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대형 교회는 최근 잇따라 아들을 후계자로 내세웠는데 통일교도 그리 다를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통일교의 후계 구도 포석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교단을 종교와 통일교 재단 내의 기업 경영, 비정부기구활동(NGO) 분야로 나눠 세 아들에게 분담하는 체제를 꾸린 것이다. 교단의 핵심 축이라 할 신앙 부문은 7남 문형진 회장, 기업 경영은 4남 문국진 이사장, 그리고 초종교초국가연합을 중심으로한 NGO 부문은 3남인 문현진 천주평화연합 회장이 각각 맡았다.
그동안 문선명 총재의 2인자로는 박보희·곽정환·황선조 씨 등 이른바 ‘가신 그룹’으로 불리는 교단 내 제자들이 유력하게 꼽혔다는 점에서 친자녀 3인방 체제를 만든 것은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과거 세계일보 사장과 금강산국제그룹 회장을 맡으며 오랫동안 문 총재의 후계자로 꼽혀온 박보희씨는 대중국 투자 사업에 실패하면서 전면에서 물러났다. 현재 박씨는 자기 딸이자 문 총재의 둘째 며느리인 문훈숙씨가 단장으로 있는 유니버설발레단 이사장으로 있다.
박보희씨와 마찬가지로 문 총재와 사돈 관계이며 문현진씨의 장인이기도 한 곽정환씨 역시 주요 직책을 문 총재 자녀에게 넘겼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세계회장 자리를 문형진씨에게, 세계일보 부회장 자리를 문국진씨에게, 그리고 통일그룹 세계회장 자리를 사위인 문현진씨에게 각각 내줬다. 곽씨는 선문학원 이사장, 한국프로축구연맹 회장 등을 맡고 있다.
문선명 총재의 조카사위인 황선조씨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한국회장 자리를 문형진씨에게 물려줬지만 최근 문 총재가 공을 들여온 평화통일가정당 총재와 여수 화양지구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주)일상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단 시비 피해 해외에서 세력 확장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이름을 가진 통일교는 일반인에게는 다소 특이한 종교 조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0여 년간 통일교는 단순한 종교로서보다는 왕성한 사회·문화·스포츠 활동으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축복결혼’이라 부르는 수만 쌍 부부의 합동결혼식, 활발한 대북사업과 세계 각지의 전·현직 정치·종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벌이는 평화 관련 행사, 피스컵 축구대회, 리틀엔젤스 예술단 공연 등이 이미지를 이루는 주된 요소였다.
1954년 문선명 총재가 기독교계에서 분파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이름으로 창립한 통일교는 출발 자체만으로도 한국 기독교계에 큰 파문을 몰고 온 사건이었다. 통일교 창립 1년 만에 기독교계 대학인 이화여대 교수와 학생들을 신도로 끌어들여 집단 퇴직·퇴학 사태를 부르는 등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1955년 여름 문선명 총재 등 간부가 고소당해 급기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 총재는 몇 달 지나지 않아 사법부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교세를 본격 확장해나갔다.
이후 통일교의 국내 행보에 기독교계는 늘 ‘이단’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통일교가 성경을 경전으로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기성 기독교계와 비슷했으나 교주인 문선명 총재를 ‘참부모님’ ‘구세주’ 등으로 칭해 초창기부터 줄곧 기독교계로부터 이단으로 배척당한 것이다.
그러나 통일교는 국내 기독교단의 이같은 이단 시비를 피해 주요 포교 무대를 세계로 넓혀 ‘마이웨이’에 박차를 가했다.
1990년대 들어 문선명 총재는 활동 방향을 종교 자체보다는 인류 보편 가치인 평화, 사랑, 가정행복 등으로 전환한다. 1994년 창립 40년 만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간판을 내리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창립한 것이다. 이 무렵부터 문 총재가 특별히 공들인 지역이 북한이다. 1991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전격 회담을 벌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는 이후 북한에 평화자동차공장, 보통강호텔 등을 설립해 운영한다. 이 과정에서 문 총재는 김 주석으로부터 평양에 통일교 목사(일본인) 파견을 허용받아 형식적이나마 북한에 해외 선교사를 파견한 첫 종교라는 기록을 보유했다.
북한·통일교 핫라인의 비화
통일교의 북한 진출은 사업성보다는 남북 관계가 막힐 때 보이지 않는 물꼬를 트거나 가교 노릇을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1991년 문 총재와 김일성 주석 간 회담 당시 두 사람 사이에 ‘비밀 핫라인’을 개설한 덕분이었다. 이후 남북 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그 비밀 핫라인 구실을 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우선 1994년 1차 북한 핵 문제로 남북한과 미국이 전쟁 직전의 위기까지 치달았을 때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전격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김영삼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이끌어낸 일이 있다. 당시 대북 채널이 없던 카터는 통일교 핫라인을 통해 방북을 성사시켰다. 문 총재가 북한과의 채널 유지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 국가보안법을 어기면서까지 세계일보 박보희 사장을 조문 사절로 보냈던 사건이 잘 말해준다. 이렇게 북한과 구축한 핫라인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전에도 막후에서 가동됐고, 국정원도 이 채널을 활용했다. 통일교는 당시 정상회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사전에 평양예술단을 서울로 초청해 공연하는 기획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과정에서도 통일교는 핫라인을 은밀하게 가동했다. 방북 후 노 대통령은 북한 남포에 있는 평화자동차공장을 공식 견학했고, 정부 방북단 일행 40여 명은 통일교가 운영하는 평양 보통강호텔에서 묵었다.
문선명 총재는 대북사업에 한창 공들이던 1990년대 중반 ‘세계 경영’에도 광폭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미국 뉴욕 시 외곽 이스트가든에 자리한 통일교 수련소를 거점 삼아 직접 세계 185개국을 다니며 선교사를 파견하고 낙후한 나라에 대한 재정 지원 등으로 신임을 얻어 교세를 확장해 나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전용 비행기를 몰고 세계 각국을 넘나들며 통일교 교세 확장에 몰두해온 문선명 총재가 공적인 자리에서 던지는 화두는 ‘세계 평화 실현’이다. 그는 세계 평화가 ‘하나님의 참사랑’으로 이뤄진다면서 그런 세계 건설을 구체화하기 위해 자기가 왔다고 주장해왔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가장 정성을 쏟은 분야는 낙후한 국가에 막대한 물량 원조하기였다. 국제구호친선재단을 설립해 아프리카 등 저개발국가에 식량·의류·의약품을 원조하는가 하면, 분쟁과 재난 지역에 긴급구조 고아원 운영, 의료봉사, 기술교육, 수자원 개발 등에 집중 지원한 것.
막대한 자금 들고 국내로 U턴한 까닭
그의 야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유엔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서 유엔을 대체할 새로운 평화기구로 천주평화연합(UPF)를 창설해 “유엔이 하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고 종교와 영적 각성을 바탕으로 지구촌 분쟁과 전쟁을 막는 데 민간 유엔의 구실을 하겠다”라고 역설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계 각국의 전·현직 지도자를 초청해 국제 신뢰도를 높이려고 공을 들였다. 레흐 바웬사, 아버지 부시, 고르바초프 등 전직 지도자가 그의 행사에 단골로 참여했다.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벌이다 보면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은 불문가지. 과연 그는 어디에서 그 많은 자금을 조달하는 것일까. 통일교는 ‘종교이자 기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통일교는 타 종교와 달리 기업·문화·언론·교육·스포츠 분야의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한다. 우선 언론으로는 미국의 워싱턴타임스와 UPI 통신사, 일본 세계일보, 한국 세계일보 등을 들 수 있다.
또 세계 각국에서 해양산업과 항공기계산업, 에너지산업, 관광산업, 자동차산업, 식음료산업 등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의 저개발국에 집중 투자해 해당국의 민심과 자금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에서 직접 운영하는 통일그룹 관련 기업도 적지 않다. 인삼 및 의약품 전문회사인 (주)일화를 비롯해 일신석재, 용평리조트, 선원건설, 일상해양산업 등 20여 기업이 통일교 사업체이다. 또 성남일화 축구단을 운영하며 국제 클럽축구 대항전인 피스컵 축구대회를 지원한다.
현재 국내 통일그룹은 종합 레저그룹이라 불릴 만큼 사업 방향이 변하며 급팽창하고 있다. 사계절 종합 휴양지인 용평리조트와 서울 강남의 메리어트호텔 등도 통일교 관련 기업이다. 이어서 문 총재는 해외 통일교 자금 2조원을 들여와 여수 화양지구 해양관광 레저단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통일교의 이런 기반시설 투자가 없다면 2012년 여수엑스포 개최는 불가능하다고 여수시청 측은 실토한다.
지난 34년간 미국을 무대로 펼쳐온 문선명 총재의 야심찬 ‘세계 경영’은 최근 들어 국내로 유턴하는 모양새다. ‘1000만 신자’를 자랑한다는 한국 기독교계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주 무대를 해외로 옮겼던 문 총재가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 문 총재는 통일교 창립 1세대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2세 자녀를 전진 배치했다.
그러나 문 총재가 목표로 하는 국내 통일교 교세 확장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유난히 기성 기독교세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통일교의 이미지는 아직까지 일반 국민에게도 ‘이단’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 4·9 총선 때 254개 전 지역구에 가정당 후보를 내보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가정당은 겨우 1.7%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그동안 통일교 비판에 앞장서온 부산 장신대 탁지일 교수는 “통일교가 아무리 종교 색채를 벗고 사회 봉사활동과 세계화를 열심히 해도 ‘문선명씨가 재림주가 되는 지상천국 건설’이라는 궁극의 종교적 목적을 변경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통일교의 사업 방식을 보고 정통 기독교가 반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정통 교회보다 이단이 더 윤리적이며 국내외에서 왕성한 봉사활동으로 세력을 더욱 확장해나가는 반면, 정통 교회는 이기적·비윤리적 모습으로 점점 고립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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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흑자 경영으로 후계 체제 돕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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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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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이라 배척해도 기독교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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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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