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전 구원파 신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교단도 개혁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랜 기간 구원파의 핵심에 있었다. 현재 지방에 거주하는 그는 탈퇴했지만 신앙심은 여전하다고 밝혔다.

기독교복음침례회는 유병언씨와 공식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유병언씨는 구원파를 만든 사람이다. 교주와 같다. 그가 운영하는 회사에 이사로도 등재되어 있지 않고 깨끗하다. 서류상으로는 전혀 관여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100% 관여한다.

어떻게 관여하는가?
안성 금수원에 가면 그를 위한 공간이 있다. 이번 사태가 나기 전까지 거기 있었던 것으로 안다. 언론에 나오는 서울 서초구 염곡동 유병언 타운은 예전에 세모그룹 부도가 났을 때 등장한 그 세모타운과 같은 곳이다. 지금은 거기에 거주하지 않고 안성 금수원의 세계선교센터라는 큰 강당에서 지내고 있다. 이 강당 2층 양쪽은 방처럼 되어 있는데, 왼쪽 끝 방이 유 회장이 머무르는 곳이다. 평소 거기에 거주하면서 경영과 교회와 관련한 ‘오더’를 내린다. 유 회장이 아해라는 이름의 사진작가로 소개된, 카메라를 든 포즈를 취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유 회장은 그 창문을 통해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해외에서 여는 사진 전시명이 ‘나의 창밖으로(Through My Window)’다.
 

ⓒ연합뉴스유병언씨는 평소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금수원’의 대형 강당(위) 왼쪽 끝 방에 머무른다.

 

유씨가 자신을 아해라는 이름의 사진작가로 소개하면서 카메라 든 포즈를 취한 곳도 ‘금수원’ 이었다.


사업과 연관된 오더는 어떤 식으로 내려오는가?
경영 자금이 필요하면 지역구별로 할당을 한다. ‘작정금’이라고 불린다. 작정금 관련해서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세모그룹이 부도날 때 회사가 어려우니 작정금을 걷자고 했고, 교회 지을 땅이나 유기농 제품을 생산할 땅, 해외 선교를 위한 발판으로 돈이 필요하다며 작정금을 할당했다. 회사가 생산한 식품이나 내클리어(장 세척기) 등을 사야 한다고 할 때도 돈을 할당했다. 심지어 유병언의 사진을 작정금 형태로 교인들에게 팔았다. 지역 교회-구역회가 있고 구역모임이 일주일에 한 번 열리는데, 그때 주로 작정금이 논의된다.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는 공개되나?
돈을 낸 것으로 끝이다. 회장님의 뜻이고 모임에서 하는 것이니 더 따지지 말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유병언 회장은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다’가 전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지면 신앙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고, 모임을 떠나야 한다. 그 정도 각오가 없으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관련 회사도 마찬가지로 운영되는가?
경영자가 있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유병언씨가 한다고 보면 된다. 아들과 사위, 그리고 믿을 만한 핵심 신자들에게 회사 운영을 맡겼지만, 경영은 실질적으로 그가 했다. 회사 이름과 제품 작명을 그가 한다.

그래서 계열사 임원 대부분이 구원파 신도인가?
임원뿐 아니라 사원도 신도들이다. 유병언 일가가 운영하는 대부분 회사에서 공채가 없다. 채용 공고 자체를 대외적으로 내지 않는다. 안성 금수원에서 매주 토요일 밤 8시 설교 이후에 직원을 뽑는다고 공고하거나, 서울교회에서 공고를 하는 식이다. 입사 서류는 이력서와 간증서다. 간증서가 뭐냐면 일종의 자기소개서인데, 구원파의 교리에 따라 자기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었는지 제출하는 것이다. 신자들만 들어올 수 있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