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고 가장 마지막에 나온다).’ 충북에서 근무하는 19년차 소방관 김동수씨(가명)가 현장에 나갈 때마다 가슴에 새기는 말이다. 김씨는 자기뿐만이 아니라 현직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라고 덧붙였다. 물론 김씨도 화재 현장에 도착하면 두려움을 느낀다. 그럼에도 같이 화재와 싸우는 동료,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같은 안전장치를 믿고 맡은 일을 수행한다. 그는 “생명과 안전을 구한다는 자부심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유심히 봤다. 구조·구급 활동을 할 때 신는 신발이 엄청 빨리 해지는데 2년 넘도록 지급이 안 된다며, 현직 소방관이 열악한 근무 환경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그 아래 연이어 댓글이 달렸다. “화재 진압 장갑 6개월 쓰면 너덜너덜해지는데 현재 3년째 지급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마존에서 영국 제품 화재구조용으로 1년에 2개씩 사비로 구입한다” “처음에 방수장갑이 지급되지 않아서 목장갑을 받고 화재를 진압했다. 첫 발령이라 목장갑이 당연한 줄 알았다.” 업무를 위한 장비를 사비로 사는 소방관의 현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았다.

ⓒ연합뉴스5월26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대원이 구조작업을 마친 뒤 생수로 눈을 닦고 있다.

김씨도 공감했다. 같은 소방서에 근무하는 직원의 공기호흡기가 고장 났지만 계속 방치된 채 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수리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 결국 그 직원은 남의 걸 빌려서 현장으로 나간다. 그는 “공기호흡기는 화재 현장에서 생명줄이다. 산소를 공급해주고 유독가스를 막아준다. 다행히 아직은 별 사고 없이 버티고 있지만 걱정된다. 실제로 2011년 광주에서는 사용 연한을 4년이나 넘긴 고가 사다리차를 타다 구급대원이 떨어져 숨진 적이 있다”라고 말했다.

지자체장에 따라 춤추는 소방 예산

전남에서 근무하는 20년차 소방관 이현철씨(가명)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이씨는 “아쉬운 사람이 먼저 (장비를) 사는 거다. 특히 옷이나 장갑 같은 경우는 예산 사용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보니 자기 돈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우리끼리 어디 게 좀 더 싸고 괜찮다는 정보도 교환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에서 20년째 근무 중인 소방관 박민수씨(가명)는 그나마 자신은 처지가 나은 편이라고 했다. 수도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재정 형편이 상대적으로 괜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 역시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한 경우는 여러 번 겪었다. 그는 “현장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장갑이나 신발 등 장비가 망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제때 지급해주는 게 아니라 연간 예산으로 연초에 쭉 나눠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다 보니, 당장 필요한 걸 적절하게 받지 못하면 결국 내 돈 주고 사게 된다. 윗선에서도 다 아는 문제지만 ‘우리 때도 그랬다’면서 자비 구입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소방장비 문제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올해 소방방재청이 공개한 ‘진압·보호 장비 보유현황(2013년 12월31일 기준)’을 보면, 소방장비 보유율은 전국 평균 91.8%에 머물렀다(위 〈표〉 참조). 기본이라 여겨지는 100%가 안 된다. 소방장비 관리규칙에 따르면, 소방관은 방화복·안전화·장갑·방화두건은 1인당 두 벌씩, 공기호흡기는 한 세트, 헬멧은 한 개를 두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런 장비 가운데 몇 가지는 빠진 채 현장에 간다는 뜻이다. 지역별 편차도 크다. 경기도는 109.1%였지만, 부산은 75.7%에 불과했다.

게다가 보유한 장비도 많이 낡았다. 전국 평균 노후율은 22.8%. 장비 5개 중 1개는 사용 기한을 넘겼다는 뜻이다. 소방장비 내용 연수(내구 연한) 지정 고시에 따르면, 방화복은 3년·헬멧은 5년·공기호흡기는 10년이다. 경북이 38.3%로 가장 노후율이 높았고 그다음으로 대전 35.2%, 인천 31.4%였다. 이같이 높은 노후율은 그만큼 화재 진압 현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말이 된다.

지자체별 재정 상황이 다른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지방직인 소방공무원 관련 예산은 모두 국비가 아닌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소방 업무를 오래 담당한 한 비서관은 “안전 문제라는 게 사실 투자한다고 당장 눈에 드러나는 게 아니다. 건물을 짓거나 도로를 놓으면 눈에 보이지만, 소방에 투자한다고 해서 당장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심지어 2011년에는 소방공동시설세라고 있던 지방세가 지역자원시설세로 통폐합되면서 그 안에서 소방 분야 비중을 정하게 되었다. 그러니 지자체 단체장에 따라 그 예산액이 춤을 춘다”라고 말했다.

 

소방방재청이 제공한 2014년 시·도별 개인 안전장비 보강 예산 현황을 보면, 현장대원 1인당 지원 예산은 지자체별로 최대 11배 차이가 났다. 경기도는 소방관 1명에게 지원하는 1년간 개인 안전장비 보강 예산이 112만원(전체 56억7600만원, 현장대원 5073명)인 반면 강원도(전체 2억500만원, 현장대원 1867명)는 11만원이었다.

“가난하다고 안전까지 차별받아서는 안 돼”

소방관들은 지역별 소방장비 지원의 차이가 결국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다고 강조했다. 소방관 박민수씨는 “가난한 지역에 산다고 안전까지 차별받으면 안 된다. 안전 서비스를 고르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역별 차이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 소방관의 글도 비슷한 지적을 담았다. “경기도 고양버스터미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소방관 50명과 소방차 13대가 모여 20분 만에 불을 끄고 수많은 인명을 구조했다. 사상자 8명이 나왔지만 약 700명을 대피시킬 수 있었다. 반면 전남 장성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처음 도착한 소방관은 달랑 3명. 거동도 불편한 환자 35명을 옮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렇게 우리들의 어머니·아버지 스물한 분이 독한 연기에 질식해 돌아가셨다.”

소방관들의 바람은 비슷했다. 지방 재정에 휘둘리지 않고 소방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소방 업무를 보며 현장에서 뛰는 소방관은 3만1500명이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예산 때문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문제에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소방방재청도 조직의 변화를 맞이했다. 소방방재청을 없애고 새로 만드는 국가안전처 산하 본부로 기능을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갑다. 이번 조직 개편안에는 정작 일선 소방관의 가장 큰 관심사인 신분과 관련된 내용(국가직 전환)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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