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전투경찰은 유모차를 미는 어머니들을 차마 막아서지 못했다.

5월29일 오후 5시. 서울시청 일대에서는 기묘한 ‘유모차 행진’이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 발표에 항의하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서울시청 광장 주위를 행진했다. 사전에 약속된 모임은 아니었다. 17개월 된 아이를 둔 김은영씨(34)는 “하도 답답해서 무작정 나왔는데, 비슷한 생각을 한 엄마들이 있더라”고 말했다. 유모차 대여섯 대가 쭈뼛쭈뼛 행진을 시작하자 순식간에 50여 명이 합류해 계획에도 없던 시위대가 생겨났다.

어린아이들이 걱정될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하지만 세 살 된 아이의 엄마인 손지연씨(31)는 “날씨보다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더 무섭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손씨는 “집안일 할 것도 많은데 제쳐두고 나왔다. 제발 속 편히 애 좀 키우자”라고 외쳐 환호를 받았다.

지난 한 주 동안의 가두시위에서는 이같은 ‘자생적 조직’의 활약이 돋보였다. 다음 아고라는 ‘조직 탄생’의 산실이었다. 5월24, 25일의 경찰 강제 연행을 보고 분노한 의료인 20여 명은 아고라를 통해 모여 ‘의료봉사단’을 조직했다. 이들은 매일 시위대를 끝까지 따라다니며 강제 진압 과정에서 다친 시민을 치료했다.

5월29일에는 예비군복 시위대가 등장했다. 역시 다음 아고라에서 뜻이 맞은 예비역 40여 명은 예비군복을 꺼내 입고 3조로 나눠 시위에 참가했다. 전경과 시위대 사이에 끼어들어가 충돌을 막거나 가두시위대의 안전을 위해 차량을 통제하는 따위 활동으로 호평을 받았다.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뿌리에서 태어난 ‘조직’도 있었다. 공기업에 다니는 김 아무개씨 등 네 명은 재테크 동아리에서 만난 인연이다. 이들은 5월28일 청계광장에서 시민에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전화번호와 연행되었을 때의 대응 요령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복경찰’ 구분법도 큰 소리로 외쳤다. “양복에 나이키 신발 보면 조심하세요!” 누구의 도움도 부탁도 받지 않고 온라인에서 정보를 모아 자발적으로 홍보에 나선 이들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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