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김중혁 지음문학동네 펴냄
소설가 배수아는 그녀의 네 번째 소설집 〈그 남자의 첫사랑〉(1999)의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소설집 No.4’로 바꿔버렸다. ‘아아, 역시 멋있어. 그렇다면 배수아 4집인 셈이군.’ 말하자면 음반처럼 말이다. 나는 바뀐 제목이 매우 마음에 들어 이미 갖고 있었던 그 책을 또 샀더랬다.

최근에 출간된 소설가 김중혁의 두 번째 책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에 대해서 말하자면 ‘김중혁 2집’이라는 타이틀이 딱 어울리는 책이다. “이 소설집은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녹음 테이프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작가가 직접 그린 카세트 테이프 표지가 수록돼 있어서?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가 있다.

음악하는 사람 누가 안 그럴까마는 특히 유별나게 소리에 민감한 뮤지션이 있다. 그래서 어떤 뮤지션의 음악은 도입부 몇 초만 들어도, 아 이건 아무개의 사운드다, 하게 된다. 독특한 악기를 사용해서 다채롭게 실험을 해도 그 사운드 어디 안 간다. 소리를 다루는 ‘태도’랄까, 그런 것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중혁의 소설도 그렇다. 반 페이지 정도만 읽으면 이건 김중혁의 소설이구나 하게 된다. 그의 문장이 놀랍도록 독창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또 몇몇 외국 작가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지만, 어느 편이냐 하면, 참 잘 흡수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자기 체질에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의 문장을 찾아내서 참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김중혁 2집’에는 그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어떤 ‘일관된’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책을 음반처럼 듣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게 하는 물건이다. “비둘기들은 걸으면서 연방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그래, 좋아, 옳지, 그렇지, 맞지, 그거야, 이런 말들을 내뱉으면서 걷고 있는 것 같았다.”(189쪽) 우선은 이런 썰렁하고 귀여운 유머들이 김중혁 스타일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너도 버스회사에서 일을 해보면 알겠지만 가끔 ‘무방향 버스’라는 게 생겨날 때가 있어. 똑같은 노선을 계속 반복하던 버스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지는 거야.”(241쪽) 신기한 것을 무덤덤하게 말하기, 이런 것도 김중혁 스타일이다. 마치 초능력을 갖고 있는 남자가 은행에 근무하면서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옆에 있는 직원에게 자신의 능력을 슬쩍 말해줄 때의 미묘한 공기 같은 것이 그의 소설에는 있다.

김중혁(오른쪽)의 책이 음반 같다면, 그가 창조한 인물은 음반을 듣는 사람들 같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운드에도 온기가 있다면, 김중혁 소설에는 어떤 미지근한 온기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이 온기는 어디서 생겨나는 것일까. 일단은 이렇게 말해보려 한다. 김중혁이 창조한 인물들은 대개 ‘평화주의자’라는 것. 그의 인물들은 소심하다. ‘대심’한 사람들은 자기 주장을 큰 소리로 부르짖고 타인의 취향을 자기에게 맞추려 할 것이다. 그러나 김중혁의 인물들은 소박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바스락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부류다. 그의 책이 음반 같다면, 그의 인물들은 음반을 듣고 있는 사람들 같다. 자기가 사랑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아아 행복해, 눈물 한 방울 떨구는 그런 사람들. 이런 인물들은 왜 따뜻하게 느껴지는가. 삶에 만족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 우리를 위협하지 않는 사람들이어서다. 그의 소설은 타인의 취향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연립주택 같다.

김중혁 소설의 온도는 딱 19도

문제 하나 내면서 마무리하자. 음반 매장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수상한 손님을 붙잡아 추궁한 끝에 그가 CD 세 장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직원은 이제 무슨 말을 할까? 김중혁의 소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세 장 중에 한 장은 내가 선물로 사줄게. 한 장만 골라봐.” 이런 대목들이 김중혁 소설의 온도(좀 거창하게는 ‘윤리’라고 해도 좋다)를 조절한다. 사람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온도는 섭씨 18~20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김중혁 소설의 온도는 딱 19도일 것이다.

한번 재어들 보시라.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니까(바쁜 현대인들은 ‘유리방패’와 ‘엇박자D’만이라도 꼭 읽어보시길).

기자명 신형철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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