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수 청장은 지난 1월29일 은평경찰서 주민 자치 모임인 행정발전위원회 행사에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과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김성근 은평경찰서장, 이기태 일산경찰서장(전 은평경찰서장), 노재동 은평구청장과 행정발전위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행정발전위원은 “청장이 은평서장 출신이어서 한번 모시려고 했는데 대선 때문에 못 오고 신년하례 겸해서 모였다”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행정발전위원회가 만들어진 시점에 어청수 청장이 은평서장이어서 각별히 생각했다. 은평에 자주 왔는데 이날도 소주 한잔 하고 편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재오 의원이 당시 최고 잘나가는 정치인이어서 자연스럽게 총선 이야기가 나왔다.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문제가 되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근 은평경찰서장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덕담 수준이었다. 식당이 의자가 있는 큰 홀이어서 누구를 밀어주자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지역 행정발전위원회에 현직 경찰청장이 참석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현역 의원·구청장과 동석했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할 뿐 아니라 선거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 관계자는 “공직자 특히 경찰이 선거를 앞두고 의심을 살 만한 모임에 참석했다면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어청수 청장은 〈시사IN〉 기자를 만나 “전임 서장으로서 인사하러 간 것이다. 이재오 의원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참석했는데 이 의원과 구청장이 갑자기 와서 20분 정도 있다가 먼저 갔다.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은 “이재오 의원과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니고 1월29일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한가하게 은평을 드나들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은평구에는 어 청장이 자주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람이 많다. 특히 지역 상인 여러 명이 “경찰이 선거에 너무 나섰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한 행정발전위원회 위원은 “어 청장이 은평서장을 했고 이재오 의원이나 지역 인사들하고 친해서 이 동네에 자주 왔다”라고 말했다. 지역 사정에 밝은 박 아무개씨는 “지난 연말부터 선거 때마다 청장이 이 지역에 다녀갔다. 자기 승진 문제도 있고…”라고 말했다. 정 아무개씨는 “총선 직전에 전라도 출신 은평서 직원 6명이 이유 없이 다른 곳으로 전출돼 경찰이 선거에 대비한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경찰의 오버는 호남 사람이 선거 때 이재오 후보에게 등을 돌리는 결정적 사유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성근 은평서장은 “전라도 출신 경찰의 발령은 개인 비리 차원이었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 은평구 자주 드나들었다
은평 지역 경찰도 어 청장이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라고 했다. 은평경찰서 교통계 한 경찰은 “대선 전에도 오고 총선 전에도 온 것으로 기억한다. 정기 인사가 있었던 3월 이후에도 청장이 관내에 방문해서 비상이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은평경찰서 소속 한 경찰은 “어 청장이 지난 연말 이후 관내에 서너 차례 다녀갔다. 3월 이후에도 한 번 왔다갔는데 구산사거리삼미식당에 가서 오리를 먹었다”라고 말했다.
5월21일 삼미식당 한 종업원은 “청장님이 여러 번 오셨는데 지난 연말에 다녀간 게 마지막이다”라고 말했다. 삼미식당의 또 다른 종업원은 “청장님이 지난 연말 다녀갔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청장이 올봄에 다녀간 적이 있느냐고 묻자 이 종업원은 “절대로 없다”라고 말했다. 5월22일 오후 삼미식장 사장 김정자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청장님이 5월 초에 다녀갔지만 지난해에는 온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어청수 청장이 5월4일 은평경찰서에서 형사계 쇄신 방안을 이야기하고 삼미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식당 종업원들은 보름 전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김정자씨는 행정발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어 청장에게 대선 전 은평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기자가 지적했다. 그제서야 어청수 청장은 “기동단 부지를 답사하려고 은평 물푸레골에 서울청 간부들과 함께 들렀다가 은평서 직원들과 함께 오리탕과 오리로스를 먹은 적이 있다. 공식 업무차 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은 잠시 후 12월3일이라고 날짜를 일러주었다. 어 청장 일행은 월요일 오전에 기동단 부지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는 해명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해 7월26일, 12월3일, 올해 1월29일, 5월4일 말고는 은평구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 원로 박 아무개씨는 “그 날짜들 말고도 어 청장이 은평을 다녀갔다. 정확하게 날짜는 기억할 수 없지만 지난 추석 때도 왔고 올봄에도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청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경찰청장 임명은 노무현 정부에서 추천하고 이명박 당선인 측이 이를 받아들인 모양새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어 청장과 이명박 대통령·이재오 의원 간의 각별한 인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 청장은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이던 1992년, 민자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 청장은 이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한 1996년에는 종로서 정보과장이었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으로서 인연을 이어갔다. 이재오 의원과는 2000년 어 청장이 은평경찰서장 때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한다. 어 청장이 경찰총수로 낙점된 배후에 이 의원이 있다는 말이 나돈 것도 그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