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서울 청계광장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현장.

광우병 촛불집회로 혼쭐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반성하는 기미가 역력하다. ‘어륀지’ ‘고소영’ ‘강부자’로 이어진 헛발질 끝에 드디어 ‘미친 소’가 자신의 지지율을 20%대로 메다꽂았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하겠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탄핵 요구자가 늘어간다. 하지만 문제는 대통령의 반성 자체가 아니다. 반성의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광우병 논란이 예상보다 커지기 시작할 때쯤 이 대통령은 ‘삼계탕 기자간담회’(5월8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을 때 정부는 사실 한우 농가 대책을 놓고 논란이 빚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광우병 얘기로 가더라….”

이 발언의 행간에는 대통령의 반성을 이끄는 핵심 논리가 숨어 있다. 한마디로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못 읽었다는 것이다. 협상단에 지침을 줄 때 ‘질 좋은 미국 쇠고기를 대량으로 싸게 공급하고 한우 농가에 예산 지원을 대폭 늘리면 국민의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라고 계산했는데, 그 예상이 여지없이 빗나간 것이다.

사업가도 반성을 한다. 특히 시장 수요를 잘못 읽었거나 소비자의 선호를 엉뚱하게 예측해 투자 금액을 몽땅 날린 뒤에는, 복기에 복기를 거듭하면서 치열하게 반성하기 마련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표정에 나타나는 것은 그 사업가의 반성이다. ‘장사를 잘 못했다’는 자책이 그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이 반성을 통해 대통령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지난 수주간의 정황을 종합해보건대, 그는 비로소 “정부라는 기업은 무엇보다 안전을 팔아야 한다”라는 평범한 진리에 도달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한다”라는 그 입에 발린 소리가 정부 서비스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 것 같다.

정부가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면 국민은 언제든 돌아선다. 그렇다면 광우병 촛불집회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업가의 눈이 아니라 통치자의 눈으로 국민을 바라보게 만드는 ‘스승’인지도 모른다. 사실 밤마다 청계광장에 모여드는 인파는 결국 정부가 자신의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다는 데 단단히 화가 난 것이 아니겠는가?

사업가에서 통치가로 변신하는 대통령

광우병 문제에 관한 한, 대통령은 이제부터 철저하게 몸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리라고 예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모두가 자기 잘못이라고 대국민 사과를 거듭하는 수모도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인 순간에도 이 대통령은 ‘안전’ ‘안전’을 되뇌면서 자기암시를 걸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6월 들어 새로운 국회가 시작할 때쯤, 이명박 정부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슬그머니 국면 전환을 시도할 것이다. 그 주제는 새로울 것도 없는 보수파의 단골 메뉴, 곧 ‘로 앤드 오더’(Law & Order:법과 질서)가 될 것이다. 확보한 보수파 국회의원 200여 명을 단결시키고, 심지어 청계광장에 모인 수많은 촛불에게도 들이밀 수 있는 정부의 명분으로 “법과 질서를 준수하라”는 문장보다 더 확실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안전’을 붙드는 순간 국군과 국정원, 감사원과 민정수석실, 검찰과 경찰을 통치수단으로 다시 보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것 같다. 통치자로 변모하는 수업을 혹독하게 받는 대통령은 그 수업료를 청계광장의 광우병 촛불집회와 그것을 성원하는 야당에 내야 하지 않을까?

기자명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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