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돈 모으는 재주가 비상하고, 주변에 사람도 모이는데 말을 잘 못해서 대통령 꿈을 접은 정치인이 꽤 많다. 고인이 된 허주(김윤환씨) 같은 이는 정국을 읽어내는 감은 비상한데도 대중 연설을 너무 못해서 스스로 일찌감치 ‘킹 메이커’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경우이다.

3김씨는 특이하게도 말솜씨 역순으로 출세했다. 3김 중에서 말을 제일 잘하는 사람은 JP이다. 원고 없이 연단에 올라가서도 청중을 쥐락펴락한다. 한글 어휘력이나 유머도 YS나 DJ보다 윗길이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3김 중에서는 말 못하기가 발군이었던 YS가 대통령을 제일 먼저 했다.

말 못하는 정치인 YS를 엄호한 것은 기자들이었다. ‘YS 장학생’이라고 불렸던 일군의 기자들은 그가 아무리 말 안 되는 소리를 해도 대부분 말 되게 고쳐줬다. 그들은 YS가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언론사를 그만두고 일제히 YS 캠프에 집결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캠프를 보면서 줄곧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어째서 저곳에는 언론사 출신이 버글거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각양각색의 신문사와 방송사 출신들이 줄잡아 40명 이상 모였다. 마흔 살만 넘어가면 벌써 명퇴 압박을 받아 눈치 보기 바쁜 언론계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뭔가 미진하다. 오너(이명박 후보)가 원하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는가. 어째서 눈에 보이는 성과만 좇던 대기업 CEO 출신이 ‘구름 잡는’ 기자 출신을 좋아하는 것일까.
의문은 MBC의 이명박 후보 초청 〈100분 토론〉을 보고 나서야 풀렸다. 이명박 후보 말솜씨는 본능적으로라도 언론인 출신을 주변에 그러모으고 싶게 생겼을 정도로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의 말은 번번이 ‘재해석’이 필요했다.

인문적 소양이 있어 어휘에 민감한 정치인일수록 언론과 긴장을 빚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걸러지지 않은 기사를 보면 참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DJ와 노 대통령이 언론과 격렬하게 부딪친 이유이기도 하다. 여권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치고는 JP도 기자들과 그리 가까운 편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언론(인)과 친해질 수 있는 ‘통 큰’ 정치인이 오랜만에 나온 셈이다.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기자실부터 원상 복구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정략적인 계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얘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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