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 축제인 브라질 카니발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해 카니발이 끝나면 1년 동안 다음 해의 카니발을 준비한다. 삼바 학교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준비가 이루어진다.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카니발을 취재한 적이 있었는데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에 기가 질렸다. 한두 해에 이루어진 울력이 아니었다. ‘카니발을 이 정도로 한다면 월드컵도 잘하겠구나’라는 것이 당시의 느낌이었다.

바로 그 브라질에서 곧 월드컵이 열린다. 4년 만에 벌어지는 지구촌 최대의 이벤트를 앞두고 브라질발 관련 뉴스가 외신란에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좋은 얘기가 별로 없다. 치안 불안에 바가지요금은 기본이고 일부 경기장이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다는 기사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카니발에서 보았던 브라질의 저력은 어디로 간 것일까. 브라질 월드컵이 결정된 것은 7년 전인데 말이다.

그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소식이 있다. 2014 월드컵에 출전할 브라질 대표팀이 5월27일(이하 한국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주 테레조폴리스(Teresopolis) 시에 있는 그란자코마리(Granja Comary) 베이스캠프에 입성했다는 기사다. 이 캠프는 축구장 20배 크기인 14만9000㎡ 넓이에 조성되었는데, 브라질 축구협회는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1500만 헤알(약 69억원)을 들여 보수공사를 마쳤다.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은 이곳 그란자코마리에서 필요한 준비를 하다 17일 뒤인 6월13일 상파울루 아레나 코린치안스 경기장에서 크로아티아와 개막전 경기에 나선다. 64년 만에 개최국으로서 우승에 재도전하는 것이다. 팬들은 베이스캠프 입구에서부터 대표팀 선수들을 환영하고 환호했다. 이번에 우승하면 통산 여섯 번째다.

그런데 이 기사는 뜻밖의 광경을 함께 전했다. 환호하는 군중 옆으로 일군의 시위대가 몰려와 월드컵 반대 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는 월드컵이 아니라 보건과 교육 등 복지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눈을 의심할 일이다. 축구에 살고 축구에 죽는다는 브라질에서 대표팀이 베이스캠프에 입소하는 날까지 몰려와서 월드컵 반대 시위를 하다니.

ⓒAP Photo월드컵 반대 시위 중인 브라질 시민들. 브라질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해골 모형은 월드컵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들을 상징한다.
안티 월드컵 시위는 지난해 이맘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라질에서는 2013년 6월 초부터 대중교통 요금 인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의 시위는 상파울루 주가 버스 요금을 3헤알(약 1570원)에서 3.2헤알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0.2헤알이면 우리 돈으로 105원 남짓한 액수이지만 브라질 서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무엇보다 연초부터 경제 상황이 안 좋아져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던 터였다.

내가 특파원으로 머물던 2013년 상반기부터 브라질의 물가가 심상치 않았다. 특히 식료품 가격이 문제였는데 그중에서도 토마토 값이 급등했다. 토마토는 브라질 음식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다. 브라질 사람들이 즐겨 먹는 파스타를 비롯해 각종 요리 등에는 토마토가 필수적이다. 그런 토마토의 가격이 1년 사이에 122%나 올랐다. 그로 인해 밑바닥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이 무렵 브라질 언론들은 “지우마가 토마토를 밟았다”라는 기사를 내고 있었다(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브라질 언론에서는 ‘지우마(Dilma)’로 통칭한다).

그런 상황에서 버스요금까지 오르니 서민들이 격분했다. 적자 경영의 책임을 전가한 셈인데 국민들은 ‘더 이상 봉 취급을 당하지 않겠다’며 분연히 나섰다. 당시 BBC 등 외신은 상파울루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가 리우데자네이루 등 11개 도시로 확산되면서 20만명이 넘는 시위대가 거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버스요금 인상 때문에 시작한 시위는 그동안 누적된 정치권의 부패와 치안 불안, 불필요한 공공 지출 등에 대한 불만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브라질 정부가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 축구대회와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개최하는 데 무려 100억 달러(약 10조2400억원) 이상 예산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의 불만이 절정에 이르렀다. 아마도 정확한 비용은 대회가 끝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어쨌든 국민들은 경기장 등 월드컵 인프라 건설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 붓는 것에 반발한 것이다.

시위대는 “축구가 아니라 보건과 교육 등 필요한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나중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부패 척결, 공공서비스 개선 등을 요구하는 저항으로 증폭되었다. 정치가 생물이면 여론도 생물이다. 한번 폭발하면 종잡을 수 없다. 실제로 브라질 역사는 주요 국면에서 국민의 저항이 정세를 바꾼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

6만7000여 관중이 일제히 야유를 보낸 이유

지난해 월드컵 1년을 앞두고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회 당시 시위대들은 이때를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전국 곳곳에서 수십만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개막식에서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지우마 브라질 대통령에게 6만7000여 관중이 일제히 야유를 보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흥행과 수익만 중시하는 FIFA와 전시성 이벤트에 치우치는 브라질 정부를 싸잡아 비판했던 것이다.

시위는 한동안 소강 국면에 들었다가 올 들어 월드컵 개최가 임박하면서 재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2014년 5월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 월드컵 반대 시위가 동시에 일어났다. 브라질 언론은 최소한 50개 도시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상파울루에서는 빈민 단체 회원들이 월드컵 개막전이 열릴 예정인 아레나 코린치안스 경기장 부근에서 타이어를 불태우며 시위를 벌였다. 대회 기간 중에 안티 월드컵은 한층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서는 월드컵이 열리면 낙천적인 브라질 사람들이 자국 팀의 승부에 일희일비하며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불만을 잊을 것처럼 보는 견해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간단치 않을 것 같다. “넝 케레모스 아 코파(Nao queremos a Copa: 우리는 월드컵을 원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번 월드컵 기간 중에 경기장 부근에서 숱하게 들어야 할 말일 것이다.

기자명 정길화 (MBC 시사제작국 PD·전 MBC 중남미지사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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