 “날씨가 더운데 화재 열기에까지 노출되면 금방 피로가 온다. 돌아가면서 쉬어야 활동을 할 수 있는데 교대할 사람이 없다. 그 교회가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건물이라 초기에 많은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게 중요했는데, 사람이 없다 보니 대응이 지연됐다”라고 말했다. 대형 화재로 전 직원이 투입됐을 때 이른바 ‘쌍불’(화재가 동시에 두 곳 이상에서 나는 경우)이 터지면 사실상 대책이 없다.

소방관은 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담배를 끄는 모습만 봐도 소방관을 알아볼 수 있다. 춘천소방서 흡연실. 모든 소방관들은 담뱃불을 그야말로 집요하게 끈다. 좌로 돌렸다 우로 돌렸다 위에서 아래로 꾹 누르기도 하고, 재떨이를 뚫어버릴 기세로 비비고 또 비빈다. 의무소방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오전 6시12분 잔잔한 바이올린 연주 뒤에 “구급 출동, 구급 출동” 무전이 울렸다. 구급대원 2명이 앰뷸런스를 타고 출동했다.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어지러워 119에 신고했다. 앰뷸런스 뒤에 탄 조자연 구급대원(35·소방교)이 언제부터 어지러웠는지, 지병이 있는지 물었다. 혈압도 체크했다. 인근 병원에 도착해 조 구급대원이 응급실에서 대리 접수를 했다. 김민수 대원(35·소방사)은 조 대원이 사용한 여러 장비를 정리했다. 들것에 알코올을 뿌려 닦았다. 감염 위험이 있어서 늘 소독해야 한다.

오는 9월 열리는 전국 소방경연기술대회에는 춘천소방서 구급대원 3명이 출전한다. 대원 1명은 지도를 하고, 2명이 팀을 이뤄 응급조치를 한다. 이건 대회에서나 가능한 얘기다. 현장에서는 뒤에 탄 대원이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한다. 구급차 정원은 3명이지만, 보통은 대원 2명에 보조인력으로 의무소방대원이 출동하는 정도다. 변창수 구급대원(40·소방장)은 “의무소방대원이 탄다고는 하지만 알아서 척척 움직여주는 게 아니라 일일이 지시를 해야 한다. 혼자 압박하고 호흡 넣고 병원이나 상황실에 연락하고 혈압·호흡·맥박까지 다 기록하려면 버거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소방관에게 일손은 늘 아쉽고, 장비는 늘 불안하다. 의무소방대원 12명이 없이는 최소 정원도 맞추기 어려운 것이 119의 현실이다. 이들은 “예산이 없다는 걸 이해는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가직 전환이 된다면…”이라고 덧붙인다. 그렇게만 되면 적어도 지자체 예산 때문에 인력과 장비가 제대로 확충되지 않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는다. ‘지방자치 흐름에 역행한다’는 정부 논리가 대원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그 ‘흐름’이라는 것이 이들에게 안겨준 건 “돈이 없으니까”라는 체념이다.

오전 8시40분 내구 연한이 지나거나 임박한 차량에 시동을 걸고 소방서 앞을 빙 돌았다. 야간근무와 주간근무가 교대하는 시간이다. 사고로 동료를 잃은 이들은 오늘도 독거노인을 병원으로 이송하고 고양이를 구할 것이다. 때로는 앰뷸런스 뒤에 혼자 타서 심장이 멈춘 환자의 가슴을 누를 것이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울리는 출동음에 반사적으로 달려갈 것이다. 퇴근하는 구조대원은 자기 차 뒷좌석에도 검은 때가 묻은 장갑을 놓고 다닌다. “생각도 안전, 행동도 안전, 나의 안전, 동료의 안전, 가족의 안전!” 대원들이 구호를 외치는 춘천소방서 건물에는 ‘소방서 119의 약속, 안전 한국’이라고 쓰여 있다.

 

 

기자명 춘천·전혜원 기자, 김원진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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