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촛불이 거리로 나섰다. 여느 시위와 달리 주변 시민의 반응도 뜨겁다. 4만명이 운집한 5월29일 가두시위 장면.

‘거리 시위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현기증 나는 속도다. 정부와 공안당국은 연일 헛다리만 짚는다. 거리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 활동가’마저도 경쾌하게 내달리는 시민을 따라잡지 못해 헉헉댄다. 촛불이 처음 거리로 나선 5월24일 이후 지난 일주일은 그간 익숙했던 거리의 질서가 송두리째 흔들린 시간이었다.

거리는 ‘온라인 문화’를 빠르게 흡수했다. 시민은 조직의 지도를 받는 대신 곳곳에서 스스로 조직했다 흩어졌다 자유자재로 변신했고, 리더의 결정에 의지하는 대신 집단으로 결정했다. 싸움과 놀이는 뒤엉켜서 구분이 불가능했고, 비장하게 맞서는 대신 발랄하게 비틀었다. 하나같이 온라인 세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시위 이틀째인 5월25일 밤, 서울 서대문 일대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500여 명의 시위대는 갈림길마다 멈춰 서서 다음 경로를 즉석 토론에 부쳤다. “신촌으로 가자” “아니다, 광화문이다” 결과는 종잡을 수 없었다. 독립문까지 올라간 시위대가 별다른 이유 없이 서대문 네거리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지도부의 지침 대신, ‘목소리’와 ‘쪽수’가 시위대의 경로를 좌우했다.

시위대 ‘현란한 스텝’에 농락당한 전경

당연히 광화문으로 가겠거니 짐작하고 앞서가던 정보과 형사들은 연이은 방향 전환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아니 대체 신촌에 뭐가 있다는 거야?” 미국 대사관이나 청와대 같은 ‘거점’으로 몰려드는 시위대에만 익숙했던 한 형사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선두에서 열심히 구호를 외치던 한 참가자에게 왜 신촌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어, 우리 지금 광화문 가고 있는 거 아닌가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시위대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의 ‘현란한 스텝’이었다는 얘기다. 이날 전경부대는 시위대의 경로를 따라잡지 못해 거의 ‘농락’을 당하다가 밤 1시가 되어서야 겨우 시위대의 꼬리를 잡았다.

이런 시위대를 두고 어청수 경찰청장은 능숙한 게릴라 시위로 미뤄보아 배후가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도 당연했다. “몇 백명이라도 잡아넣겠다”라는 강경한 발언도 위협은커녕 ‘코미디’ 취급을 당했다. 시위 참가자 허승우씨(28)는 “그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라고 두세요”라며 웃어넘겼다. 긴장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이 시위대는 지도부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들이 아니란 건 하루만 와보면 압니다. 오히려 지도부 없이 움직이니까 옛날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이 종잡을 수 없는 거죠.”

그 말대로다. 지도부 노릇에 익숙한 ‘프로 활동가’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대책회의)도 지난 한 주는 흐름을 쫓아가기 바빴다. 촛불문화제를 거리 시위로 확장한 것부터가 활동가가 아닌 온라인에서 모여든 시민이었다.

화염병 대신 휴대전화 든 ‘처음 보는 시위대’

직장인 홍영득씨는 5월24일 토요일에 거리로 나섰다 잡혀 들어간 ‘연행 1기’다. 온라인에서는 이전부터 대책회의의 소극적인 태도에 불만이 쌓여갔다고 홍씨는 전했다. “거리 진출을 주장하는 이들이 온라인에서 스스로 조직을 꾸렸다. 가두시위라는 돌파구는 시민이 온라인에서 직접 만들어낸 것이다.” 첫날 수백명에 불과하던 가두시위대는 월요일부터는 수천명으로 불어났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가 발표된 목요일에는 4만명(대책회의 추산)까지 폭증했다. 대책회의 멤버이기도 한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이미 우리가 어떻게 끌고 갈 수 있는 판이 아니다. 시민의 역동적인 에너지가 엄청나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시사IN 안희태가두시위대가 전경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구호는 ‘비폭력’이다.

 

거리 시위의 전반부는 대책회의가 주도하지만, 밤 11시를 전후로 조직 없는 시민이 주도권을 쥐는 양상은 지난주 내내 반복됐다. 5월27일 화요일 밤 명동역 앞, 대책회의는 “내일 다시 만납시다”라며 해산을 선언했다. “당신들이 뭔데 해산하라 마라냐”라는 항의가 즉각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다음 날인 5월28일에도 풍경은 비슷했다. 장관 고시가 발표된 29일에는 집회 경로를 놓고 일부 시민과 대책회의가 격렬한 의견 대립을 보여, 대책회의는 밤 11시 즈음부터 깃발을 내리고 방송용 차량을 선두에서 빼야 했다.

처음에는 주도권을 쥐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시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거리의 문법을 만들어갔다. 대학생 황종원씨(21)는 5월28일 밤 마이크 대신 페트병을 잘라 만든 즉석 확성기를 들고 시위대 100여 명 앞에서 사회자로 ‘데뷔’했다. 집회의 사회는커녕 학생운동 경력도 없던 그다. “어떻게 용기를 냈는지 모르겠다. 너무 어설프지 않았나”라며 고개를 젓던 그는, 다음 날인 5월29일에는 시위대 선두에서 4만명의 경로를 정하는 ‘지도부 노릇’까지 해냈다. 이날 밤에는 “아고라 모여라!”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다음 아고라에서 의견을 나누던 이들이 오프라인 집회에서도 한데 뭉쳐 목소리를 내겠다는 거였다.

시위대의 ‘배후’ 역시 온라인을 헤집고 다니는 이들이 담당한다. 블로거 ‘쿄코’는 가두시위가 있을 때면 보통 네댓 개의 창을 모니터에 띄워둔다. 〈오마이뉴스〉·진보신당·웹캠방송 등의 현장 생중계로 상황을 확인하고, 자기가 활동하는 카페에서 정보도 얻는다. “요즘은 화장품이나 구두 동호회에서도 실시간 현장 정보를 올린다”라고 쿄코는 설명했다. 그렇게 모은 새 정보를 다시 현장의 지인에게 ‘공지 문자’로 뿌려준다. 기자 역시 지난주 거리 시위를 취재하며 만난 취재원들로부터 100건이 넘는 ‘공지 문자’를 받았다. “전경이 어디에 깔렸다”라느니 “어디서 몇 명이 연행됐다”라는 식의 정보가 쉴 새 없이 오갔다. 시위대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정보에 밝은 이유다. 화염병 대신 휴대전화를 손에 쥔 이 ‘처음 보는 시위대’를, 정부도 활동가도 따라잡기 버거워 전전긍긍이다.

지금 시민에게 거리는 발랄하고 경쾌한 공간이다. 집회와 놀이를 구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 “2002년 월드컵 때 거리 응원을 보는 것 같다”라고 시위대와 경찰은 입을 모았다. 한일환·황지연씨 부부는 함께 외식을 즐기고 나서 시위에 참여했다. 손에는 슈크림빵을 담은 작은 손가방이 들려 있는 폼이 영락없는 데이트다. 직장인 안윤주씨(38)는 “시민들이 거리에 나오는 걸 재미있어 한다. 아마 운동권이 가장 놀라고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불법 연행 규탄’ 대신 ‘닭장차 투어’

5월27일 밤, 경찰은 일명 ‘닭장차 투어’라 불리는 희한한 저항에 맞닥뜨리고 아연실색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경에 포위된 113명은 경찰에 저항하는 대신 제 발로 ‘닭장차’(전경 수송차량)에 올랐다. 무리한 연행과 훈방을 반복하던 경찰을 조롱하는 누리꾼의 농담 ‘닭장차 투어’가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386 세대’의 막내 격인 직장인 정영일씨(39)는 “시민이 집회를 거듭하면서 배운다. ‘지금 경찰이 허풍을 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까 부담이 없는 거다”라고 짚었다. ‘불법 연행 규탄한다’고 엄숙한 성명서를 내는 대신, ‘닭장차 투어’를 하자고 비튼다. 무장해제된 경찰은 다음 날 밤 똑같은 상황에서 가두시위대 100여 명에게 “연행은 없다”라고 직접 약속까지 하며 사실상 항복선언을 했다.

가두시위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던 5월28일의 청계광장. 경찰은 작심한 듯 청계광장 주위를 ‘닭장차’로 완전히 둘러쳤다. 가두시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였다. 대책회의는 당황했고, 활동가들은 ‘하던 대로’ 전경과 몸싸움을 벌였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많은 시민은 청계천 산책로를 따라 유유히 광장을 빠져나왔다. 정색하고 부딪치는 대신, 슬쩍 비틀어버린다. “경찰이 멍청해서 청계천 길을 막는 걸 까먹은 거다.” “아니다. 차마 ‘각하’의 치적인 청계천에 군홧발을 들이댈 수 없는 어 청장의 충정이다.” 광장을 빠져나와 가두시위에 나선 두 시민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정부와 경찰을 비웃었다.

닭장차에 막히자 “불법주차 차 빼라”

톡톡 튀는 집회 구호도 여기저기서 등장했다. 전경의 ‘닭장차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힌 29일 밤 시위대에서는 “불법주차 차 빼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이어지는 구호는 “유가급등 시동 꺼라”였다. 게시판 댓글을 보는 듯한 순발력이다. “시위대 앞쪽에 있으면 주동 세력, 가운데 있으면 핵심 세력, 뒤에 있으면 배후 세력”이라는 ‘운동권 유머’도 새롭게 인기를 끌었다. 틈만 나면 ‘배후 세력’을 찾는 정부와 보수 언론에 대한 풍자다. 가두시위대 특유의 비장함보다, 이런 발랄한 ‘비틀기’가 지난주 거리를 지배했다.

직장인 전명산씨(38)는 “예전과 다르다. 의사결정 시스템이 눈에 안 보인다. 인터넷에서 먼저 결정한 뒤에 거리로 나온다”라며 달라진 거리의 분위기를 요약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민경배 교수(NGO학과)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집회가 서로를 자극한다고 짚었다. “집회를 다녀온 이들은 개인 블로그나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린다. 이들에게 집회는 온라인상의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번개’와도 비슷하다. 그걸 본 누리꾼이 흥미를 갖고 집회에 참가하고, 또 그들이 온라인 특유의 문화를 거리 집회에 심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집회가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지난 한 주 동안 일어난 새로운 양상의 가두시위에 불법이니 폭력시위니 하는 낡은 대응밖에 하지 못했던 것은, 온라인을 ‘통제해야 할 적’으로만 이해해왔던 그간의 낡은 인식 탓인지도 모른다.

 

기자명 천관율·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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