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심야 시간대 도로 위에서 광란의 곡예 질주를 벌이는 10대 폭주족.
해피(16세·가명)가 색종이를 몇 번 접자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마술쇼에 태국에 있는 버마 난민촌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피는 다시 입에서 불을 뿜는 화려한 마술을 선보였고 관객은 또다시 환호성을 질렀다. 쇼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해피의 얼굴은 기쁨으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해피는 마술을 하는 청소년이다. 그저 취미 삼아 마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직업으로 마술을 한다. 마술을 배우기 전까지는 ‘형’들과 어울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놀던’ 아이였다. 그는 학교를 다니는 행위에 아무런 흥미도 가지지 못했다. 학교에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의미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미래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잠시 유예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도  그는 잘 알았다.

반면 형들과 함께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를 타는 생활에는 자유가 있었다. 형들은 해피를 귀여워했고 특별히 괴롭히지도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달리고 싶으면 달렸다. 밤새도록 술을 마셔도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자기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저 순간순간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해피는 스스로넷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에 들렀다가 그를 ‘휘어잡는’ 선생을 만나게 된다. 그 선생을 통해서 마술을 처음 접했는데,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짜릿한 전율을 느낀 해피는 ‘이게 내가 가야 할 길이다’라고 느꼈다. 해피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자기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몸과 마음의 상태부터 바꿔나가야 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해피는 교육을 통해 배울 거 다 배웠다”

마술사의 세계는 위계질서가 대단히 엄격했다. 마냥 자유롭기만 했던 해피로서는 그런 위계를 받아들이는 일이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물론 답답했어요. 그리고 솔직히 그때가 그립기도 해요.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되었으니까요.” 해피는 하고 싶은 것, 삶의 목표를 얻은 대신 ‘자유’를 잃었다고 말한다.

난민촌에서 마술쇼를 끝내고 돌아오며 해피는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왜 내가 어렵게 배운 마술을 남들에게 공짜로 보여줘야 하는지 짜증도 났지만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에 탄성을 지르는 이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진지해졌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부모와 함께 마술쇼를 구경하러 온 아이들에게 마술을 가르쳐줘봤자 시큰둥해하기만 했다. 하지만 버마 난민촌 아이들의 표정은 달랐다. 그 눈빛을 보면서 해피는 왜 자기가 마술을 시작했는지, 그 처음의 마음과 열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태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해피에게 “너는 교육을 통해 배워야 하는 걸 이미 다 배웠다”라고 말해줬다. 교육이 지식의 단순 전달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고, 그를 위해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면 그는 이미 모든 걸 배웠다. 공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이름도 없이 ‘딱 중간’이라 불리는 아이들. 교사와 부모는 물론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자명 엄기호 (‘팍스로마나’ 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동아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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