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9일, 진도 실내체육관에 머물던 실종자 가족들이 도보 행진에 나섰다. 구조가 늦어진다며 청와대로 가겠다던 그들은 진도대교 앞에서 경찰에게 막혔다. 이 뉴스를 접한 대학생 용혜인씨(24)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떠올랐다. 숨진 학생에게 했던 그 안내방송처럼, 정부가 그들의 부모에게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고 일주일 뒤 용씨는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 가만히 공부하고, 가만히 스펙 쌓아, 가만히 결혼하라는 ‘교육’의 결과가 이러한 참사를 낳았다는 내용이었다. 노란 리본도 나눠주었다. 청와대 게시판에 침묵 행진을 제안했다.

글을 올린 지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4월30일, 시민 250여 명이 침묵 행진에 함께했다. 검은 옷을 입고, 노란 리본을 묶은 국화 한 송이를 손에 쥐고, ‘가만히 있으라’고 적힌 종이를 다른 한 손에 든 채 묵묵히 인도를 따라 걸었다. 추모의 의미를 담은 침묵과 행진 외에 어떠한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변 상인들은 가게 음악소리를 줄이고 문밖으로 나와 두 손을 모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침묵 행진은 4월30일에 이어 5월3일, 5월10일에도 진행됐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시사IN 신선영〈/font〉〈/div〉20여 년을 안산에 거주했던 용혜인씨(왼쪽에서 두 번째)에게는 희생자와 관계된 지인들이 많다.
ⓒ시사IN 신선영 20여 년을 안산에 거주했던 용혜인씨(왼쪽에서 두 번째)에게는 희생자와 관계된 지인들이 많다.

용씨는 대학 입학 전까지 안산에서 20년 동안 거주했다. 친구의 친구, 동생의 선생님 등 세월호 희생자와 관계된 이들이 많다. 슬픔은 안산 주위를 오래 머물고 있다. 최근 용씨의 아버지는 전화를 걸어 “조심해.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르잖아”라고 말했다. 용씨는 그런 위험을 없애고 싶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싶다”라고 말했다.

용씨는 취업 준비를 위해 1년6개월을 휴학한 뒤 지난 3월에 복학했다.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하고 있지만, 지금은 세월호 참사의 후속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가 최대 관심사다. 개인의 집합인 ‘가만히 있으라’ 모임은 이제 막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앞으로 행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데에만 모두 공감한 상태다.

기자명 고제규·장일호·송지혜·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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