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2008년 2월11일 제14대 경찰청장에 오른 어청수 청장.
어청수 경찰청장이 총선을 앞두고 이재오 의원의 지역구인 은평 지역 모임에 참석한 일이 구설에 올랐다.

어청수 청장은 지난 1월29일 은평경찰서 주민 자치 모임인 행정발전위원회 행사에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과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김성근 은평경찰서장, 이기태 일산경찰서장(전 은평경찰서장), 노재동 은평구청장과 행정발전위원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한 행정발전위원은 “청장이 은평서장 출신이어서 한번 모시려고 했는데 대선 때문에 못 오고 신년하례 겸해서 모였다”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행정발전위원회가 만들어진 시점에 어청수 청장이 은평서장이어서 각별히 생각했다. 은평에 자주 왔는데 이날도 소주 한잔 하고 편한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재오 의원이 당시 최고 잘나가는 정치인이어서 자연스럽게 총선 이야기가 나왔다.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문제가 되느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근 은평경찰서장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덕담 수준이었다. 식당이 의자가 있는 큰 홀이어서 누구를 밀어주자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지역 행정발전위원회에 현직 경찰청장이 참석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더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현역 의원·구청장과 동석했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절할 뿐 아니라 선거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 관계자는 “공직자 특히 경찰이 선거를 앞두고 의심을 살 만한 모임에 참석했다면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어청수 청장은 〈시사IN〉 기자를 만나 “전임 서장으로서 인사하러 간 것이다. 이재오 의원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참석했는데 이 의원과 구청장이 갑자기 와서 20분 정도 있다가 먼저 갔다. 문제가 될 일은 전혀 없었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은 “이재오 의원과 가깝게 지낸 것도 아니고 1월29일 이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한가하게 은평을 드나들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은평구에는 어 청장이 자주 지역을 방문했다는 사람이 많다. 특히 지역 상인 여러 명이 “경찰이 선거에 너무 나섰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행정발전위원회는 시민의 참여와 감시를 통해 경찰행정의 발전을 꾀한다는 민간 단체. 지역 유지 30여 명이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5월22일 은평구 행정발전위원회 위원 중 일부가 부부 동반으로 청와대에 다녀왔다. 위는 은평경찰서 행정발전위원회 회의 모습.

한 행정발전위원회 위원은 “어 청장이 은평서장을 했고 이재오 의원이나 지역 인사들하고 친해서 이 동네에 자주 왔다”라고 말했다. 지역 사정에 밝은 박 아무개씨는 “지난 연말부터 선거 때마다 청장이 이 지역에 다녀갔다. 자기 승진 문제도 있고…”라고 말했다. 정 아무개씨는 “총선 직전에 전라도 출신 은평서 직원 6명이 이유 없이 다른 곳으로 전출돼 경찰이 선거에 대비한다는 뒷말이 무성했다. 경찰의 오버는 호남 사람이 선거 때 이재오 후보에게 등을 돌리는 결정적 사유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성근 은평서장은 “전라도 출신 경찰의 발령은 개인 비리 차원이었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 은평구 자주 드나들었다

은평 지역 경찰도 어 청장이 이 지역을 자주 방문하는 편이라고 했다. 은평경찰서 교통계 한 경찰은 “대선 전에도 오고 총선 전에도 온 것으로 기억한다. 정기 인사가 있었던 3월 이후에도 청장이 관내에 방문해서 비상이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은평경찰서 소속 한 경찰은 “어 청장이 지난 연말 이후 관내에 서너 차례 다녀갔다. 3월 이후에도 한 번 왔다갔는데 구산사거리삼미식당에 가서 오리를 먹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한나라당 이재오 의원.
5월21일 삼미식당 한 종업원은 “청장님이 여러 번 오셨는데 지난 연말에 다녀간 게 마지막이다”라고 말했다. 삼미식당의 또 다른 종업원은 “청장님이 지난 연말 다녀갔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청장이 올봄에 다녀간 적이 있느냐고 묻자 이 종업원은 “절대로 없다”라고 말했다. 5월22일 오후 삼미식장 사장 김정자씨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청장님이 5월 초에 다녀갔지만 지난해에는 온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어청수 청장이 5월4일 은평경찰서에서 형사계 쇄신 방안을 이야기하고 삼미식당을 찾았다고 한다. 식당 종업원들은 보름 전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김정자씨는 행정발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어 청장에게 대선 전 은평구를 방문한 적이 있다고 기자가 지적했다. 그제서야 어청수 청장은 “기동단 부지를 답사하려고 은평 물푸레골에 서울청 간부들과 함께 들렀다가 은평서 직원들과 함께 오리탕과 오리로스를 먹은 적이 있다. 공식 업무차 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어 청장은 잠시 후 12월3일이라고 날짜를 일러주었다. 어 청장 일행은 월요일 오전에 기동단 부지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었다는 해명이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지난해 7월26일, 12월3일, 올해 1월29일, 5월4일 말고는 은평구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역 원로 박 아무개씨는 “그 날짜들 말고도 어 청장이 은평을 다녀갔다. 정확하게 날짜는 기억할 수 없지만 지난 추석 때도 왔고 올봄에도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어청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의 경찰청장 임명은 노무현 정부에서 추천하고 이명박 당선인 측이 이를 받아들인 모양새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어 청장과 이명박 대통령·이재오 의원 간의 각별한 인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 청장은 강남경찰서 정보과장이던 1992년, 민자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 청장은 이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한 1996년에는 종로서 정보과장이었고,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2003년 서울경찰청 정보관리부장으로서 인연을 이어갔다. 이재오 의원과는 2000년 어 청장이 은평경찰서장 때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한다. 어 청장이 경찰총수로 낙점된 배후에 이 의원이 있다는 말이 나돈 것도 그래서였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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