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촛불집회 현장에서는 “거리 시위에 처음 참여한다”라는 386이 여럿 있었다.

‘386의 귀환’이다. 촛불집회가 거리 시위로 격화하면서 30~40대의 참여가 눈에 띄게 늘었다. ‘386이 나서서 가족을 지킵시다’ 같은 구호가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5월27일 밤 거리 시위에서 한 386은 “생애 처음으로 가족의 지지를 받으면서 시위에 참여했다”라며 놀라워했다. 시위에 참가했다 늦게 귀가했는데도 아내와 아이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주말에는 온 가족이 집회에 나갈 것이다”라며 상기된 표정이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평범한’ 386의 참여가 늘었다는 점이다. 1991년 경북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안영민씨(41)는 “5월29일 집회 현장에서 연락이 뜸했던 대학 동기를 여럿 만났는데, 열혈 운동권 출신이거나 사회단체 소속이 아닌 친구가 많이 나온 점이 특히 눈에 띄었다”라고 말했다. 386이 뒤늦게 촛불집회에 뛰어든 까닭은 역시 10대에 대한 ‘부채의식’ 탓이 크다. 젊은 날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으나 나이가 들면서 사회문제에 등을 돌렸던 이들이 10대의 사회 참여를 보며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이다. 거리시위에서 만난 회사원 박준형씨(42)의 이야기는 상징적이다. 

“대학 1학년 때 6월 항쟁이 터졌어요. 그때 한 고교생이 밤마다 우리 학교로 따라와서는 형님·누나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거예요. 그 친구에게 ‘우리가 책임지고 좋은 세상 만들 테니 넌 공부나 열심히 해라’며 말렸어요. 그 뒤로 잊고 지냈는데 촛불집회에 나온 중·고생을 보니까 그 기억이 떠오르는 거야. 뭔가 울컥하면서 죄책감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왔습니다.”

그래서일까. 현 상황을 ‘제2의 6월 항쟁’ 가능성과 연결짓는 이들도 있다. 아주 무리한 이야기는 아니다. 공교롭게도 6·10 항쟁, 여중생 장갑차 사망사건 등 굵직한 사회적 사건이 모두 6월에 일어났다. 10대가 불을 지피고 20대가 키운 분노의 촛불이 386에 의해 어디까지 타오를 수 있을까. 다시 6월이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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