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닉네임 ‘라쿤’이 시위대와 전경 간 대치 상황을 인터넷 생중계 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5월26일 밤, SBS 기자가 서울 종각역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촛불 시위대를 배경으로  뉴스 생중계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은 오늘 저녁 7000명의 촛불문화제 참석자….” 원고 읽는 연습을 하던 기자에게 몇몇 시민이 소리쳤다. “SBS, 보도 똑바로 해!” “7000명이 아니고 1만명이야!” 집회에서 만난 시민은 주요 언론을 불신했다. “조·중·동은 물러가라”는 구호가 자주 울려 퍼졌다. 한 메이저 신문 기자는 취재 수첩 낱장마다 찍힌 제호를 볼펜으로 다 칠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민 인터뷰가 힘들었다. 

못 믿을 언론 대신 시민이 직접 나섰다. 일반인도 수첩에 현장을 일일이 기록해 다음 날 블로그에 올렸다. ‘인기 폭발’의 인터넷 방송 진행자도 평범한 시민이었다. BJ(Broadcasting Jockey) ‘라쿤’ 나동혁씨(23)는 원래 ‘아프리카’에서 박지성 동영상을 즐겨 보던 시청자였다. 나씨는 “언론이 왜곡된 정보를 뿌리는 걸 보고” 노트북과 마이크를 들고 나섰다. 또 다른 인기 BJ 방호석씨(35)는 3년 전부터 ‘쌩쑈 노래방’ 같은 가벼운 방송을 진행해왔다. “집회·시위를 진짜 싫어했다”라는 방씨는 5월27일 새벽, 거리에 서서 눈물을 흘렸다. “공권력이 이렇게 무서운 건지 처음 알았어요. 도로 위 사람은 분노를, 인도 위 사람은 상실감을 느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걸 가감없이 보여주는 개인 방송밖에 없어요.”
 
1인 미디어는 제약이 많다. 기자증을 보이면 통과할 수 있는 전경 대열 틈을, 개인 BJ들은 지나가지 못한다. 위협도 느낀다. ‘라쿤’ 나씨는 5월28일 새벽 경찰에게 DSLR 카메라로 7장 연속 사진을 찍혔다. 방씨는 “생중계를 하는 내내 사복 경찰 두 명이 내 곁을 따라다녔다”라고 말했다.

“생중계 내내 사복 경찰이 따라다녔다”

1인 미디어를 통해 정보의 갈증을 풀던 누리꾼들은 ‘외압’의 작은 낌새 하나에도 술렁였다. 아프리카 측에서 BJ의 촛불 방송을 막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우콤 박은희 홍보팀장은 “다른 사람이 하는 생중계를 마치 자기가 하는 것처럼 꾸민 이에게 저작권 경고를 한 게 와전됐다”라고 말했다. KT가 의도적으로 와이브로 통신을 끊었다는 의혹도 퍼졌다. 사용자들은 “진압대가 들이닥치는 절묘한 타이밍에 신호가 끊겼다”라고 했지만, KT 측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KT는 지난 5월16일 홈페이지에 5월27일 새벽 시스템 업그레이드 작업을 할 것이라는 사전 공지를 띄웠다.

보수 언론은 동영상과 카페 게시물 등 통제 없는 ‘1인 미디어’를 루머와 선동의 근거지로 지목했다. 하지만 한 포털 사이트 관계자는 “인터넷 공간에서 자정 작용이 분명히 작동한다. 루머성 의혹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라고 말했다. 2002년 촛불집회 때부터 집회와 미디어 발전 양상을 눈여겨봐 왔다는 회사원 전명산씨(36)는 “1인 미디어는 이제껏 기자와 전문 프리랜서가 하던 ‘팩트’(fact) 생산력이 약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개인이 팩트를 거머쥐기 시작했다”라고 평가했다. “미디어가 할 일은 개인이 생산한 팩트를 루머로 치부하고 무시할 게 아니라, 그것과 경쟁하고,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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