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관련 검찰 수사의 대상인 한국해운조합은 국내 선박회사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민간 기구다. 세월호가 그랬듯이, 조합원인 선박회사들은 가급적 많은 화물을 적재해야 수익을 높일 수 있다. 선사들이 안전 규정을 어기고 지나치게 많은 화물을 싣지 않는지 단속하는 기관 역시 해운조합이다. 정부로부터 조합원에 대한 감독 권한을 위탁받았다. 해운조합은 선사들의 이익단체인 동시에 그 선사들을 감독해야 하는 매우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이런 경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조합은 ‘소홀한 감독’으로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쉽다. 물론 이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가 있기는 하다. 해운조합은 위탁 업무(선사들의 과잉 선적에 대한 단속)를 제대로 수행하는지, 다시 정부(해수부)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귀찮은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편법이 있다. 해운조합을 감독하는 정부 관료와 가까운 사람, 예컨대 선배(퇴직 관료)를 대표로 내세우면 된다. 이 같은 전·현직 관료와 민간의 커넥션을 허용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어물전을 맡기는 꼴과 다를 바 없다. 공공 부문과 민간 업계의 유착 고리 구실을 하는 전·현직 관료들을 일컫는 용어가 바로 ‘관피아(관료 마피아)’다.

ⓒ연합뉴스4월23일 검찰이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해운조합은 선사 이익단체이면서 선사들을 감독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유관단체다.

안전 점검과 과적 단속을 소홀히 해서 세월호 참사를 촉발한 기관으로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등이 꼽힌다. 이 중에서 선박안전기술공단은 공기업이지만, 나머지 두 기관은 보통 ‘유관단체’라 불린다. 이 단체들은 민간 부문에 속하지만 정부로부터 안전 점검 등 감독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한다. 해운조합뿐 아니라 ‘협회’라 불리는 업계 이익단체들이 이런저런 감독 기능을 정부에게서 위탁받는다. 금융투자협회가 회원인 증권사들을 관리·감독하고, 한국에너지기기산업진흥회가 회원사의 보일러가 안전한 제품인지 인증하는 식이다. 이런 협회들의 최상층부에 전직 고위 공무원들이 사실상의 로비스트로 포진하고 있다. 물론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무원은 자신의 업무와 유관한 민간 영리기업에는 퇴직 후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다. 그러나 협회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여야 앞다투어 ‘관피아 근절 법안’ 내놓아

최근 여야는 앞을 다투어 ‘관피아 근절 법안’을 내놓고 있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발의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의 핵심은, 고위 공무원들에 대한 재취업 규제 대상을 민간 영리기업에서 협회 등 유관단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 역시 퇴직 공무원들의 10년간 취업 이력을 실명으로 공개하는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한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김영란법’도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도 형사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처벌 대상에 의원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랬는지 국회에서 논의가 지체되었다. 특권층 네트워크로 얽힌 고위 관료, 국회의원 등 ‘힘 있는 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추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에서도 관피아 근절은 어려운 과제다. 심지어 특정 인사들이 행정부와 입법부, 거대 기업 경영진을 번갈아 맡기도 한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이다.

ⓒAP Photo에드워드 앨드리지 전 미국 국방차관(왼쪽)과 골드먼삭스 CEO 출신의 헨리 폴슨 전 재무장관(오른쪽)은 대표적 ‘회전문 현상’ 사례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방차관을 맡았던 에드워드 앨드리지는 록히드 마틴으로부터 전투기를 매입하는 것에 대해 극히 비판적인 관료였다. 지나치게 비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앨드리지는 2004년 돌연 록히드 마틴 전투기 20여 대를 매입하는 30억 달러 규모의 정부 계약을 승인한다. 그는 곧이어 국방차관직을 사임하고 록히드 마틴으로 이직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2006년 골드먼삭스의 CEO인 헨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영입했다. 폴슨은 2008년 금융위기로 금융기관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게 되자 ‘고향’인 골드먼삭스에 129억 달러(약 13조2000억원)를 지원하고 다른 경쟁사들은 망하게 내버려뒀다.

그렇지만 미국은 회전문 현상에 대한 규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행한 나라이기도 하다. 1978년 지미 카터 정부는 정부윤리법을 제정해서 행정부 고위 관료들이 퇴직 이후 1년 안에는 민간 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이 법안은 1989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 임기 동안 행정직 공무원에서 연방의회 의원까지로 확장되었다. 1992년 집권한 클린턴 대통령은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 제한 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행정명령을 내렸으나 자신이 퇴임할 즈음엔 슬그머니 취소해버린다.

미국의 관련 법안 자체에는 나름 강력한 규제 장치들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정부윤리청(OGE)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직 공무원들이 업무 연관 기업에 재취업하려면 사전에 윤리 관련 부서에 통고해야 한다. 특히 정부조달(정부가 민간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매입하는 계약) 업무 담당자는 민간 기업의 일방적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거절한 경우에도 이 사실을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강력한 규정인 있는데도 ‘예외 조항’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욱이 퇴직 공무원들 역시 본인이 직접 로비할 수는 없지만 기업 편에서 로비 전략을 개발하거나 조언하는 것은 허용되므로 ‘있으나 마나 한 규제’라는 비판도 많다.

시민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각국 사례를 통해 다양한 ‘관피아 규제’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고위 공무원의 취업 제한 기간은 1년이지만, 공직에서 취득한 정보를 민간 기업 등에 유출하는 것은 5년간 금지되어 있다. 이를 위배한 것이 입증되면 가볍게는 연금 삭감, 무겁게는 징역형까지 감수해야 한다.

영국·프랑스·아일랜드·브라질 등에는 퇴직 고위 관료의 재취업을 모니터하는 감독기구가 있다. 전직 고위 공무원이 취업하려면 직장, 직위, 보수, 요구받은 업무 등을 감독기구에 사전 고지해야 한다. 감독기구는 고지 사항을 분석해서 전직 관료의 재취업이 공익에 위배되지 않는지 판단한다. 유럽연합 역시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및 유럽투자은행(European Investment Bank:유럽연합에 속한 국가들이 공동으로 출자한 투자기관) 고위층이 퇴직하는 경우,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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