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선장.’ 세월호 침몰 참사를 지켜본 이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문구 중 하나다. 박근혜 대통령이 “살인과도 같은 행태”를 보였다고 말한 세월호의 선장 이준석씨(69)는 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 이씨는 여객선 두 척의 본선장이 휴가를 가면 대신 투입되는 ‘교대선장’으로, 서류상 월 270만원을 받았다. 이 외에 항해사·기관장·기관사의 급여는 170만원에서 20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선박직 15명 중 9명이 계약직이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승객의 안전을 누가 어떤 조건에서 책임지고 있는지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선원과 선박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선원들의 계약기간이나 신분 등 고용계약 형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선원의 구인·구직을 알선하는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의 박윤수 고용지원부장은 “계약직 여부나 일하는 기간 등 구체적인 고용조건은 파악을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곳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선원 모집 공고에는 신분이나 계약기간, 근무시간 등이 명시돼 있지 않다.

ⓒ연합뉴스세월호 조타수, 선장, 3등 항해사가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고 있다.

선원으로 취업하려면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나 각 지방 해양항만청에 구직등록을 해야 한다. 일반 직업소개소는 선원 취업을 알선할 수 없다. 그런데도 취업 알선을 담당하는 정부 산하 법인조차 계약형태 등 노동조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통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보통 1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전국해상산업노동조합연맹 박상익 해운정책본부장에 따르면 선원들이 고용되는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회사와 정년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이른바 ‘불특정계약’이다. 배를 8개월 탔다면 두 달 정도 유급휴가를 보내고 다시 그 회사의 배를 타는 식이다(선원법에는 선원이 8개월 동안 배를 탔을 경우 4개월 안에 유급휴가를 주도록 돼 있다). 다른 하나는 선사와 일정 기간만 계약을 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유급휴가에 해당하는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받는 ‘특정계약’이다. 계약이 해지된 뒤 같은 회사나 새 회사의 일자리를 찾기까지 매번 실업자가 되는 이 방식을 ‘비정규직’에 비유할 수 있다고 박 본부장은 설명했다. 박 본부장은 “업체들이 영세해서 인건비를 줄이려다 보니 ‘특정계약’(비정규직)을 많이 채택하는 걸로 안다”라고 말했다.

1년마다 계약을 하는 이들의 노동조건은 어떨까. 각종 통계를 보면 세월호처럼 국내 연안을 다니는 ‘내항선’과 외국 항을 오가는 ‘외항선’의 격차가 뚜렷하다. 대표적인 게 임금 차이다. 한국선원복지고용센터의 2013년 선원선박통계(모든 통계는 2012년 12월31일 기준)를 보면, 내항선원의 월평균 임금은 329만1000원으로 외항선(525만3000원)의 62.6%에 불과하다. 내항선 중에서도 여객선원의 월평균 임금은 306만5000원으로 더 적다. 내항선 여객선장은 월평균 346만8000원을 받는다. 이는 세월호의 이준석 선장이 받았다는 월급보다는 많지만 외항선 선장 월평균 임금(690만9000원)의 절반 수준이다.

외항선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다 보니 젊은 사람이 유입되지 않는다. 세월호 선장인 이준석씨가 정년이 지난 데서 보듯, 내항선 선원의 고령화와 인력 부족은 심각한 수준이다. 선원선박통계를 보면 내항선원 8269명 중 60대 이상이 3383명(40.9%)으로 가장 많다. 50대 이상까지 합치면 76%를 넘어간다. 선원법상 연령 제한은 없다.

버스 준공영제처럼 여객선의 공공성 생각할 때

인력 부족은 근무조건 악화와 사고 위험으로 이어진다. 내항선원에서 예비원이 차지하는 비율(예비율)은 1.3%(외항선은 15.3%)에 그친다. 법정휴가를 가는 게 거의 불가능한 여건이다. 선원법은 선박 소유자가 선원 총수의 10% 이상 예비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정해놓고 있지만, 이 조항은 배가 3척 이하인 사업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2012년 기준 연안여객선 업체 63곳 중 보유 선박이 3척 이하인 업체 수가 48곳으로 대다수(76.2%)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제다.

ⓒ동해해경 제공4월17일 해경이 울릉도행 여객선에 대해 선원 대상 안전운항 교육 등 특별점검을 하고 있다.

애초 법에 규정된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본부장은 “선원법에 따르면 항해 당직근무를 하는 선원의 경우 일주일에 최대 72시간까지 일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한 달로 계산하면 적은 시간이 아니다. 당직 외 업무를 하다 보면 피로와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당직근무의 위험성을 낮추려면 충분한 인원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선원뿐 아니라 여객선 자체도 노후하다. 세월호의 선령은 올해로 20년이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김춘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000t급 이상 국내 여객선 17척의 평균 선령은 20.59년인 것으로 드러났다. 선원선박통계를 보면 내항선 여객선 206척 중 15년 이상 된 낡은 배가  59.7%에 달한다. 고용이 불안정한 나이 든 선원이 낡은 배의 키를 잡고 오랜 시간 일하는, 최악의 구조다.

일부를 제외하면 영세한 선사가 다수이고 재무구조도 좋지 않다 보니, 선사들은 값이 상대적으로 싼 중고 배를 들여온다. 새로 건조한 배를 들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2012년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가 발주한 ‘연안여객운송사업 장기 발전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53개 연안여객선 운영업체를 조사한 결과 34곳이 자본금 10억원 미만이었다. 이들 전체의 부채비율도 444.1%로 안정성까지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를 운항하던 청해진해운의 지난해 말 부채비율은 409%였다. 회사 자체의 안전관리와 교육에 대한 투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해운업계 전문가는 “버스 준공영제가 있는 것처럼 시민의 교통수단으로서 여객선이 갖는 공공성을 생각할 시점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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